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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된 지방선거 중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늘어선 모습(사천시와 무관). 사진=국가기록원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된 지방선거 중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늘어선 모습(사천시와 무관). 사진=국가기록원 ⓒ 뉴스사천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말한다. 그만큼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잘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뜻일 테다. 선거로 선택받은 정당과 정치인이 다수의 시민을 대신해 일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서, 그 과정이 정정당당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유당 시절의 민주주의 참사

그러나 우리에게는 떳떳하지 않은 지난 날이 있다. "지금이 자유당 시절이야?"라거나, "자유당 시절도 아니고 이게 뭔 짓인가!"라는 표현이 우리 곁에 남아 아직 쓰이는 것을 보면, 우리가 그 부끄러운 역사를 다 잊지는 않은가 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당 시절'에는 '부정선거'라는 우리의 흑역사 순간도 담겨 있다.

자유당 시절의 대표적 부정선거로는 1960년 3월 15일에 있었던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들 수 있다. 읍면동 단위까지 조직한 '공무원 친목회'가 표를 얼마나 짜내었으면 득표율이 100%를 넘겼을까. 이 웃지 못할 촌극에 분노한 국민이 들고일어난 게 4.19혁명이다.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했고 자유당도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 부정선거가 있기 4년 전에 실시한 지방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쩌면 4년 뒤 일어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대참사'의 싹이 전국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던 셈이다. 하필 그 불미스러운 일이 경남 사천에서도 꿈틀거렸다.

 1958년 2월 28일 동아일보 신문 기사. 1956년 8월 13일 경남 사천에서 있었던 경남도의원 선거에 부정이 있어 대법원이 선거 무효 결정을 내렸음을 알리고 있다.
1958년 2월 28일 동아일보 신문 기사. 1956년 8월 13일 경남 사천에서 있었던 경남도의원 선거에 부정이 있어 대법원이 선거 무효 결정을 내렸음을 알리고 있다. ⓒ 뉴스사천

하지만 이 흑역사를 기억하는 사천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새삼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옛일을 곱씹으며 새로운 걸음을 걷자는 뜻에서다. 워낙 오래전 일인 데다 정리된 기록 찾기가 어려워 사건의 실체 살피기가 쉽지 않지만, 당시의 언론 보도에 대략의 얼개가 드러난다.

봉인 뜯긴 투표함의 개표 강행

말썽은 1956년 8월 13일 경남도의원 선거에서 일어났다. 당시 사천군 제1선거구에서는 자유당 진삼수 후보와 민주당 구광조 후보가 치열한 2파전을 벌였다. 개표 결과는 7972표를 얻은 진삼수 후보의 승리. 7457표를 얻은 구광조 후보는 515표 차이로 낙선했다.

그러나 구광조 후보는 부정선거가 있었다면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거 무효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개표 당시 일부 투표함의 봉인이 뜯긴 채 개표장으로 들어왔고, 이 투표함에서 자유당의 진삼수 후보에게 거의 몰표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된 투표함은 정동면 제3투표구의 것으로, 개표 결과 진삼수 후보가 814표를 얻는 동안 구광조 후보는 55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 과정에 선거관리위원장이 해당 투표함에 관해 무효를 선언했는데도, 부위원장이 개표를 강행했음이 언론 보도로 확인된다. 부위원장은 이듬해 사천교육감에 뽑히는 최재석이다.

 1958년 2월 28일 조선일보 신문 기사. 1956년 8월 13일 경남 사천에서 있었던 경남도의원 선거에 부정이 있어 대법원이 선거 무효 결정을 내렸음을 알리고 있다.
1958년 2월 28일 조선일보 신문 기사. 1956년 8월 13일 경남 사천에서 있었던 경남도의원 선거에 부정이 있어 대법원이 선거 무효 결정을 내렸음을 알리고 있다. ⓒ 뉴스사천

대법원의 선거 무효 결정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원고 승소(1958년 2월 27일)로 끝났다. 구광조 후보의 주장대로 선거 무효 결정이 났다. <경향신문> 1958년 2월 28일자는 "봉함·봉인 및 열쇠가 개표장에 도착하기 전에 파괴되어 투표함 관리에 안전을 기할 수 없었을 것을 추인하여"라고 언급하며 대법원이 선거 무효 판결을 내렸음을 알리고 있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꽤 주목했던가 보다. 정부나 집권 여당 차원에서 이승만 대통령 치켜세우기가 극에 달하는 가운데, 관권 부정선거의 조짐도 점점 짙어질 무렵이다. <동아일보>는 '사천 부정선거'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 8월 28일자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꼬집고 있다.

"저 유명한 사천군에서는 민주당 공천 구광조 군이 4000표나 앞서 오다가 정동·용현 양면 투표함에서 몰표가 나와 결국 500표 차로 낙선으로 발표됐는데, 그 투표함은 투표소를 떠난 후 타군인 고성군으로 들어가 세 시간이나 한가로이 여행을 하다가 사천으로 되돌아온 까닭으로..."

 1958년 3월 1일 동아일보의 [단상단하]라는 논평란에 실린 기사. 1956년 8월 13일에 있었던 사천에서의 부정선거 사건을 꼬집고 있다.
1958년 3월 1일 동아일보의 [단상단하]라는 논평란에 실린 기사. 1956년 8월 13일에 있었던 사천에서의 부정선거 사건을 꼬집고 있다. ⓒ 뉴스사천

여기서 표현한 '여행'은 다른 기사에서는 '소풍'으로 바뀌기도 했다. 어쨌거나, 투표함이 3시간이나 한가로이 떠돌아다닌 데는 경찰의 힘과 역할이 작용했다. 대법원의 선거 무효 결정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8년 3월 1일의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수훈(?) 세운 서장에게 표창을"

"위원장은 무효를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위원장이 대리 결재로 개표를 하여 구 군을 낙선시켰고, 그 후 모 당 사천군당에서는 '우리 서장님은 선거 때마다 수훈을 세웠으니 중앙에서 표창을 해 달라'는 진정서까지 보내는 실정이었다나?"

여기서 말하는 모 당은 곧 자유당이다. 그러니, 자유당의 시선에서는 경찰서장의 부정선거 획책이 수훈으로 둔갑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법원의 선거 무효 확정 판결이 있은 뒤에도 정권을 잡은 자유당의 기세는 누그러지지 않은 모양이다. 1958년 4월 10일, 정동면 제3투표구에서만 따로 치른 재선거에서 자유당 진삼수 후보가 다시 당선했다. 구광조 후보와의 표 차는 줄어든 채였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1958년 5월 2일에 있었던 제4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해서도 부정선거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투표함 보전에 경종!', '보관 중인 투표함을 절취'라는 각각의 기사에서다.

 1958년 6월 21일 경향신문 신문 기사. 사천에서 괴한 6명이 보관 중인 투표함을 훔쳐 투표지 바꿔치기를 시도하다 발각되는 일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1958년 6월 21일 경향신문 신문 기사. 사천에서 괴한 6명이 보관 중인 투표함을 훔쳐 투표지 바꿔치기를 시도하다 발각되는 일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 뉴스사천

훔친 투표함에 표 바꿔치기 시도

이 보도를 보면, 6월 20일 새벽 3시께 괴한 6~8명이 군청 창고에 보관 중이던 투표함을 훔쳐 투표지 바꿔치기를 시도했다. 장소는 사천읍 선인리에 있던 농업은행 부지점장의 집이었다.

민주당 당원 몇이 현장을 덮치자 이들은 옷 등 소지품을 둔 채 도주하였는데, 사건 현장에는 선거위원의 도장과 선거록, 투표용지, 투표접수부 등의 선거 관련 서류들이 있었다. 범행 현장 목격자들은 도주한 자들이 모두 자유당 간부였으며, 경찰이 섞여 있었노라 주장했다.

이상이 1950년대 중후반에 사천에서 있었던 자유당 부정선거의 사건 개요다. 당시의 언론 보도만 참고했기에 사건의 대목 대목에 궁금증이 많이 남는다. 사건의 실체를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수사나 재판 자료의 분석, 원로의 증언 등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56년 사건의 피해자라 할 구광조 후보는 4년 뒤인 1960년 경남도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해 당선에 이른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가 일으킨 5.16군사정변과 후속 정부의 특정인에 대한 정치활동 제한 조치로 의정활동을 오래 하지는 못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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