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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가 '백두대간로'인 곳이 있다. '강원도에서 가장 작은 중학교'로 1~2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삼척시 하장면 하장중학교가 그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강원도 태생인 나조차도 사십 평생 이렇게 산과 나무 가까이 살아본 게 처음이다. 매일 백두대간으로 출퇴근하며 봄 신록은 산 밑에서 올라간다는 것과, 가을 단풍은 산꼭대기부터 물들어 내려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버스는 하루에 3번 다니며, 병원도 약국도 편의점도 없는 두메산골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교장 선생님이 점원인 '불편한 편의점'

하장 불편한 편의점 편의점도 없는 두메산골. 단 하루뿐이지만 하장초, 중 학생들이 다같이 모여 편의점을 만끽했다.
하장 불편한 편의점편의점도 없는 두메산골. 단 하루뿐이지만 하장초, 중 학생들이 다같이 모여 편의점을 만끽했다. ⓒ 홍정희

현재 우리 전교생은 7명이다. 그마저도 3학년은 없고 1, 2학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곳 아이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하장초 병설유치원을 거쳐 하장초등학교, 하장중학교로 진학하므로 모든 학생들이 아기 때부터 같이 자란 동네 친구들이다.

이것에는 새로운 친구 사귀기가 어렵겠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의외의 장점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곳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시내 학교 학생들과 다른 눈에 띄는 모습이 있었는데, 상급생, 하급생 할 것 없이 서로 반말을 하며 함께 논다는 것이었다.

시내 큰 학교는 한 살 선배에게도 존댓말 쓰는 게 당연한데 이곳 아이들은 반말은 기본이고 쉬는 시간에도 선배 교실, 후배 교실을 넘나들며 함께 놀고,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다.

동급생 친구가 적은 대신 다양한 연령의 전교생과 함께 어울릴 수 있으므로 웬만큼의 사회생활을 습득하는 데 용이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산골 아이들의 사교생활을 위해 가끔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일부러 마련하기도 한다.

1학기 국어 시간에 우리 하장중 학생들은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저)을 함께 읽었다. 독후 활동으로 학교에 편의점을 하루 열어볼까? 하여 판을 벌였다. 지난 7월의 이야기다. 기왕 할 거 근처 하장초등학교 학생들도 부르면 좋겠다 싶어 일을 좀 크게 만들었다.

마음껏 과자를 골라요 노란 조끼 입은 교장선생님들, 아니 일일 점원의 안내에 따라 마음껏 과자를 고른다.
마음껏 과자를 골라요노란 조끼 입은 교장선생님들, 아니 일일 점원의 안내에 따라 마음껏 과자를 고른다. ⓒ 홍정희

<불편한 편의점> 내용을 반영하자면 점원은 불편한 존재여야 했다. 그리하여 낙점한 점원은 하장초, 하장중 교장 선생님. 두 분의 교장 선생님께 정식으로 위촉장을 부여하고 노란 점원 조끼까지 입혀 야무지게 당일 재고관리까지 맡겼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하장초, 중 교직원의 적극적인 협조와 들썩임으로 일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날 점심 메뉴는 영양샘의 진두지휘로 책에 나오는 '참참옥(참치김밥, 참깨라면, 옥수수수염차)'으로 준비되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붕어빵 기계를 공수해 오셨다. 붕어빵 사장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털모자까지 쓰고 한여름에 슈크림과 팥이 들어간 통통한 붕어빵을 50개쯤 구우셨다. 하장초와 하장중 모두에서 근무 경험이 있는 우리 교무행정사님은 편의점으로 사용한 진로실 벽면의 모든 현수막과 포스터를 도맡아 디자인해 주셨다.

붕어빵 하장불편한편의점엔 한여름에도 붕어빵을 굽는다. 완벽한 붕어빵 사장님으로 변신한 분은 학생부장님.
붕어빵하장불편한편의점엔 한여름에도 붕어빵을 굽는다. 완벽한 붕어빵 사장님으로 변신한 분은 학생부장님. ⓒ 홍정희

하장초에서는 유치원생을 포함하여 전교생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을 태워 온 에듀버스 운전 주무관님까지 자리를 함께해 주셨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중학생들도 가르쳐 진학시켰기에 대부분 학생을 알고 계셔서 이날은 반가운 만남의 장이 되었다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초, 중 할 것 없이 학생들을 두루 살피고 조력해 주신 분들은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었다. 두 학교를 다 합해도 학생 수가 20명이 되지 않고 교직원 수도 비슷한 실정이지만 교실 한 칸에 다 같이 모이니 동네잔치 마냥 들썩이고 신이 났다.

점심은 참참옥 점심은 참참옥(참치김밥, 참깨라면, 옥수수수염차)이다. 책<불편한 편의점>을 따라, 영양실에서 직접 말아주신 참치김밥!
점심은 참참옥점심은 참참옥(참치김밥, 참깨라면, 옥수수수염차)이다. 책<불편한 편의점>을 따라, 영양실에서 직접 말아주신 참치김밥! ⓒ 홍정희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 고르기, 종이접기 해서 접은 개수만큼 과자로 바꾸기, <불편한 편의점> 책 내용 문제 맞히고 과자 고르기 등등을 했고, 하장중의 자랑 노래방과 당구장 체험까지 하며 야무지게 놀았다.

초등학생 한 명은 가방에 그날의 수확물을 잔뜩 넣어 돌아가며 "올해 제일 재밌는 날이었어요!"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래 얘들아, 내년에 또 재밌는 걸로 작당해 만나자!

중학교 연합 체육 대회

준비운동 작은 학교 연합 체육한마당,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모여 준비운동중.
준비운동작은 학교 연합 체육한마당,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모여 준비운동중. ⓒ 홍정희

삼척에는 작은 학교가 많다. 우리 하장중은 두메산골에 있고, 임원항을 끼고 있는 바닷가 마을에는 전교생 13명의 임원중학교가 있다. 그리고 하장중과 임원중의 중간 즈음에 전교생 19명의 미로중학교가 있다. 아직은 더운 날이 지속되는 9월 초입에 세 학교가 뭉쳤다. '하장중, 임원중, 미로중 연합 체육 한마당'을 위해서다.

세 학교 중 유일하게 체육 교사도, 체육관도 없는 우리 하장중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 전체 진두지휘는 임원중 체육 선생님이 맡아 주셨고, 장소는 미로중 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다행히 임원중과 미로중 체육 선생님들께서 우리 학교로 일주일에 한 번씩 겸임 수업을 나오셔서 우리 학생들을 다 알고 계셨다. 또 다행히 우리 학교는 세 학교 중 예산이 제일 많아 이날 행사의 가장 큰 지출을 할애하는 경품 구입을 도맡았다.

작은 학교 연합 체육 한마당이 큰 학교의 그것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라면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는 물론이고 행정실, 영양실, 교무행정사, 교장 선생님도 모두 참여해 경기복을 나눠 입고 함께한다. 체육 선생님들께서는 학교별 대항전이 되지 않고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세 학교의 학생들을 고루 섞어 편을 나누어 주셨다.

체육 선생님 두 분이 모든 학생의 이름과 특징을 꿰고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교직원도 양 팀에 고루 분배되어 경기를 뛰었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 단체 줄넘기에 참가하셨는데 10분간의 연습 시간 동안 (교장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100번도 넘게 뛰었는데 막상 실전 경기에서 0개를 기록하는 웃음을 자아냈다. 기회를 놓칠세라 행정사님께서 "교장 선생님 때문에 0개 한 거 아니에요?"라는 농담을 던진다.

점심시간 연합체육한마당의 점심은 강당에 다같이 주저앉아 치킨과 피자로!
점심시간연합체육한마당의 점심은 강당에 다같이 주저앉아 치킨과 피자로! ⓒ 홍정희

체육 한마당의 꽃은 예나 지금이나 계주렸다. 치킨, 피자로 점심 먹고 오후에 폭신한 잔디가 펼쳐진 운동장에서 계주를 뛰는데 우리 하장중 2학년 채린이가 뽑혔다.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는 와중에 바통을 쥐고 한참 뛰고 있는 채린이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언니 같이 가요~" 앞서 뛰고 있는 타 학교 3학년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계주가 어디 있담!

1학년 민주는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주려고 젤리를 준비해 왔단다. 그런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아 담임 선생님께 먼저 젤리를 건넸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용기를 내보라며 북돋으셨고 마침내 다른 학교 친구 몇 명에게 젤리를 건넸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듣고 민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발야구 폭신한 잔디에서 발야구할 맛 나지!
발야구폭신한 잔디에서 발야구할 맛 나지! ⓒ 홍정희

임원중과 미로중 학생들은 자기네도 고작 전교생이 열몇 명이면서도 7명뿐인 우리 하장중 학생들이 소외될까봐 먼저 와서 말을 걸고 경기에서 안전한 포지션을 배정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긴 팀은 격렬히 환호하며 날뛰지 않고 진 팀도 크게 실망하지도 않으며 다 같이 그냥 "와~" 하며 박수 치고 놀았다. 그렇다. 그야말로 '놀았다.' 그게 다였다. 애초에 이기겠다는 결연한 의지 없이 그저 책상과 교과서를 벗어나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인 청소년 본연의 천진함만 있을 뿐이었다.

출근길 백두대간 출근길의 위엄. 이 길을 매일 출퇴근한다.
출근길백두대간 출근길의 위엄. 이 길을 매일 출퇴근한다. ⓒ 홍정희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교사의 한가한 낭만에 불과한 소리라고 해도 좋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일찍 입시 경쟁에 내몰리지도, 이해득실을 따져 사람을 사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휘황찬란한 놀이공원과 키즈카페, 학원 투어 말고 운동장에서 숨만 쉬어도 백두대간 바람이 코로, 입으로 들어오는 이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놀았으면 좋겠다. 이런 환경을 지켜주고 싶다.

'작은'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어쩐지 '큰' 이라는 가치가 떠오른다. 작은 학교 생활이 기삿거리가 되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건 충분히 '큰' 가치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장 불편한 편의점' 행사는 권지연 선생님께서 쓰신 책 <쌀을 씻다가 생각이 났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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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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