24.10.22 09:55최종 업데이트 24.10.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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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발표가 세계 지정학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18일에 나온 국정원의 발표 요지는 조선(북한)이 1만 2000명 규모의 특수부대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하고 1500명의 선발대를 8∼13일에 걸쳐 러시아 함정을 이용해 러시아 극동 지역에 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10월 중순부터 제기해 온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구동성으로 조선의 대규모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아직까진 신중한 입장이다. 양측 모두 "사실이라면 심각한 우려"라면서도 "아직은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선 우크라이나와 한국이 택한 시점이 미묘하다. 우크라이나가 조선의 대규모 파병을 주장한 시점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승전 계획' 발표와 궤를 같이해왔다. 젤렌스키는 10월 중순에 우크라이나 의회, 유럽연합(EU), 나토 등을 상대로 '승리 계획'을 설명해 왔다. 핵심적인 내용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절차 개시와 러시아 영토를 상대로 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작전 확대 및 나토의 지원 강화이다.

하지만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거리를 둬왔다. 자칫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해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젤렌스키는 조선의 대규모 파병설을 나토를 압박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조선의 참전이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며 나토도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에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엇박자 내고 있는 한국과 미국, 왜?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지난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위성 사진 등 관련 자료를 18일 공개했다. 국정원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블라고베셴스크 등에 분산돼 현재 러시아 군부대에 주둔 중"이라며,"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러시아 하바롭스크 소재 군사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국정원은 이 사진에서 북 인원이 240여명 운집한 것으로 추정했다. 2024.10.18 [국가정보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의 미묘한 엇박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국정원의 발표가 나오기 전부터 우크라이나가 제기한 조선의 파병설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그런데 국정원은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개최된 직후 '북한군 참전 확인' 보도자료를 냈다. 진위 확인의 공을 넘겨받은 미국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물 샐 틈 없는 공조"를 과시해온 한미동맹이 매우 민감한 첩보·정보에 있어서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의 대러 무기 제공 및 파병 문제는 미국도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위성을 포함한 각종 정보자산을 동원해 감시·추적해온 사안이다. 또 한국이 독자적으로 관련 첩보·정보를 입수했다면, 한미동맹 차원에서 공동으로 분석·해석·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패싱'한 것으로 보인다. 또 독자적으로 '북한군 참전 확인'을 발표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윤석열 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공교롭게도 국정원의 발표는 검찰이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키로 한 다음 날에 나왔다. 그리고 의도를 떠나 상당수 언론은 조선의 참전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왔다.

물론 미국 쪽에서도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었을 수는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11월 5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조선의 대규모 파병설을 확인해 줄 경우 젤렌스키 요구와 관련해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조선의 참전을 공식화하면 "김정은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조선이 러시아에 무기 제공에 이어 인력 지원에도 나서고 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하지만 국정원의 발표대로 조선이 1만2000명에 달하는 특수부대를 우크라이나에 보내 전투 참여를 선택했다고 단정하기에는 그 근거가 무르익은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조선이 전투병보다는 군사 참관단이나 고문단, 혹은 후방 지원 인력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처럼 조선의 대규모 전투부대 파병설의 진위 여부는 아직 안개 속에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가용수단을 총동원해서 대응하겠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이전엔 미국 등을 통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던 살상 무기 제공을 우크라이나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국방부도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 한국이 앞장서서 조선의 파병설을 발표한 만큼, 한국이 무기 제공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질 수도 있다.

조선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전략무기 분야에서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국도 군사력을 더더욱 강화하고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두 가지, 즉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 강화는 한러관계 파탄 및 북러의 전방위적 협력 강화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가 조선의 대규모 파병설에 기대어 이러한 조치를 강화할 경우 악순환의 확대재생산은 불가피해진다는 뜻이다.

조선이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 편승해 편협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동시에 전쟁 발발과 장기화에 있어서 미국 등 서방의 책임과 미국의 입장을 수용해 온 윤석열 정부의 태도 역시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혜자가 되고 있는 현실은 조속히 휴전이나 종전을 모색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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