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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7월부터 동네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작은 글쓰기 교습소를 시작했다. 그 뒤로 약 2달,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고맙게도 각 학년 별로 아이들이 꼼꼼하게 채워지고 있다.

이번주의 교육 커리큘럼이 '글씨체 교정'이어서, 한 주 내내 교습소 아이들 글씨체 교정 수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꽤 극적이었다. 사실 나도 이렇게까지 잘 해낼수 있을지는 예상을 못 했다. 나로서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 아무렴.

글씨체를 좋아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몇가지 공식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가장 첫 번째는 좋은 자세다. 두 번째는 글씨 획을 최선을 다해 똑바로 긋는 것이고, 세 번째는 글자 크기를 적절히 조절하고 칸에 맞추는 것, 네 번째는 충분한 띄어쓰기다.

하지만 이런 공식만으로 아이들의 글씨체가 바뀐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온 답은 아니오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아이들의 글씨체를 바꾸는데 필요한 것은 사실 믿음이었다.'

글씨체를 교정하는 것은 사실 삶과 닮았다 아이들의 글씨체를 바꾸는데 필요한 것은 사실 믿음이었다
글씨체를 교정하는 것은 사실 삶과 닮았다아이들의 글씨체를 바꾸는데 필요한 것은 사실 믿음이었다 ⓒ 김정주(본인)

공식을 가르쳐 준 뒤에 나는 집요하게, 글씨를 쓰는 아이들을 믿어줬다. 너도 잘 쓸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실제로 한글자 한글자 쓸 때마다 응원단이라도 된 듯 격한 응원을 발사했다.

너무나 예쁜 글씨가 쓰이면 나는, 'OO아 잠시만 멈춰봐,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쓰자. 이 글자 정말 기가 막히게 썼다. (눈을 마주치면서) 거봐, 쌤이 할 수 있다고 했잖아'라고 말했다.

쓴 글의 이전 글씨와 이후 글씨를 비교해서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는 '맙소사 선생님 진짜 이게 내가 쓴 글씨 맞아요?'라며 감탄하기도 했고, '내 글씨가 이렇게 되다니 마법 같아요, 나도 글씨를 이렇게 예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요' 등 각자의 뿌듯함을 마음껏 표현해주었다.

신비로운 지점은 글씨체 교정을 끝난 아이들은 하나 같이 자기 효능감이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글을 읽을때도 더 자신있게 읽고, 말을 할 때도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분명 그랬다. 그건 마치 자신을 뜨겁게 믿어주고 따뜻하게 응원해준, 선생님인 나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해석이 되었다. 특히 글씨체 교정 수업 이후, 나와 아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친밀해졌다.

<추석에 아빠 차 타고> 교습소에서 교정한 초 2 아이의 글씨체
<추석에 아빠 차 타고>교습소에서 교정한 초 2 아이의 글씨체 ⓒ 김정주(본인)

가르치며 깨달은 것, 글씨체를 교정하는 것은 사실 삶과 닮아 있다는 거다.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데는 수도 없는 공식 같은 것들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공식만으로 우리의 삶이 바뀌던가. 돌아보면, 내 삶을 나아지게 한 것은 나 아닌 누군가의 믿음이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다른 좋은 사람들의 믿음,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믿음, 그런 믿음들이 모여모여 결국 나를 해낼수 있게 만들어 주고야 말았다.

아이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교육이란 여러 이름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 힘을 믿어주는 것이야말로 제법 괜찮은 교육이지 않나 말하고 싶다.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예쁜 글씨를 써낸 아이들의 작품을 보니 내 안에서는 이런 소리가 났다.

'얘들아, 너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그걸 잊어버리지마. 때론 삶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글씨처럼 삐뚤빼뚤하게 쓰여질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 선생님이랑 같이 이렇게 글씨체를 고친 것을 기억해줄래?

삶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 너희는 할 수 있어. 언젠가 이 순간이 너희에게 용기와 응원을 주는 소중한 온기가 되어주길 바란다.'

글쓰기 교습소 쓰고뱉다 아이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 교습소 쓰고뱉다아이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 김정주(본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쓰고뱉다#글쓰기교습소#교습소#교육#어린이라는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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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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