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새로 선출된 영국 하원의원들이 런던의 의사당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영국 의회
다수의 의중이 집단을 운영한다는 의미의 민주주의는 고대 시대부터 있었다. 다만 다수의 의중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단의 운영에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고, 민주주의 역사란 곧 민주주의 제도의 역사다.
모든 민주주의 제도의 딜레마는 결국 어떻게 서로 다른 다수를 하나의 결정체로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된다. 안건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최후의 누군가는 매듭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최후의 누군가의 권한을 그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어디부터 제한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전제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최종 결정권자를 전제주의의 우두머리와 어떻게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제도적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인, 수직적인 권력 행사가 반복되는 것은 최종 결정권자의 역할이 여전히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과 결정이 잘못됐을 때, 그 잘못이 독단적 지위로 인해 바로잡을 수 없다면, 전제주의 대비 민주주의의 비교 우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장으로서 대통령이라는 제도는 미국 건국 당시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왕이든 또는 다른 어떤 직위이든, 국가원수는 행정 권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됐지만 미국은 달랐다.
1788년 영국과 긴장 관계 속에 탄생한 신생국가 미국은 전시에 준하는 국가 운영이 필요했고, 따라서 영국 왕에 준하는 권력의 정점이 요구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국식 군주제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대통령이다.
그랬기 때문에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제한된 행정부 수장 역할에도 불구하고 입법권력과 사법권력을 압도하는 국가원수급 권력이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전제주의와 달리 민주주의라면 이처럼 위험한 제왕적 권력장치도 통제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따라야 했다.
민주주의는 각종 직무의 고유권한과 독립성이 상위 권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도록 법적 보장을 갖춰야 한다. 특히 특수한 직무에 대해서는 그래서 엄격한 임기와 신분의 보장이 주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통제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이렇게 대통령을 포함, 고위 공직자에 대한 통제를 제도화한 것이 탄핵이다.
의원내각제의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제도가 익숙한 이유는 정해진 임기 안에서는 대통령의 직위가 제왕에 버금가는 최고 수준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행정부 수반인 총리는 의회의 불신임만으로 교체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군주 신분인 영국의 국가원수에는 탄핵이 존재할 수 없다. 행정부 수반인 총리에게도 해당하지 않는다. 의회의 다수에 의해, 또는 소속 정당의 요구에 의해 간단한 절차를 통해 사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탄핵은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을 겸하는 대통령이라는 직위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각 견제를 의회 독재라 부르는 것은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