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르티O'라는 동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다닌 지가 벌써 15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 댄이 내게 알려 주면서 자신이 맛본 스파게티 중 최고였다고 어떻게 이곳에 살면서 자신보다 모르냐고 의아해 한다.

여기의 가장 큰 장점은 뒷맛이 개운하다는 점이다. 조미료로 맛을 덮은 겉만 번지르르한 가게들은 재료보다 인테리어에 더 신경을 써도 손님이 줄을 잇는다. 자본으로 무장한 가게들이 자영업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다 잡아 먹는 형국이다.

 이탈리아 음식(자료사진).
이탈리아 음식(자료사진). ⓒ mggbox on Unsplash

마르티O는 다섯 개의 테이블을 갖고도 단골손님으로 북적댔다. 그러나 무리해서 분양받은 매장의 대출금이 부담되어 더 작은 매장으로 옮기고서 사장님의 고충은 악화일로였다.

아무것도 없는 매장을 식당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들인 초기 자금을 회수도 못했는데, 배달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이것 떼고 저것 떼면 손에 쥐는 게 없단다. 결국 어쩔 도리 없이 저녁 8시에 영업이 끝나면 밤을 새워 알바를 하여 가게의 적자를 메우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어요. 다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계속 더 어려워지니 억울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무한경쟁이 되니 돈 있는 사람이 우리 같은 자영업자를 다 잡아먹는 거지요. 나보고 능력 없다고 그러겠지만요."

여가 생활도 없이 오로지 가게에만 매달렸던 당신의 삶이 이런 결과를 얻으니 억울하다는 그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썰렁한 가게에 앉아 묵묵히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나만 등 따듯한 방에 앉아 외풍을 모르고 사는가' 싶어 죄송하다.

 식당사장님은 밤을 새워 알바를 하여 가게의 적자를 메우고 있단다(자료사진)
식당사장님은 밤을 새워 알바를 하여 가게의 적자를 메우고 있단다(자료사진) ⓒ superstraho on Unsplash

작품 '만무방(김유정)'에서 주인공 응오는 추수를 하지 않는다. 마름은 자꾸 수확을 하라고 채근한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응오네 벼를 베어간다. 마침 나타난 형 응칠을 의심한다. 제멋대로 떠돌고 누구네 닭이라도 없어지면 응칠이 소행이니 만무방, 즉 이렇게 염치 없이 못된 사람이 따로 없다.

전과자인 응칠은 몹시 억울해하다. 아무리 자기가 막 돼먹어도 계수씨가 병상에 있는 동생의 벼를 훔치겠는가? 기어이 자신의 손으로 도둑을 잡겠다고 잠복했다가 뜻밖에 응오가 자신의 벼를 베어가는 것을 목도한다.

어둠 속에서 다투다가 응오는 말한다. 형까지 왜 그러냐고. 어차피 공들여 추수해봐야 지주에게 주고 나면 빚밖에 없다고. 누가 만무방이 되고 싶어 되느냐고, 도리어 당신네가 만무방이 아니냐고 묻는 소설이다.

지금은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농사를 짓는 시대도 아닌데, 사장님을 끝 간 곳까지 밀어붙이는 자본주의 앞에 무력해진다.

"그런데 너무 배고프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에서 온조와 비류 자매가 도둑고양이를 보고 하는 말이다. 자영업자들은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다. 도둑이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시대다 AI시대다 아무리 청사진을 보여도 입술 같은 자영업자들을 사지로 내몰면 이가 시리게 되는 일은 자명하다(순망치한). 정치는 스스로가 만무방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마르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의 기록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록중독자입니다. 차곡차곡 쌓인 기록의 양적변화가 언젠가 질적변화를 일으키길 바라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