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2 06:41최종 업데이트 24.06.1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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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차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1주일 일정으로 예정된 독일 국빈 방문과 덴마크 공식 방문을 나흘 앞두고 돌연 연기했다. 한·독 수교 140주년 축하 행사 연장선에서 추진된 국빈 방문이었고, 몇 달간 일정·의제·의전을 조율하는 국빈 방문 특성을 고려하면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조치였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대통령실은 여러 요인을 고려했다는 짧은 해명만 내놨고, 익명의 관계자는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북한의 위협과 도발, 민생 현안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더했다. 당시 명품백 수수로 비판 받던 김건희 여사의 동행 여부가 또 다른 쟁점으로 작용해 두 달 후 있을 총선에서 여당의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방문을 미룬 진짜 이유일 것이라는 야당의 반응도 있었다.


민간인 비선 보좌,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취소, '바이든-날리면' 발언,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허, 리투아니아 순방 중 김건희 여사 명품 매장 방문 등 성과보다는 논란이 많았던 윤 대통령의 순방 외교를 떠올려 보면 민생에 힘쓰는 모습이 총선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책이자 보신 행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랬던 대통령이 10일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5박 7일 여정으로 순방길에 올랐다.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다. 경제 협력뿐 아니라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 등을 논의해 'K-실크로드' 구상을 본격화한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순방을 두고 적절성을 논하는 건 맞지 않을 수 있고 충분한 검토와 준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 외교적 결례 논란을 무릅쓰고 순방을 미룬 이유인 의정 갈등이나 북한의 위협과 도발, 물가고와 민생 문제는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고 국민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총선 전 순방 연기했던 대통령

"그만둘 수 없어요. 빚은 털고 나가야죠. 코로나 때 대출받은 거 아직 반도 더 남았어요. 매달 상환 날짜 다가오면 죽을 맛입니다. 장사가 되고 남는 게 있어야 갚지요. 폐업하는 집들이 오히려 부럽습니다."

단골 식당 주인은 나이도 있으니 쉬어도 되지 않냐는 말에 정색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가계 부채 세계 1위라는 통계는 주변에서 금세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다. 고금리 고물가에 저임금 노동자와 서민들, 중소기업조차 돈이 없어서 쩔쩔맨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1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임대 문의를 내걸고 불을 끈 점포도 즐비하다.

내수와 민생 경제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형국이다. 임시변통으로 대출이라도 알아봐야 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는 식당 주인은 코로나가 끝나면 나아진다는 소리나 정권이 바뀌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을 접은 지 오래란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에서는 어떤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고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총선 전 대기업 총수를 대동하고 시장을 돌며 어묵 먹방을 찍고 마트에서 대파 한 단을 들고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던 웃지 못할 민생 행보조차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대통령 입에서 민생이라는 말이 사라졌고,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는 야당을 향해 그 돈이면 동해 시추 130번이 가능하다고 조롱하는 국민의힘 의원까지 등장했다. 야당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궁핍한 서민 삶에 대한 조롱이다.

25차례나 열었던 민생토론회에서 빠진 제주도 도지사의 요청에 7월에도 힘들다는 답변을 내놨다. 총선 전 민생 현안이 시급하다며 한 주에 2차례까지 열며 각종 공약을 쏟아내던 민생토론회였다. 선거 끝났으니 효용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것인지, 급하게 챙겨야 할 민생 현안이 이제 없다는 것인지 총선 전 '민생'이라는 가식조차 내팽개치는 모습이 씁쓸하다.

의정 갈등도 그렇다.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갈등에서 의사 단체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오랫동안 풀지 못한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을 중간에 놓고 의사 집단과 겨루기하는 형국이라니. 정부는 해결 주체가 아니라 갈등의 당사자였다. 

국민 건강권과 중증 환자의 생명권은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데 정부의 해결 방안은 보이지 않고 당근과 채찍만 바꿔 꺼내고 있다. 2월에는 순방을 미뤄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던 의정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사 집단이나 정부나 국민 고통은 말뿐이다.

북에 달러와 전단을 날려 보내고 오물과 폐지덩이를 돌려받는 공방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이런 질 낮은 공방보다는 대화가 낫고, 직접 교류로 서로의 안전을 약속하는 게 상책이다. 오물과 폐지 공격에 확성기 방송으로 응수하는 것도 잘된 대응책이라 보기 어렵다.

한 민족이라는 개념도 통일도 점점 먼 이야기가 되어가는 이때, 국가와 국민의 안전은 튼튼한 국방력과 상호 불가침 약속이라는 양면의 전략이 필요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예고된 시기, 북이 가장 겁내는 전술이라며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꺼내든 윤석열 정부는 윽박지르면 우리가 이길 거라고 믿고 있는 것같다. 북과 대화를 추진했던 과거 정부 때보다 지금이 더 안전하다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선거 끝났으니 해외로?
 

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했다는 내용의 비위 신고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나선 10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참여연대가 윤 대통령 부부와 명품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신고한 것에 대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해외순방 출국길에 꽃길을 깔아주었다"며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전 국민이 다 본 대통령 부인의 명품 수수다. 대통령의 순방길을 면죄받은 외유길이라는 비아냥으로 번지게 키운 것은 권익위다.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목적이야 분명하겠지만 국내에 산적한 문제들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총선 전에는 준비된 순방마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연기했던 전례로 본다면 '선거 끝났으니 해외로 가나'라는 비판이 생겨날 만도 하다. 안보도, 의정 갈등도, 물가도, 내수도, 총선 전이었던 2월보다 더 고통스럽다. 내치와 순방을 선거 이해득실로 판단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길 바란다. 권익위 결정은 면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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