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4 09:51최종 업데이트 24.07.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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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가 진행 중인 어머니를 보며 단지 치매만 아니라 늙음, 병과 죽음 등 인생 전반에 대해 새롭게 배운다. ⓒ 고정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할 때 생로병사만큼 중요한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할 수 없는 생로병사를 마치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출생과 결혼은 환영하며 축하하는 반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없는 일처럼 가리고 숨기려 한다.

생로병사가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최대한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과정을 잘 치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경조사다. 나는 언젠가부터 우리의 경조사들을 대할 때마다 뭔가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그 찜찜함의 실상은 사람은 사라지고 대행사들만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결혼은 결혼식을 멋지게 잘 거행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은 온통 신랑과 신부를 왕자와 공주 만드는 신화의 연출에만 집중되는 것 같다. 주례사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순서는 아예 빠지고(주례사를 되살리라는 주장은 아니다), 멋진 무대 공연처럼 연출되는 결혼식은 결혼이 화려하고 꿈같은 나들이라는 신화를 심어준다. 어쩌면 결혼식 하루만이라도 복잡하고 골치 아픈 현실은 다 잊고, 꿈과 신화에만 빠져 있으라는 애처로운 배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축하와 기쁨의 잔치보다 더 자주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늙고 병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아프고, 계속 늙는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 여성 평균수명은 90.7세, 남성 평균수명은 86.3세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2022년 건강 수명(특정 나이대의 사람이 장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남아 있는 햇수)은 65.8세로 2년 전인 2020년 66.3세보다도 0.5년 줄었다고 한다(통계청 추산).

더구나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예전에는 '장수 만세'라는 말도 있었지만, 단순 통계만 보아도 20년 이상은 여러 질병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더는 가족부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어려움은 가중된다. 그래서 특히 길어진 후반생을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관심과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어머니의 치매... 두 세계를 살고 있는 걸까?

여기서 내게도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오는 치매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만 90세인 내 어머니도 치매 판정을 받으신 지 벌써 7년째가 되었다. 모든 난치병이나 중대 질병이 그렇듯이 치매도 본인이나 가족 등 주변인들에게 충격과 두려움으로 시작된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노인 무료 치매 검사 소식을 조카에게 처음 듣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아니, '혹시나'보다는 '그럴 리가'라는 마음이 더 컸다. 어머니는 80대가 지난 연세에도 항상 총명하고 본인도 '치매 걸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성경은 물론, 이해 여부를 떠나 신문과 잡지,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의 검사에서 치매 판정을 받은 후부터 빠르게 치매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5남매는 매달 돌아가며 어머니를 모시다가 결국 시설에 입소시키게 되었고, 그러다가 코로나 2년을 맞았다. 그때는 한 해를 통틀어도 한두 번밖에 뵐 수 없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셨다. 그러다가 누나가 어머니를 돌보겠다며 모셔갔다가 본인이 수술할 일이 생겨 포기하고, 나도 할 수 있는 대로 몇 개월을 모셨다가 다시 시설로 보내드렸다.

치매가 진행 중인 어머니를 보며 단지 치매만 아니라 늙음, 병과 죽음 등 인생 전반에 대해 새롭게 배운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인생과 한 사람의 세계를 타인의 관점에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치매인은 시간, 공간이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익숙한 시간, 공간이 '정상'이라 믿기에 그분들을 어떻게든 거기로 되돌리기 위해 애를 쓴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거의 기억 속의 과거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81년 아버지를 여의었다. 모친은 홀로 된 후 지금껏 40년이 넘는 세월을 과부로 살아오셨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 모친은 나이 50도 되기 전 떠난 남편을 늘 그리워했다.

그러나 치매가 더 깊게 진행되면서, 어머니는 남편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자식들의 이름과 관계도 잊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은 것은 놀랍게도 젊은 시절 돌아가신 당신의 엄마(외할머니)와 아빠(외할아버지)였다. 자다가도 슬금슬금 일어나 벽을 짚고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신다. 깜짝 놀라 붙들고 "어디 가시냐?"며 다시 모셔 들이려 하면 엄마와 아버지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신다며 가야 한다고 하신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 괜히 나도 감정이 울컥 올라와 붙들고 운 적도 있다. 치매인이 이렇게 '엉뚱한' 소리나 행동을 하면 가족은 대개 그런 말이나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설득하거나, 제지하려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로 '엉뚱한' 모습을 보이면 가족은 당황스럽고, 슬퍼서, 일단 부정하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우리와 다른 어머니의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게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치매이신 어머니는 틀림없이 우리와는 다른 자리에서, 다른 이들과 다른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갈수록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항상 똑같은 것도 아니다. 때로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어느새 다시 다른 세계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계신다. 모친은 두 세계를 살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생로병사를 온전히 직면하기
 

엄마의 치매를 통해 서로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더 깊고 새로운 관계가 맺어질 수 있음을 경험하고, 배웠다. ⓒ unsplash

 
우리는 우리 기준의 생각과 행동, 경험만 옳거나 전부라고 여기며,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부정하려 하거나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고, 함께 나눌 여지가 훨씬 커졌다. 가족이 치매인을 보며 크게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적지 않은 슬픔과 아픔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꼭 모든 걸 다 알아보고, 기억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적당히 잊어야 할 기억마저 다 기억해 힘든 경우가 많다. 어머니께도 나는 미안하고 슬픈 기억이 참 많지만, 어머니는 그런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셔서 참 고맙다. 그래도 가끔 내 미안함을 전하고 사과하면 알아들으신 듯 예쁜 표정으로 웃으신다.

아들인 나를 딸이라 하시면 억지로 아들이라 교정하지 말고 그때 딸이 되면 된다. 한밤에 일어나 엄마, 아빠 만나러 가신다면 억지로 싸우지 말고, 지금은 밤이니 자고 내일 가자고 하면 더는 고집부리지 않으신다.

그런데 지금도 익숙한 찬송은 따라부르고, 기도를 마치면 "아멘!"으로 응답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치매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치매 엄마를 통해 눈앞 현실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더 많이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 모든 걸 다른 이로부터 공급받아 생존하고, 자란다. 시간이 흘러 몸도 크고, 강해지고, 자기 생각도 분명해지면 의존은 거의 사라지고, 마치 다른 사람쯤은 없어도 될 것처럼 유아독존으로 산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며, 티격태격 살아간다. 그러다가, 늙고 아프면(또는 치매인이 되면), 다시 아기가 되어 다른 이의 도움과 공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렇게 늙어가며 다시 아기가 되어 간다는 게 신비스럽다.

엄마의 치매를 통해 서로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더 깊고 새로운 관계가 맺어질 수 있음을 경험하고, 배웠다. 물론 치매도 정도와 증상에 따라 다양한 편차가 있지만, 치매로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큰 위로가 된다.

치매 얘기가 길어졌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아프고, 늙고, 죽는 소식을 듣는 경조사를 대할 때마다 '나도 한번 태어났고, 지금도 아프고, 늙고, 마침내 죽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기억하는 기회가 되는 건 소중하다. 그 마땅한 기회를 우리의 숱한 경조사들은 본 의미를 놓치는 화려한 여흥(ceremony)으로만 만든 것 같아 유감이다. 혼인예식은 결혼의 의미와 실상보다 달콤한 환상과 화려한 공연장이 되어 버렸고, 장례 예식조차 '너무 깔끔하고 편리해서' 죽음조차 직면하기 어렵다.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에서 그저 예식의 소비자가 되는 것을 벗어난다면, 인생과 세상은 다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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