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는 미 CNN 뉴스 ⓒ CNN
방글라데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재개되면서 사망자가 100명에 육박하는 등 유혈 사태가 격화되고 있다.
AP통신, CNN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현지시각 5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비롯한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주요 고속도로를 막아섰고 관공서를 습격해 불을 질렀다. 다카에서는 시위대가 여당 사무실을 공격하고 경찰과 충돌하면서 여당 지도자 1명과 학생 2명 등 최소 11명이 숨졌다.
북동부 지역 에나예트푸르의 한 경찰서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경찰 14명이 사망했다"라고 발표했다.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할당에 성난 대학생들
방글라데시 최대 일간지 <프로톰 알로>는 이번 사태로 최소 95명이 숨졌고 부상자도 수천 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전국에 통행 금지령을 내리고 사흘간 임시 공휴일을 선포했다. 또한 인터넷도 차단했지만, 시위는 통금 발령 이후에도 계속됐다.
시위대는 6일에도 다카에서 대규모 행진을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가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하시나 총리는 육군, 해군, 공군, 경찰 수장이 참석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학생이 아니라 국가를 불안하게 만들려는 테러리스트"라며 "우리 국민들이 강력한 힘으로 이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해 줄 것을 호소한다"라고 말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 최고 대표는 성명을 내고 "방글라데시의 충격적인 폭력 사태가 중단돼야 한다"라고 밝혔고, 인도 등 주변국들은 자국민에게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방글라데시 여행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방글라데시 정부가 독립유공자 자녀에게 공직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촉발했다.
구직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공직 할당제에 반대하며 지난달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전국적인 통행 금지령을 내리고 군대를 배치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100명 넘게 숨졌다.
AFP통신은 자체 집계를 통해 이번 사태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3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15년째 '장기 집권' 하시나 총리, 최대 위기
대법원이 독립유공자 자녀의 공직 할당 규모를 5%로 크게 줄이는 절충안을 내놓으면서 시위는 진정되는 듯했으나, 시위 체포자 석방과 하시나 총리의 사과 등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시위대가 다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총리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과 달리 이번 시위는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까지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시위대는 납세 거부와 노동자 동맹 파업 등 전면적인 저항에 나서기로 했으며, 특히 방글라데시의 국가 기간산업인 의류 부문에서 47개 제조업체가 시위대와 연대하면서 하시나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시위대 지도자인 나히드 이슬람은 시위 연설에서 "살인자 정부에 정의를 요구하거나 대화할 수 없다"라며 "용서를 구할 시간은 이미 지났고 하시나 총리는 사임하고 법정에 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별도의 성명을 통해서도 "인터넷 차단이 계속되고 시위대가 실종되거나 체포되고, 살해 당한다면 우리는 하시나 총리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9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하시나 총리는 지난 1월 야당의 보이콧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하며 5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번 반정부 시위 사태로 최대 위기에 몰렸다.
관심은 쿠데타 전력이 있는 방글라데시 군에 쏠리고 있다. 하시나 총리는 군이 지금보다 강경하게 시위 진압에 나서기를 바라지만, 전직 장성들이 시위를 지지하면서 군이 개입을 망설이고 있다.
육군 참모총장 와케르-우즈-자만 장군은 "방글라데시 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주요 국가 시절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곳에 있을 것"이라며 "군은 국민 신뢰의 상징"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