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에 관한 김형석 관장의 블로그 글.
김형석
백선엽에 대한 그의 해석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위 블로그 글에서 그는 백선엽의 회고에 나오는 "우리가 좇은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라는 문장에 대해 언급한다. 간도특설대 장교 백선엽이 친일을 했다는 핵심 증거인 이 문장을 김형석 관장은 이렇게 해석한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우리 부대' 즉 간도특설대를 가리키는 말이지, 백선엽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항일 게릴라를 토벌했다'고 하지 않고 '우리 부대가 항일 게릴라들을 토벌했다'고 했으므로, 백선엽 개인이 토벌했다는 증거로는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궤변에 가까운 말이다. 친일은 청산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역사학자라면, 이런 논리 전개가 담긴 글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1948년 건국설 주장... 독립기념관장 자격 있나?
일제강점기 역사인식에 대한 김형석 관장의 문제점은 친일 문제나 백선엽 평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시기를 바라보는 그의 기본적인 관점에서도 중대한 결함이 나타난다.
정부수립 이후의 역대 헌법들은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세워졌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례로 1948년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선언했다.
1919년에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것은 그때부터 대한민국이 국가 기능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때의 자주독립정신을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로 삼겠다는 의미다. '1919년 대한민국 건국'은 그런 의미다.
그런데도 극우세력은 대한민국이 1919년이 아닌 1948년에 건국됐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정반대다. 항일과 자주독립이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독립기념관 관장실에게 찾아가 김형석 관장에게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됐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그는 아래와 같이 대답할지도 모른다. 2022년 2월 21일 자 블로그 글인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에 나오는 문장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
이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그는 "1919년설의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결정적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가로서의 요건인 국민·영토·정부·주권의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의 한계를 나타낸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통성을 1919년 3·1운동에 두는 것은 이로 인해 수립된 임시정부가 국민·영토·정부·주권을 모두 갖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날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역사학자가 네 가지 요건의 결여를 이유로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1919년이 아닌 1948년에 뒀다. 3·1운동 정신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그 정신으로 한일관계를 올바로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학자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이 쓴 블로그 글에서도 나타나듯이 김형석 관장은 3·1운동과 친일문제 등에서 문제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그의 역사인식은 독립기념관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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