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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10일 서울 서대문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소리의숲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10일 서울 서대문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소리의숲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최나영 소리의숲 기자

"'야생신탁'이라는 말처럼 진짜로 땅을 야생에 믿고 맡기려 해요.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리와일딩의 본정신으로 충실하게 돌아가 마치 부모와 같은 관리자 역할을 안 한다는 겁니다."

김산하(46‧사진)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에게 생명다양성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리와일딩 프로젝트 '야생신탁'을 현실화하게 되면 해당 부지를 어떤 식으로 관리할 것인지 묻자 김 대표는 이같이 답했다. 땅을 산 뒤엔 야생이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것이다.

생명‧환경 연구 단체인 생명다양성재단은 최근 리와일딩 관련 활동들을 하고 있다. 지난달 20~28일엔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와 함께 콘퍼런스‧포럼‧전시회‧토크행사 등 '리와일딩 주간' 행사를 열어 시민들에게 리와일딩을 알렸다. 시민들과 함께 돈을 모아 토지를 산 뒤 그 땅을 식물‧동물‧균류 등 생명체를 위한 공간으로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야생신탁'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추진 중이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이달 말까지 목표금액인 9000만 원 모금에 성공하면, 대상지로 선정한 경기도 파주 조리읍의 임야 1351㎡(약 408평)를 구매해 리와일딩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땅을 구매한 뒤엔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 변화하도록 내버려둘 예정이다.

리와일딩(재야생화‧Rewilding)은 '다시'라는 뜻의 're'와 '야생의'라는 뜻의 'wilding'가 합쳐진 신조어로, 훼손된 생태계를 다시 야생으로 되돌린다는 의미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생태계가 균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라진 종의 재도입을 비롯한 최소한의 개입만 한 다음엔, 인간은 물러나 자연이 만들어가는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리와일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생명다양성재단의 리와일딩 실험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까. <소리의숲>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로, 현재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원래 살던 종 없을 경우 외래종 도입에도 약간은 열려 있어"

- '리와일딩'이란 뭔가. 외국에선 리와일딩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

"리와일딩은 간단하게 말해 '자연을 제대로 복원하자'는 의미다. 서양에선 조금이라도 자연이나 대안적인 것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다 들어봤을 정도일 것 같다. 책도 많이 나왔고, 관련 연구나 콘퍼런스‧프로젝트‧유튜브 강연 등도 여럿 있다."

- 기존 '자연 복원'과 어떤 점이 다른가.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존 관점이 자연 복원을 '옛날에 있었으니까 복원한다'는 종류의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리와일딩은 '자연이 야생적으로 돌아와야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생태적 문제들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소백산에 여우가 없으니 다시 여우를 산에 집어넣자고 했을 때, 기존 관점에선 그냥 멸종했던 종이니까 데리고 오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와일딩 관점에선 여우가 들어옴으로써 생태계적 원리도 다시 풍부하게 돌아온다는 점까지 생각한다. 두 번째는 리와일딩은 인간 때문에 멸종했던 종을 다시 되돌리는 걸 한 다음엔 자연이 알아서 모든 걸 결정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자연의 힘을 인정하는 것, 이 점이 엄청 중요하다."

 생명다양성재단이 추진하는 '야생신탁' 프로젝트 대상지인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의 임야.
생명다양성재단이 추진하는 '야생신탁' 프로젝트 대상지인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의 임야. ⓒ 생명다양성재단

- 리와일딩은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인데, 리와일딩 과정에서 사람이 동물을 야생에 넣는 것은 개입 아닌가.

"리와일딩 철학에선 두 개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자연을 가만히 놔두면 거기에 꽃가루나 포유류 등 여러 생명이 온다. 그런데 사방이 전기 철조망으로 막힌 상태에서 가만히 놔두면 뭐가 오겠나. 즉, 그냥 놔둔다기보다는 자연의 힘이 미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놔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령 늑대, 스라소니 같은 최상위 포식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나라에 올 수 없다. 3‧8선을 건너서 올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 물리적으로 넘어오기 불가능한 건 인간이 넣어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 두 가지는 철학적 기반이 맞닿아 있다. 자연의 생태적 원형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리와일딩은 외래종을 도입하는 것에도 수용적이다. 그런데 외래종이 들어오면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 아닌가.

"외래종을 허용하는 그 부분이 리와일딩의 특이한 점이다. 다만 리와일딩이 외래종에 대해 약간은 열려있다는 것이 외래종을 선호하거나 원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존에 살았던 종이 정 없을 경우에는 외래종도 도입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살던 늑대를 한국에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에 살던 한국늑대의 특별한 아종이 사라지고 절대 없다면, 우리나라에 산 적은 없지만 비슷한 늑대를 데리고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종류인 것이지, 인간이 산업 목적으로 데리고 왔다가 탈출해서 국내 생태계에 큰 피해를 입힌 황소개구리 같은 생물이 들어오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 늑대를 사례로 들었는데, 한국에서도 리와일딩 차원에서 '최상위 포식자'를 야생에 풀어놓는 일이 가능할까.

"지금 우리나라의 조그마한 땅에선 불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리와일딩엔 최상위 포식자 도입도 포함돼 있지만, 작게 보면 수많은 곤충이나 새, 버섯, 수많은 균류의 유입도 포함돼 있다. 리와일딩 범위 중 한 가지가 최상위 포식자 도입일 뿐이다."

- 한국에서도 리와일딩을 진행한 사례가 있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제대로 한 사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 최초로 해 보려고 한다. 믿고 맡기는 '신탁'을 야생에 한다는 의미의 '야생신탁'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이 프로젝트에서 저희는 땅을 사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 그냥 정말 야생에 땅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한 모금이 이번 달 말에 끝나는데, 거의 80~90%가 달성돼서 곧 모금 목표가 채워질 것 같다."

 생명다양성재단이 추진하는 리와일딩 프로젝트 '야생신탁'의 선정지 인근에서 발견된 오소리.
생명다양성재단이 추진하는 리와일딩 프로젝트 '야생신탁'의 선정지 인근에서 발견된 오소리. ⓒ 생명다양성재단

"자연은 자기 갈 길 알아서 택하게 해"

- '야생신탁'을 진행하게 되면, 해당 부지는 어떤 모습으로 관리되나.

"야생신탁이라는 말처럼 진짜로 야생에 믿고 맡기려 한다. 리와일딩의 본정신으로 충실하게 돌아가서, 마치 부모와 같은 관리자 역할을 안 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같은'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우리는 아직도 자연이라거나 생물‧동물을 대함에 있어서 우리가 돌봐줘야 하는, 마치 그 책임을 우리가 다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자기가 갈 길을 알아서 택하게 해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식물을 심지도, 울타리를 치지도 않을 것이다. 동물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하지, 우리가 추가해서 넣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 상태를 유지해서 사냥 압력에 시달리는 동물들이 마치 생추어리처럼 와서 쉴 수도 있게 할 것이다. 진짜 그 공간만큼은 야생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공간은 주변 저수지‧산림과 연결돼 있어서 너구리나 오소리‧고라니‧멧돼지‧들개를 비롯해 수많은 동물들이 올 텐데, 그럴 때 사냥꾼들이 절대 우리 땅에서 사냥을 못하게 하려고 감시는 할 것이다. 또 자연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카메라도 설치하고 해서 관찰을 할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일만 하지, 극히 예외적인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 이상의 관리는 하지 않으려 한다."

- 지금은 야생신탁 예정 부지가 어떤 모습인가.

"지금은 자연 상태이긴 한데 농막이나 텃밭을 비롯해 시설이 좀 있다. 그런 농막을 비롯한 시설은 치울 생각이다. 바닥은 포장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고 흙이긴 하다."

- 야생신탁을 추진하는 데 주민 반대는 없었나.

"아직은 우리 소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없지만) 앞서 설명한 식으로 관리하면 주변 땅값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알 게 뭔가. 바로 그런 걸 반대하고 싶어서 이걸 하는 거다. 주변을 보면 돈벌이 때문에 남의 땅에도 농약도 치는 일이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은 이해하면서 자연을 보존하는 일은 그게 무슨 공익적 피해를 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 것에 대해 항거하려 한다."

- '야생신탁' 대상지 선정 기준 중 하나가 '개발 압박의 가능성이 영 없지는 않은 곳'이었다. 이 기준을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그렇다. 일부러 조금은 애매한 곳을 택했다. 그래야 우리가 땅을 삼으로써 벌어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야생신탁을 하게 된다면, 언제쯤 자연의 회복을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겠나.

"그런 건 없다. 우리 눈에 얼만큼 보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분석하려는 노력은 저희도 하겠지만 지금도 그곳엔 자연이 있고. 동물들도 찾아오고 있고 지금도 나쁘지 않다. 그냥 더 좋아지면 좋은 것이다. 제 생각에는 1년 정도만 가만히 놔둬도 훨씬 더 많은 생명들의 활동을 그 안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동물들은 자기가 어딜 가면 안전하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안다. 동물이 어딘가에서 먹고 사는 것과 번식하는 것은 다르다. 번식은 진짜 새끼를 낳을 만하다고 했을 때 하는 건데, 제 생각엔 진짜로 그곳에서 번식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곳이 그런 번식의 터가 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해 본다."

"그린벨트 좋아하지만 철학적 힘 없어... 그 대항마가 리와일딩"

- 리와일딩을 위해 시민들 각자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까.

"저희 같은 프로젝트에 기부하거나 참여하는 게 제일 좋다. 관련 의견‧민원을 지자체 등에 올리는 것도 좋다. 리와일딩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면, '인간 본의대로 개발하거나 재단하려고 하는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 '자연성 회복을 원한다' 같은 걸 주장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구청 같은 곳에선 안전을 이유로 산 속에다가 가로등을 설치하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야생성 동물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럴 때 시민들이 '나는 밤은 밤다운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그만 텃밭이나 발코니에 있는 화분 등에 찾아오는 자연(생물)을 막지 말고 야생을 좀 더 받아들여 보자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리와일딩 추진 움직임도 있나.

"당연히 거기까지 가면 좋다. 사실 한 지자체에서 연락이 와서 '생태적 알박기'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 왔었는데, 잘 안 됐다. 그래도 그런 걸로 봤을 때 정부도 관심은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런데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항상 신시민이 시작한다. 그래서 저희는 그걸 선도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부도 이런 것을 도입하고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하고 있다."

- 최근 정부에선 부동산 대책이라며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하지 않았나. 한쪽에선 숲을 파괴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그걸 막는 상황이 제로섬 게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와서 그린벨트를 전에 없이 가장 많이 풀고 있는데, 바로 그래서 리와일딩이 중요하다. 사실 저는 그린벨트를 좋아하고, 그린벨트 해제가 너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린벨트는 철학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다. 예전 박정희 정권 때 생긴 것이고 더이상 현대인에게는 그렇게 와닿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면 결국 철학적, 담론적으로 대항할 것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대항 논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저는 리와일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쪽에선 파괴를 하고, 한쪽에선 막고 있다'고 질문을 하셨는데, 그 비율이 절대로 50 대 50이 아니다. 99 대 1 정도도 안 될 거라고 본다. 우리는 1도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으로 비율이 다른 만큼, 저희 쪽에서 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니 리와일딩을 통해 사회 분위기에 반전을 좀 주고 싶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10일 서울 서대문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소리의숲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10일 서울 서대문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소리의숲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최나영 소리의숲 기자

"사람들이 리와일딩하면서 행복해 했으면"

- 최근 재단이 한국 최초로 '리와일딩 주간' 행사를 했다. 마무리한 소감은?

"재단 역사가 10년이 좀 넘었다. 그동안 이것저것을 많이 해 왔고, 과거엔 제인 구달 박사님이 오셨을 때 큰 행사들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때와는 정말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남녀노소나 직업‧전문성과 상관없이 일반 시민들이 많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리와일딩을 소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줬다. 한국에서 작게나마 리와일딩의 물결을 일으키는 첫 번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굉장히 보람 있었다."

-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에 리와일딩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어떤 한 개념이나 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정말 우리 삶과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지구나 자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원한다. 또,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리와일딩을 하면서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마지못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리와일딩을 실제 현실화하면 희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저는 어떤 개발사업 하나를 막았다고 해서 희망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냥 뭘 막고 저항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뭔가를 추구해야 하는데, 바로 그래서 리와일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리와일딩을 통해서 인간이 결국 행복하고 보람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마지막으로 할 얘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리의숲'(https://forv.co.kr)에도 실립니다. ‘소리의숲’은 2024년 9월 문을 연 1인 대안언론입니다. 소리의숲 홈페이지에도 들어오셔서 많이 봐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제보와 각종 제휴 문의도 환영합니다. 문의는 joie@forv.co.kr로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리와일딩#재야생화#복원#김산하#생명다양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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