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2 12:12최종 업데이트 24.08.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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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의약품 품절 문제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전 지구적 팬데믹이었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제적으로 의약품 공급망이 경색되고, 반대로 감염병으로 약의 수요는 크게 증가하면서 약을 제때 구하기 힘든 문제가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의원이나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조제해야 하는 약국은 이 문제에 직격탄을 맞는다. 해열제, 기침약, 코감기약부터 변비약, 당뇨약, 호르몬제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품절 문제가 나타는데 그중에서도 참 고약한 약이 하나 있다. 바로 무릎 골관절염 환자들이 보조적 수단으로 처방받는 '이모튼'이라는 약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비슷한 제품을 약이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치료에 필수적인 약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엄밀한 과학적 검증을 통해 개발된 약도 아니다. 그럼에도 환자가 이모튼을 처방받는 순간 약국에서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이 되는 마법에 빠진다.

약사들이 주로 거래하는 도매상에서 구하기 힘든 이 약을 어떻게든 구하기 위해 약사들은 동분서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참 어렵다. 약을 못 구한 약사가 환자에게 "이 약 효과도 미미하니깐 안 드셔도 된다. 그냥 빼 드리겠다"라고 말하기도 궁색하기 때문이다.

이모튼, 어떤 약이길래...
 

이모튼 캡슐(프랑스 제품명: Piascledine) ⓒ 종근당

 
그럼 도대체 이모튼이 어떤 약인지 자세하게 살펴보자. 먼저 성분은 조금 친숙하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아보카도와 대두(콩)를 원료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보카도와 대두는 압착하면 식물성 기름이 나오는데 이 기름에서 불검화물(알칼리화되지 않은 물질)을 고순도로 추출하면 그게 이모튼이 된다. 원래 아보카도 오일은 오래전부터 무릎에 좋다고 알려져 식품 형태로 먹었는데 특이하게 프랑스에서는 1977년에 관련 제품을 정식 약으로 허가하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랫동안 외국의 의약품 허가증만으로 약을 허가하는 제도를 운영하였다. 약이 효과적인지, 안전한지 검증하는 책임을 교묘하게 외국 규제기관에게 떠맡기는 제도였다. 당시 중진국이었던 한국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모튼은 프랑스 허가증을 이용해 2000년에 한국에 처음 도입되었고 운좋게 국민건강보험의 검증체계를 갖추기 전에 건강보험 급여목록에도 등재될 수 있었다. 결국 47년전 프랑스에서 허가된 약은 20여년 전 건강보험 급여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에서 연간 500억 원을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4년 만에 평가를 뒤바꾼 의학교과서

잘 나가는 이모튼에도 위기가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2022년 급여적정성 재평가의 대상약으로 이모튼을 지목하였기 때문이다. 재평가에서 당연히 이모튼의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할 만한 임상문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보충제 수준에 선호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는 수준의 자료들만 있었고, 많은 임상문헌에서도 이모튼의 효과를 불분명하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2년 류마티스학 교과서가 4년 만에 신판으로 개정되면서 이모튼의 재평가 결과가 뒤바뀌었다. 2018년 교과서는 이모튼이 '골관절염의 통증개선에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던 표현을 2022년에는 '골관절염의 통증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로 바뀐 것이다. 심평원은 류마티스학 교과서의 기술을 근거로 이모튼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정리하였다. 하지만 이는 논란이 있는 결정이었다. 약의 효과성 검증을 임상시험 등의 자료가 아닌 교과서의 기술만으로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류마티스학 임상진료지침들은 보충제 수준에서 다루는 아보카도와 대두의 불검화물을 유독 한국 교과서만 치료제로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가 이어졌다. 주요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이모튼 사용을 건강보험이 지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원개발국인 프랑스는 2013년에 진행한 의료기술급여 평가에서 이모튼이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하여 급여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모튼 국내 제조사는 2013년에서 2016년에 국내 대학병원에서 이모튼의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했지만 해당 시험의 결과는 결국 공개하지 않았다. 제약사는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였음에도 재평가 과정에서 이를 근거자료로 제시하지 않았다.

건강기능식품에 가까운 약을 정부가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환영할 수도 있다.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크게 해롭지도 않을 거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정적인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면 진료상 필요하지 않은 약에 대한 재정지출은 반드시 줄여야 한다. 수백억 원을 지출해서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다 보면, 정작 중증환자들이 꼭 필요한 약이나 의료기술에 대한 급여화는 늦어질 수 있다.

건강보조제가 필수약이 되는 저주에 빠진 약사
 

서울 종로구의 약국 모습. 2020.6.16 ⓒ 연합뉴스

 
결국 급여가 유지된 이모튼은 최근에 공급부족 문제를 겪으면서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이모튼이 있는 약국을 안내하자 반대로 이모튼을 구하지 못하는 약국이 병원에 항의를 벌이는 일도 생겼다.

또 이모튼을 구하지 못해 환자들 사이에서 약국에 약이 없다는 소문 때문에 약사가 전전긍긍한다는 뉴스도 있다. 약인지 건강기능식품인지 모호한 약을 두고 서로 구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희극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약을 구하지 못하는 약사에게 이 문제는 약국을 접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품절사태의 해법마련을 위해 필수약의 기준 마련에 대해 매번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수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모튼 같은 약에 대해 복지부는 적극적으로 대안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애먼 환자와 약국만 혼란을 겪는다.

복지부는 필수약 기준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왜 필수적이지 않은 약이 환자에게 처방되고 건강보험에서 급여되는지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논의는 수레바퀴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이모튼이 불러온 이 혼란이 현재 필수약 논의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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