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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하면서 집으로 오가는 길에 인상 깊은 표지석 하나가 있었다. 산속 길가에 '깊은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인데,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였다. 잠시 스쳐 지나가면서 '뭐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곧 잊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다 보니 문득 지명일 수 있다는 생각에 '김천시 대덕면 행정복지센터 누리집'을 찾아보았다.

깊은이 표지석 김천 대덕면과 증산면을 이어주는 고갯길에 이 알림판이 있다. 길 아래에 마을이 있다.
깊은이 표지석김천 대덕면과 증산면을 이어주는 고갯길에 이 알림판이 있다. 길 아래에 마을이 있다. ⓒ 정호갑

그랬더니 '골짜기가 매우 깊기 때문에 지푸이라고도 한다'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지푸이'를 표준말로 옮기면 '깊은이'가 된다. 이 누리집에는 이 밖에도 지명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솔밭골', 마을의 생김새가 떡가래같이 생겼다 하여 '가래실' 등등. 마을 이름이 참 정겹다. 이름만 들어도 그 마을의 특징을 바로 알 수 있다. 요즘 지명을 어설픈 외래어로 하는 곳이 많은데 그곳과는 품격이 다르다.

오늘은 578돌 한글날이다. 뉴스에서 한글의 우수성, 무분별한 외래어 실태 사용 등을 또 많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오늘 하루의 떠듦으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우리말을 가벼이 여기고, 어지럽히고 있을까?

우리말을 가벼이 여기고, 어려운 말, 낯선 말을 마구잡이로 쓰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민중이 아니다.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왜 우리말을 가볍게 여기고 어렵고, 낯선 말을 쓰는 것일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쓰면 서로 생각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그들은 쉬운 말을 쓰는 사람과는 소통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어렵고 낯선 말을 모르는 사람과 자신을 차별하고 싶은 것일까? 그래서 자기들끼리만 생각을 주고받고 싶은 것일까? 어렵고 낯선 말을 쓰는 것이 높은 품격의 조건 가운데 하나일까? 고작 그런 인품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일까?

세종은 훈민정음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한자로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또 백성들이 글을 몰라 자기의 뜻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는 신하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인재를 기르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집현전 학사들조차도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집현전의 학사는 12명인데, 당시 대제학이 비어있었기에 11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7명의 집현전 학사가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로 들어서는 일'이라는 것이다.

집현전 학사 중 훈민정음 반포를 지지한 학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랬기에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사들이 모르게 세종 홀로 만들었다. 세종이 만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도 집현전 학사들이 반대를 굽히지 아니하니 할 수 없어 그들을 1박 2일 동안 잠시 하옥하기도 했다.

그러면 세종은 왜 굳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을 훈민정음 언해본에 또렷하게 밝히고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기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백성들을 위한 배려이다. 이 배려는 백성들의 말을 듣겠다는 것이다. 곧 백성들과 의사소통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임금으로서 세종의 위대함이다.

글은 말과 달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 백성들은 삶의 기쁨, 슬픔, 그리고 억울함, 관리들의 횡포 등등을 글로 남길 수는 있다. 그 글을 임금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임금이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 후 세종의 기대만큼 백성들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은 자기의 속마음을 글로 드러내었다.

세종의 지혜도 놀랍다. 훈민정음은 사실 소리(音)가 아니라 글자(文字)였다. 그런데 세종은 '조선문자'라고 하지 않고 왜 '훈민정음'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세종 임금이 중국 황제의 눈을 어둡게 만들기 위하여 일부러 말이 되지 않는 '정음(正音)'이라는 엉터리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세종이 이름짓고 싶었던 것은 조선문자(朝鮮文字)였다. 조선문자라고 하게 되면 명나라 황제가 노여워하면서 세종 임금을 해롭게 했거나, 조선국을 해롭게 했을 것이다. (려증동, <배달글자>에서).

세종이 성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성들의 말에 기울이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부딪혀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짝 비켜 가지만 결국 이루어내는 지혜.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민중의 말에 귀 기울이는 지도자,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는 지도자를 다시 기대하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인가?

오늘날에는 새로운 말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계층 간에 사용하는 말이 달라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어렵고 낯선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시하고 외면한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흉내 내기 바쁘다. '돌봄(보살핌)'이라고 하면 될 것을 '케어'라고 한다. '학원에 있는 아이를 태우러(데리러) 가야 한다' 하면 될 것을 '라이딩 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낱말의 뜻을 떠올리며 대화해야 할 때가 있다. 이래 가지고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 말은 힘을 가지고 있다. 말의 힘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이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1~9절)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쉬운 말, 느낌 좋은 말을 써야 한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어야 '우리'라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어려운 말, 낯선 말로 자기를 뽐내는 것은 자신의 얄팍한 인품을 드러내는 일이다. 무엇보다 어렵고 낯선 말로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

'밥집 : 식당 : 레스토랑'에서 느껴지는 먹거리의 등급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품격은 내 것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멋이다.

덧붙이는 글 | 훈민정음에 대한 제 생각은 려증동 교수의 <배달글자>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한글날#말힘#의사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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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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