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9 07:03최종 업데이트 24.08.1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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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에드워드 핼릿 카(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이 말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최근 일제의 식민지배를 둘러싼 역사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내부 갈라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광복절마저 반쪽짜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도를 넘은 친일적 행보 때문이다. 5년짜리 정권이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국민적 합의나 의견 수렴 없이 강행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보수는 졸지에 친일을 넘어 종일(從日), 일본 극우의 추종 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논란과 친일 외교의 근시안성

이번에 쟁점이 된 독립기념관은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파동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반도 침략을 '진출'로 표현하고, 강제징용에서 '강제성'을 삭제했으며,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일본의 침략 행위와 전쟁 범죄를 축소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대응해,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조차 언론, 학계, 시민사회의 일본 역사 왜곡에 대한 규탄과 분노를 받아들여,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7년 국민 성금으로 독립기념관을 설립했다. 그런 독립기념관의 수장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일본 국적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고 친일인사의 명예 회복을 주장하는 인물이 임명되었다.

일본 교과서 파동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 우익의 역사 수정주의가 한국을 포위하고 있는 듯한 상황에 이르렀다.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인물들이 주요 역사 관련 단체의 장으로 속속 임명되고 있는 것이 그 정황 증거다.

더불어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인 대일 외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지 않고,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을 강행했으며,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도 사실상 찬성해 줬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지지 세력에 대한 과신과 한미일 3국 군사동맹 강화에 대한 조바심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단기적 외교 성과를 위한 시도는 국가의 신뢰와 정체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정서를 무시하는 정책은 결국 내부 갈등을 증폭시키고,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외교 입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국내외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독일이 나치의 만행을 인정하고 책임을 진 것이 오히려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고 유럽 통합의 주역이 된 사례를 상기해야 한다. 일본 또한 과거사를 직시하고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할 때 비로소 아시아의 신뢰 받는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단기적 이익에 급급해 역사를 왜곡하거나 타협하기보다는,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는 장기적이고 원칙적인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한미일 협력의 토대를 마련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길이다.

강제성의 문제 왜 중요한가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 연합뉴스


이번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느냐의 문제였다. 많은 국민들이 '강제'라는단어가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수 있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논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 인식과 국가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불법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처음부터 부당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그리고 항일 독립투쟁이 정당한 저항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근거가 되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국가유공자로서 예우받는 기반이 된다.

더 나아가, 강제성을 일본이 인정하는 것은 1945년의 해방이 단순한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부당한 지배로부터의 정당한 독립이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 역사 위에 세워졌다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이며, 현재와 미래의 억압과 차별에도 저항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제헌헌법도 대한민국의 기원과 정체성을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명시하며,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역사적 연속선상에서 건립된 민주독립국가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는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근현대사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그리고 미래 지향적 가치관 형성과 깊이 연관된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한일 양국의 발전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 관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끈질기게 일본을 압박하고, 지속적인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배신하는 것이며, 반헌법적인 행위다.

일제와 서구의 식민지배는 왜 다른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해 세계사적 관점을 강조한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120여 개국 이상의 경험과 우리의 식민 경험이 별반 다르지 않으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웠던 식민지 근대화론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관점은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그 본질과 양상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가 주로 비서구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면, 일본은 같은 한자문명권 내에서 오랜 역사적 관계를 맺어온 이웃 국가를 식민지화했다. 그 문명권에서 일본은 근대 이전 변방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식민 통치의 성격과 강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고 실험으로, 20세기 초중반에 영국이 프랑스를 식민지화했다고 상상해 보자. 영국은 프랑스에 강력한 동화정책을 펼쳐, 프랑스어 사용을 금지하고 영어를 강요했으며,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억압했다. 경제와 정치를 장악하고, 종교까지 통제하며, 프랑스인들에게 강제 노동을 강요했다.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와 유사하다.

만약 영국이 식민 지배가 프랑스 발전의 원인이라 주장한다면, 프랑스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는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처벌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차 대전 후 프랑스는 수만 명의 부역자를 처벌했고, 특히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 대해 엄중히 대응했다. 이는 프랑스의 도덕적 정화와 국가 정체성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저항 운동 참여자들이 새 지도층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경우도 해방 후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프랑스처럼 철저한 친일부역자 청산이 가능했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최대 비극은 바로 이 분단이다. 만약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이 독일처럼 분단되었다면, 동아시아 냉전의 축이 바뀌고 우리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즉, 분단과 냉전 구도가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핵심 요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우리는 현재의 한일 관계를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의 국가 정체성과 미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과제다.

한일협정 60주년, 내년이 더 우려스럽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광복회, 56개 독립유공단체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역사는 권력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89년의 생을 통해 깨달은 역사의 진리라며 이 말을 남겼다. 그는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는 없다"는 강력한 경고도 덧붙였다. 울림이 큰 말씀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일제 강점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쟁점이 아닌, 우리의 근현대사 인식과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다. 이를 간과하는 것은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적 행보와 역사 왜곡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내년 6월 한일협정 60주년을 계기로, 정부가 '신한일협정'이나 그밖의 선언을 통해 독도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를 일괄타결 하려는 움직임이 우려된다. 이는 두고두고 우리 외교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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