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7 06:58최종 업데이트 24.06.27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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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표적 진보의원 AOC를 탄핵하자고 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 최현정

 
"FIREAOC.COM"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찾아간 뉴욕의 브롱크스 세인트메리 공원. 어렵게 찾아간 공원 입구엔, 페인트로 휘갈겨 쓴 플래카드를 든 이들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다. 


"AOC를 탄핵하는 서명이야. 여기 사인해. 그런 여자는 당장 꺼져야 해."

말을 건네는 이를 자세히 보니, 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2016년 대선 구호로 쓰였고 그 이후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을 상징하는 말이 됨)모자를 쓰고 티셔츠를 입고 있다. 

뉴욕주 연방 상·하원의원 선거 경선 투표를 사흘 앞둔 지난 22일, 이번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하나인 뉴욕 제16지구 후보자 유세가 펼쳐지는 현장에 갔다. 랠리 인 더 브롱크스(Rally in the Bronx)란 이름의 오늘 행사는 AOC라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츠 하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그리고 3선에 도전하는 저말 보먼 하원의원의 합동 유세장이다. 미리 진을 친 트럼피(Trumpy,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광팬)들이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도발하며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경선 광고비만 1800만 달러 쓰는 도전자 

"They are the money. We are the mighty." (그들은 돈이다. 우리는 강하다.)
"They are the money. We are the many." (그들은 돈이다. 우리는 다수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들어간 유세장 안 곳곳에 오늘 유세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저말 보먼의 구호가 눈에 띈다. 전국적 지명도에 비해 여론조사상 열세로 분류되고 있는 민주당 진보 후보다. 그는 가난한 브롱크스의 공공임대주택에서 자라 중학교 교장이 된 교사 출신이다.

뉴욕 일원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지만 이른 아침부터 꽤 많은 이들이 세인트메리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버니 샌더스와 스쿼드(The Squad - 진보 성향의 민주당 하원의원 모임)라고 불리는 민주당 진보 하원들을 지지하기 위해서인데, 행사장에 들어가 보니 이들의 가장 큰 적은 경선장 입구의 트럼피가 아니었다. 
 

"They are the money. We are the mighty." "They are the money. We are the many." 연설 중인 뉴욕 16지구 저말 보먼 하원의원 ⓒ 최현정

 
미국 현지시각으로 25일에 치러지는 뉴욕 16지구 하원의원 민주당 경선은 같은 날 열리는 미 전역의 예비선거 중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몇 달 전부터 TV를 켜면 도배되는 광고로 인해, 그 지역 유권자도 아닌 나도 두 경쟁자를 알 정도니 말이다. 3선을 앞두고 있는 현역 하원의원 저말 보먼(48)에 도전하는 조지 래티머가 지금까지 1800만 달러(250억 원)의 네거티브 광고를 쏟아 넣고 있는 탓일 것이다.

올해 70세의 지역 행정관 출신 래티머의 가장 큰 우군은 AIPAC(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으로 대표되는 보수 유대인 커뮤니티다. CNN은 그가 친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촉구로 이번 선거에 참가한 것이라면서, (그의 존재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분열을 조명할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 선거는 보수 유대인그룹과 전쟁을 종식하려는 이들과의 싸움입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 최현정

 
"만약 그들이 저말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면 모든 의회 의원들은 이 결과를 참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억만장자들은 계속 그렇게 수백만 달러를 쓸 것입니다. 여기 브롱크스에서 그들이 보먼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토요일, 보먼의 선거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 선거는 단순히 두 사람만의 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마스와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보수 유대인 그룹, 그리고 하루빨리 이 전쟁을 끝내려고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이들과의 전면전이라는 얘기다. 

스쿼드 그룹의 리더 격인 AOC도 단상에 올라 분노한다. 

"우리는 가자지구를 황폐화하는데 우리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건강과 우리 아이들의 학교를 지켜야 하는 돈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지할 수 없고 절대 지속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당 당적자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는 이번 경선을 위해 보수단체인 유대인 교사연합은 대대적인 당적 갖기 운동을 펼쳤다. 공화당과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으로 당적으로 옮기라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유권자 비율이 9%에 불과한 유대인이 36%에 달하는 조기 선거 참여율을 기록한 상태다. 

이처럼 유대인 단체는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보먼을 낙선시키기 위해 역량을 다 쏟고 있다. 이곳의 승패가 향후 민주당 선거의 풍향계가 되기 때문이다.

토요일 연단에 올라 "They are the money. We are the mighty." (그들은 돈이다. 우리는 강하다.), "They are the money. We are the many." (그들은 돈이다. 우리는 다수다.)"라는 랩을 하며 보먼은 수십 번의 F-word(비속어)를 구사했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물었다. 

"왜 입이 험악하냐고요....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고 내 가족을 쫓아오고 있는데. 내 아이들을 쫓아오고 있잖아요. 내가 반격하면 안 되는 건가요?"

선거 날 아침, <월스트리트 저널>은 보먼이 첫 번째로 탈락되는 스쿼드 멤버가 될지 지켜보자고 했다. 신문의 예언이 들어 맞았다.

보먼과 샌더스와 AOC는 시오니스트?
 

AOC와 버니 보우먼이 시오니스트고 전쟁범죄자라는 친팔 시위대 ⓒ 최현정

 
행사 내내 유세장 건너편이 계속 소란스러웠다. 앞쪽 연단에 선 연사보다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들의 함성이 더 크고 끈질겼다. 무대에 선 연사들은 모두 연설 중에 이스라엘의 폭격 규탄과 가자지구 휴전을 얘기했다. 미국 정부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도와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들도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AOC를 모욕하는 친 팔 시위대 ⓒ 최현정

 
하지만 이날 본 시위대와 연사들은 물과 기름 같았다. 

"너는 사기꾼이야, AOC"
"팔레스타인의 일상을 표로 팔아치운 정치인들 같으니." 


시위대는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동안 진보인 양 위장한 이들이 바이든 행정부를 옹호했다고 주장했다. 의회에서, 언론에서, 유세장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휴전을 강하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의원들에 대한 친팔 시위대들의 평가는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우린 그들이 스스로 정해 놓은 기준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전한 친팔 시위대들의 입장이다. 의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공격당하는 의원들을 향한 친팔 시위대들의 맹공은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 모자를 쓰고 'FIREAOC'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는 이들의 정반대 편에서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친팔 시위 그룹은 내게 여러 생각이 들게 했다. 입구에서 만난 트럼피들에게 냉정했던 참가자들도 이들의 주장에는 혼돈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민주당 진보그룹을 향한 친팔 시위대들의 공격은 규모는 작지만 큰 타격을 주는 듯했다.  

가자지구가 갈라놓은 미 선거판
 

"가자지구를 황폐화하는데 우리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건강과 우리 아이들의 학교를 지켜야 하는 돈입니다." AOC 하원의원 ⓒ 최현정

 
미국 의회에서 가장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저말 보먼의 입지가 유세장에 가니 한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극우 트럼피들에게도, 부유한 보수 유대인 그룹에게도, 또 극렬 친팔 시위대들에게도 공격받고 있었다. 

휴전을 주장하며 시위하던 학생들은 모두 정학당하고 유급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났고, 경찰을 불러들인 총장은 건재(컬럼비아대학교 사례)하다. 언론은 이스라엘의 입장만을 전한 지 오래고, 여론 조성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관여는 더 치밀해지고 더 정교해졌다. 그들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지만 더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오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4년 만에 마주한 버니 샌더스는 더 늙었고 더 구부정했다. 진보 그룹의 대표로서, 삶속에서 나온 그의 연설은 여전했지만 바이든보다도 많은 나이에, 심장 수술까지 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스쿼드에서 보먼은 빠지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26일 "보먼이 진보적 민주당에 손실을 입히면서 래티머에게 졌다"라고 그의 경선 패배를 전했다. 승리한 AIPAC 극우 유대인 그룹은 이제 다음 타깃을 선정해 다시 또 물량 공세를 벌일 것이다. 그 영향은 이 선거를 지켜보던 다른 민주당 후보들과 11월 대선에도 미칠 수밖에 없다.

브롱크스 유세현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바이든이 왜 이스라엘에 대해 갈지자 행보를 거듭했는지, 왜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가자에 대한 비인도적인 공격들을 묵인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돈과 인맥과 조직과 파워 속에 극우와 극좌의 맹공까지 난관이 많아 보였다.

11월에 있을 상·하원의원 선거, 그리고 대선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펼쳐질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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