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5 07:01최종 업데이트 24.07.0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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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건설노조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건설현장 편의시설 실태 및 폭염지침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지역에 올여름 첫 발효된 폭염주의보 속에서 건설노동자들은 폭염기 건설현장 실태 등을 고발하며 "폭염기 건설현장 사업주 체감온도(온습도) 관리, 폭염기 건설현장 휴게실과 그늘막 설치 확대 강화, 폭염기 건설현장 샤워실과 탈의실 등 세척시설 설치 의무화" 등의 내용으로 법제화를 촉구했다. ⓒ 이정민

   
더위가 심상치 않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릴 당혹스럽게 한다. 우리가 겪은 지난 한 달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이미 바다 온도가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극한의 기상현상이 예고된 바 있다. 앞으로 기후위기 탓에 폭염의 강도와 빈도 모두 거세질 것이다. 어쩌면 이번 여름이 앞으로 우리 생애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 수도 있다.

최근 가장 더웠던 해는 2018년이다. 폭염 일수는 31.5일.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워낙 더웠고 피해가 컸던 탓에 국회는 자연재난의 유형에 폭염을 포함시키도록 재난안전기본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그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에서 온열질환 사망자는 160명이었다. 하지만 폭염으로 인한 직·간접적 건강 영향을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초과 사망자 수'는 929명에 달한다는 연구가 있다.


올해는 2018년보다 더 더울 것으로 많은 기상전문가들이 예상한다. 즉, 더 많이 죽을 수 있다는 얘기다. 폭염은 단순히 덥고 불쾌한 날씨가 아니라 그 자체로 죽음을 부르는 재난이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가 자신의 저서 <위험 사회>(1986년)에서 했던 표현이다. 현대사회의 위험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재해가 계급이나 보건의료적 상태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닥쳐오더라도 그것이 낳는 효과가 다르다는 걸 안다. '자연적 이유'인 폭염이 일으키는 피해의 정도나 회복 가능성은 '사회적인 이유'들을 따라 천차만별로 펼쳐진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펴낸 '2020 폭염영향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2018년에 야외노동자는 1만 명당 28.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한 반면, 그 외 직업군에서는 불과 3.5명이 발생했다. 또 저소득층 1만 명당 21.2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비해, 고소득층에서는 불과 7.4명이 발생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만 명당 16.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65세 미만 인구에서는 불과 7.1명 발생했다.

사망률은 1인 가구에서는 100만 명당 16명꼴로 나타난 반면, 다인가구는 불과 1.1명으로 나타났다. 요약하자면 홀로 사는 노인이면서 야외노동을 하는 저소득층이면 폭염에 의해 아프거나 죽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폭염이 대중적인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이유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지 않거나 다른 기상 재난처럼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폭염의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고립된 이 등 대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폭염사회>(2002년)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의 폭염사망자와 사회적·인종적 불평등의 지형이 닮아있음을 폭로한다. 위에 인용한 보고서와 유사하게 폭염사망의 피해자는 65세 이상 노인, 저소득층,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다수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번번이 폐기
 

서울지역에 올여름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6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서강대교 위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 이정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박종철·채여라 연구원은 논문에서 "폭염의 강도와 빈도 모두 2018년이 1994년을 넘어섰지만 초과 사망자수는 1994년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그 이유로 "국민의 건강과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이로써 폭염에 의한 죽음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큰 연관을 맺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고 지극히 불평등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폭염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연관을 맺고 있지만 동시에 직관적인 실체로도 닥쳐온다. <폭염사회>가 다루고 있는 시카고는 1995년 폭염에서 73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두번째 폭염에서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사망자를 단 2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즉, 적극적인 공공정책들이 폭염의 재난화를 막은 것이다. 특히 당장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노동해야 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대책은 시급하고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실제로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2020년 기준 낮 시간대(53.7%), 실외(84.1%), 단순노무 종사자(26.6%)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삶의 전반적인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과 적응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폭염과 맞설 수 있는 법이나 제도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5월 폭염 대비를 위해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노동현장 등에 배포했다. 가이드에는 체감온도 31도가 넘을 때는 사업주가 단계별로 매시간 10~15분 휴식을 제공하고, 오후 2~5시 사이 옥외작업을 단축 또는 중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이드는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할 방안이 없고 사용자의 호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잦은 폭염과 폭우 때문에 임금 보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작업중지나 건강을 고려한 자체적인 휴식 같은 건 엄두를 내기 힘들다. 이에 건설노조는 지난 6월 19일 폭염에 맞서는 기본적인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폭염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매우 높은 확률로 곧 극한 폭염이 닥칠 태세지만 손에 잡히는 제도적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린 매년 일터에서 '폭염-죽음'의 반복을 겪고 있다. 그리고 때마다 국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지난 5년간 정당을 불문하고 김성원, 노웅래, 박대수, 우원식, 윤미향, 이소영, 이수진, 이용빈, 이은주, 전용기, 홍영표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폭염·한파시 지자체장의 작업중지 명령권과 불이행시 사업주에 대한 과태료 부과, 작업중지로 인한 임금 보전, 사업주에게 시설 개선을 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들 개정안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됐다.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야가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엔 폭염-죽음의 고리가 조금이나마 끊어질 수 있을까? 이미 한여름 7월, 죽음의 예고장이 날아들었다. 부디 여야가 당장 닥칠 폭염 앞에 모처럼 손잡고 법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김건우 / 참여연대 정책팀장 ⓒ 김건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건우는 참여연대 정책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의제 점검과 조정, 논의와 토론 조직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의 성찰과 혁신, 사회변동과 민주주의 퇴행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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