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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작가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1년 <동정 없는 세상>으로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6년 <아내가 결혼했다>로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내가 결혼했다>는 2008년도에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밖에 소설집 <그 여자의 침대>, 장편소설 <새는>이 있습니다. 장편소설로는 18년 만에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문학동네)로 다시금 독자들을 찾아왔는데요, 이 작가를 지난 9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역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신간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는 "위태롭고 감미로운 세 남녀의 환승 연애", "'평양냉면'처럼 은은하고 중독적"인 연애담이자 "셋이서 추는 왈츠"입니다(알라딘 출판사 책 소개 중).

계속 변하는 사람의 마음... 당신 욕망은 정말 당신 것인가요

- 오랜만에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18년 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한 이유가 있을까요?

"쓰고 싶은 것들 중에서, 써야겠다 싶은 것들 중에서 써지는 것만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쓰고 싶은 것들, 써야겠다 싶었던 것들 몇 개가 안 써지면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기도 했고, 또 이번 소설을 쓰는 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이렇게 길어지게 되었네요."

- 무언가 갖게 되면, 갖고 싶었을 때보다 마음이 식는 것 같습니다. 취미 때문에 구입한 장비가 그렇고 전자제품이 그런 것 같습니다. 관심이 많을 때의 에너지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흔치는 않은 것 같아요. 소설을 읽어보니 사람도 예외가 아니란 이야기 같네요. 박현욱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인간은 누구나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게 마련이지요.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분들은 극소수 훌륭한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사물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자주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인터뷰 진행 중인 박현욱 작가
인터뷰 진행 중인 박현욱 작가 ⓒ 유병천

-그러고 보니, <아내가 결혼했다>는 더 파격적인 소재였네요. 소설과 영화 모두 봤는데 저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을 하겠다는 상황 말이죠. 작가님도 이번 소설 제목처럼 원할 때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나요?

"당연하게도 원했지만 가지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있었지요.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훌륭한 숫자가 적혀 있는 성적표라거나, 매일 밤 떠오르는 그녀의 마음이라거나. 또 나중에 어찌어찌 갖게 되었지만 관심이 시들해졌던 것들도 있었지요.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변하니까요."

- 이번 작품의 모티프가 된 사건이나 추억이 있나요?

"이 소설의 모티프라면 구체적인 사건이나 추억 같은 게 아니라 이런 거일 거예요.
르네 지라르는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라고 했어요.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다는 거지요. 우구를리앙은 <욕망의 탄생>에서 욕망 이론을 토대로 수십 년간의 임상 경험을 통해 사랑과 욕망에 대해 살펴봅니다. 그리고 <세번째 뇌>에서는 현대의학과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모방의 기제가 실재한다고 말하지요.

지라르는 스탕달이나 세르반테스 등의 소설들을 분석해서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거라는 욕망 이론을 정초했는데 저는 그 이론을 토대로 이 소설을 쓴 거지요. 소설 속의 인물들은 지라르의 분석처럼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고 우구를리앙의 임상 경험처럼, 변화되는 사랑의 조건에 따라 마음이 달라져요."

비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열정도 사라질지 몰라요

- 르네 지라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타자의 욕망에 관해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방보다 중개자로 인한 갈등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소설에서도 중개자가 등장하죠. 현실에서도 엄청 자주 접하고요. 욕망과 중개자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업 광고를 통해 우리는 이미 욕망이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라 모델의 욕망을 따라하는 거라고 느끼고 있잖아요. 광고 속 모델들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가까운 데 있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누군가 뭔가 하는 게 좋아 보여서 따라하다 보면 경쟁 관계가 될 수도 있고 거기서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지요. 그 갈등이 극대화 되면 누구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갈등을 극복한다는 게 지라르의 주장이에요.

우구를리앙은 욕망이 우리를 서로 닮은 존재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욕망은 우리가 타인을 모방하게 함으로써 그들과 가까워지게 만든다는 거지요. 또한 욕망은 우리가 모방한 타인과 경쟁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극단적으로 상대를, 또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게 하기도 합니다. 금기와 경쟁을 통해 욕망이 최고조에 달하는 경험이 곧 사랑이기도 합니다. 금기도, 경쟁도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지요.

소설 속의 두 남자 태주와 재하는 서로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서로의 사랑을 모방하고 욕망합니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사랑을 쟁취하면서부터 경쟁의 기제가 사라지고 그들의 욕망도 사그라듭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들의 욕망은 새로운 대상으로 향하게 됩니다. 소설의 이런 골격이 우구를리앙의 욕망이론으로부터 온 건데, 사실 새로운 건 아니에요. <안나 카레니나>도 그렇고 또 지라르가 분석한 소설들도 당연히 심층에 이런 구조를 지니고 있지요. 실제로 우리 사는 게, 우리의 사랑이라는 게 이런 측면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문학동네) 박현욱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문학동네) 박현욱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문학동네) 박현욱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문학동네) 박현욱 ⓒ 문학동네(www.munhak.com)

-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가 관계 속에서 서로를 비교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고, 가진 것을 비교하고, 관심의 크기를 비교하고, 심지어 사람과 고양이까지 비교를 하죠. 인간에게 비교하는 마음이 사라져야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로 읽었습니다. 제대로 읽은 건가요?

"기본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소설의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의미를 부여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 작가가 주려고 하는 메시지 같은 건 없어요. 그 비슷한 뭔가가 굳이 있다고 한다면 마음의 평온 같은 게 아니라 사랑의 여러 모습 중에 이런 것도 있다는 정도일 거예요. 비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올 수 있겠지요. 하지만 비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열정도 사라질지 몰라요."

- 비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열정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왜 우리는 멀리 있는 대상보다 가까이에 있는 대상에 비교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비교하는 대상이 주변 인물이 되는 이유가 뭔지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 수도 있지만 일런 머스크가 어떤 기업을 인수하든 우리가 배 아플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주커버그는 배가 아플 수도 있겠지요. 먼 곳에 있는 롤모델보다는 가까운 데에 있는 경쟁자의 행위가 우리를 자극하는 건 굳이 학자들의 분석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당연한 일 같아요."

 18년만에 장편소설로 돌아 온 박현욱 소설가
18년만에 장편소설로 돌아 온 박현욱 소설가 ⓒ 유병천

- 18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요.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진 않았나요? 소재는 있는데 끝까지 끌고 나아갈 힘이나 아이디어가 없을 때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어떤 것들이 계속 글을 쓰도록 하는지 궁금합니다.

"18년은 장편 소설의 간격이고 그 사이에 단편집도 있고 책으로 묶이지 않은 단편소설도 나왔긴 합니다만, 어쨌든 긴 시간이 있기는 했지요. 글쓰기를 끌고 나갈 힘이 없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가끔 그분이 오셔서 내 대신 글을 써 주는 것 같은데 그분이 안 오시니 난감할 뿐이지요.

계속 글을 쓰도록 하는 힘이야말로 간절하게 원했을 때 가지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네요. 그게 뭔지 알았다면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겠지요. 그 힘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제 경우에는 그저 어쩌다 보니 계속 쓰게 되었다고 할 수 밖에요."

- 이번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 받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소설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쓰고 싶은 것들 중에서 혹은 써야 한다 싶은 것들 중에서 써지는 걸 여럿 만들어보자는 것 정도가 있겠네요.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요. '여기 드물게 매력적인 소설이 있으니 한번 음미해보시면 좋을 거예요.'"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박현욱 (지은이), 문학동네(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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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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