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3 16:21최종 업데이트 24.08.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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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 했다. 과한 예절은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 부인이 '그저' 감사 표시에 지나지 않는 물건을 받은 일에 대통령이 직접 고개까지 숙였으니, 되돌아보면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과례라 할 만하다.

앞서 있었던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명품백을 외국회사의 조그마한 백이라 칭하고 사과 대신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로 주고받았던 명품백 수수 의미 규정이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적절한 발언이라 할 수도 있겠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에 무혐의를 결정한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말이다.

오히려 사과는 국민이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매정하지 못해 받은 감사 표시에 김건희 여사 수사를 요구한 국민들이나, 국회 청문회에 김건희 여사 출석이 필요하다며 대통령 관저 앞까지 찾아간 야당이 반성해야 하고 지탄받아야 할 처지다.

검찰 발표대로라면 진실 규명을 요구한 국민들은 검찰에게는 피의자가 되고, 대통령에게는 여론몰이와 선전 선동으로 대통령 부인을 음해한 반국가 세력으로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정국이다. 법의 척도가 뒤틀리면 잘잘못이 바뀌는 것은 예사다. 정의의 수호자라는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무혐의 결정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윤석열 검찰에서 빈번하게 반복되는 예삿일의 하나일 뿐이다.

모든 국민이 본 금품수수에 면죄부

지난 6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했다는 내용의 비위 신고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는 300만 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받아 청탁금지법을 어겼다며 참여연대가 신고한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의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그리고 8월 8일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의 실무 총괄 책임자로 죽기 전 지인에게 "권익위 수뇌부에서 김 여사 명품 가방 사건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다. 내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권익위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에서 보여준 모습은 반부패 총괄기관과 거리가 멀다. 공직자의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1회에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인지하고도 즉시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는 게 청탁금지법의 근간이다.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반부패를 총괄한다는 권익위는 국민의 권익보다 김건희 여사 보호를 택했다.

공직자 배우자는 금품을 받아도 상관없냐는 기초적인 의문에 해명조차 없었다. 명품백을 건넨 최재형 목사를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총선을 의식해 결과 발표를 미루고 조사 기간 연장까지 했던 권익위가 배우자의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사건을 종결한 건 본연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본 대통령 부인 금품 수수를 묵인하는 건 윤석열 정부 권익위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해서 부패방지국장의 죽음을 두고 "자체 진상 조사는 시급하지 않다, 사건 처리와 관련한 외압은 없었다, 내부 압박이 있었다는 부분은 제가 들은 바도 없고 보고 받은 바도 없다"는 유철환 권익위원장의 발언은 믿음도 놀라움도 없다. 반부패 총괄기관의 본분을 벗어던진 윤석열 정부 권익위는 몇 번이나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의 무혐의 결정은 예정된 결말이라 할 수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 소환조사 요구에도 4년 넘게 묵묵부답이었던 검찰은 지난 7월 20일 김건희 여사를 소환 조사했다. 조사는 검찰청사가 아닌 대통령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이뤄졌으며 검사들은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제출하고 조사실에 들어갔다는 건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

검찰청사는 경호가 힘들어 제3의 장소를 택했으며 검사들의 휴대폰 제출은 녹음이나 생중계 우려가 있고 폭발물을 설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김건희 여사 측 설명이었다. 이는 수사 검사에 대한 모욕이자 준사법기관인 검찰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 발언이다. 그러나 검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김 여사를 소환한 게 아니라 김 여사가 검찰을 소환했다는 비아냥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김건희 여사의 수사는 사전에 검찰총장에게 보고되지도 않았다. 법 앞에 성역은 없다며 원칙적 수사를 강조한 이원석 검찰총장 '패싱'이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총장은 사전 보고하지 않는 것에 대해 수사팀을 질책했고 대검찰청 감찰부에 진상 파악을 지시했지만 논란은 거기에서 그쳤다. 힘 빠진 검찰총장의 모습이 비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이 무혐의로 가닥을 잡았다는 뉴스가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검찰 무혐의 결정의 본질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 연합뉴스


검찰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가 윤석열 대통령 직무와 관련성이 없고 대가성도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 직무 범위를 규정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청탁 내용이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고 최재형 목사도 청탁이라고 주장하는데, 개인 친분 사이에 오간 선물이라고 무혐의로 결정한 건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도식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청탁금지법에도 공직자의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1회에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이 넘는 '금품' 받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다. 선물은 되고 청탁성 뇌물은 안된다는 구분은 있지도 않다. 법의 잣대로 죄의 무게를 잰 것이 아니라 권력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법의 잣대를 뒤틀어 버린 게 검찰 무혐의 결정의 본질이다.

권익위와 검찰에 공정과 상식은 없다. 윤석열 정부에 법과 정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법과 원칙은 검찰과 정권의 의도대로 뒤틀리고 휘어진다. 날마다 뒤틀리고 휘어지는 법의 존엄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폭염만큼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예삿일이라고, 날마다 반복되는 일이라고, 틀린 게 맞다고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무혐의 결정은 틀렸다. 온 국민이 다 본 금품수수다.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를 '법비'(法匪)라고 한다. 여론몰이, 선전 선동의 반국가 세력보다 법비의 실체는 더 명확하고 해악은 직접적이다. 권익위가 막아서도,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해도, 대통령이 몰카 공작이라고 해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국민과 법비가 대척점에 서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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