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황량했던 터널이 밝게 빛난다. 터널 벽면은 스크린 영상으로, 천장은 은은한 조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터널 안은 극장이 되고 공연 무대가 된다.
2024년 10월 5일, 강릉 노암터널에서 열린 패션쇼 현장이다.
노암터널은 KTX 노선이 신설되기 전 기차가 다니던 철길이었다. 현재 철길은 노암동에서 중앙시장, 월화거리까지 약 50m에 걸쳐 이어지며, 이제는 예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이날 행사는 2024 강릉시 마을공동체(발아)지원사업인 '노암터널 패션쇼' 지원사업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다. 춤에서부터 패션쇼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 공연이다.
패션쇼는 버려진 옷을 재활용해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며, 판매까지 이어져 자원 순환과 착한 소비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행사다.
공연은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이자 관람객으로 참여하며, 지나가던 사람들도 관객이 되어 자연스럽게 공연에 몰입한다. 관람석과 무대로 변신한 터널무대에 좁거나 불편하다는 불평도 없다. 주민들이 연주하는 하모니카, 오카리나, 트럼펫 공연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최민자(57세)는 이런 공연을 강릉에서 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시민은 매년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두침침했던 터널 안은 관람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차 한 대가 겨우 다니던 회색 터널은 방음벽이 되어주고 칙칙했던 콘크리트 바닥은 몰입도를 높여 주는 무대가 되었다. 터널 천정의 조명은 그 어떤 화려함 보다도 빛을 발했다.
패션쇼에 참가한 한 모델은 "잘 갖추어진 무대는 아니지만 오히려 관람객들과 근거리에서 워킹을 보여주는 게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김복찬(67세)씨는 "이런 공간을 활용해서 자연스러운 공연장으로 만든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터널 안이라서 소리가 밖으로 나기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고 흡족해 한다.
터널 안을 무대로 삼아 열린 이 날 행사가 단순한 패션쇼를 넘어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 예술의 새로운 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