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 '에반 핸슨'. 에반은 의사로부터 스스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편지를 쓸 것을 처방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을 하는 반항아 '코너 머피'에게 편지를 빼앗긴다. 그런데 코너가 갑작스레 자살하고, 코너의 부모님은 코너가 가지고 있던 에반의 편지를 발견한다. 에반이 스스로에게 편지를 쓴다는 걸 알리 없는 코너의 부모님은 "Dear. Evan Hansen"이라고 적힌 편지를 당연히 코너가 에반에게 쓴 편지라고 생각한다. 코너에게 이토록 절친한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된(오해하게 된) 코너의 부모님은 에반을 찾아가고, 에반은 상황에 휩쓸려 자신이 코너의 친구였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다룬다.

필자가 <디어 에반 핸슨>이라는 뮤지컬의 존재를 알게 된 건 4년 전이었다. tvN에서 방영한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캐스팅>을 통해서다. 참가자 나현우가 아직 한국에서 공연된 적 없는 <디어 에반 핸슨>의 넘버 'Waving Through a Window'를 직접 번역해 불렀다. 이로 인해 한국 뮤지컬 팬들은 <디어 에반 핸슨>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작품의 분위기나 메시지가 생각보다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4년이 흘러 <디어 에반 핸슨>이 한국에서 정식으로 첫 선을 보인다. <더블캐스팅> 준우승을 차지한 임규형이 주인공 '에반 핸슨' 역에 캐스팅되었고, 같은 역에 김성규와 박강현이 함께 한다. 에반의 어머니 '하이디 핸슨' 역에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여배우 김선영과 신영숙이 캐스팅되었고, '코너 머피'는 윤승우와 임지섭이 연기한다. 외에도 강지혜, 홍서영, 장현성, 윤석원, 안시하 등이 출연한다. <디어 에반 핸슨>은 오는 6월 2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공연사진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공연사진 ⓒ 에스앤코(주)


현대적인 표현 기법으로 전하는 위로

차갑고 단순하게 말해 <디어 에반 핸슨>은 한 소년이 거짓말을 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이 밉게 느껴지지 않고, 또 별 거 없어 보이는 소재가 160분 분량의 뮤지컬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 에반이 한 거짓말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탄탄하고, 거짓말에서 비롯된 위로의 메시지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덕분이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에반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지만, 한편으로 타인의 관심을 희망한다. 이런 에반의 심리는 넘버 'Waving Through a Window'를 통해 잘 드러난다.

"누군가 날 알아볼 거라 믿고 / 한참을 그저 기다려봐도
모두 나를 지나쳐갈 뿐 / 난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나요 / 날 알아봐줄 사람 없나요"


에반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를 코너가 에반에게 쓴 편지라고 오해한 채, 코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코너의 부모님에게 에반은 원래 진실을 말하려 했다. 그러나 코너의 어머니 '신시아'의 "네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말을 듣고 에반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코너가 친구였다고. 코너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해주고, 또 중요하게 여겨주니, 누군가의 관심을 갈구하던 에반은 덜컥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반은 계속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이어가고, 그 과정에서 코너라는 인물은 재구성된다. 에반의 거짓말로 새롭게 탄생한 코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코너 가족은 아픔에서 회복하고, 이를 지켜본 에반은 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자살한 코너를 추모하고, 유사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코너 프로젝트'가 조직된다. 비록 오해와 거짓말에서 비롯된 상황이지만, 코너 가족도 회복되고 에반도 조금씩 성장한다.

물론 진실이 밝혀지긴 한다. 그로써 누군간 에반에게 실망하고, 코너 가족은 혼란을 경험한다. 그러나 위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전에 따뜻한 위로를 경험한 이들은 금세 안정을 찾는다. 에반은 성장했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코너 가족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회복하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족 간 유대감을 다졌다. 그렇게 무대에는 위로가 남는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필자는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단 다루는 소재가 현대적이다. 대형 뮤지컬이 흔히 다루는 거시적인 주제가 아닌, 개인과 가족이라는 미시적인 주제를 이야기한다. 표현 기법도 현대적이다. 스크린과 LED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대 뒤에 빼곡하게 놓인 스크린들은 시시각각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으로 변하며 극의 전개를 보조한다. 여태 이런 기법을 선보인 뮤지컬이 있었던가, 한 번씩 감탄이 새어나왔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공연사진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공연사진 ⓒ 에스앤코(주)

 
스쳐 지나가는 문제들도 심상치 않다

<디어 에반 핸슨>은 공감과 위로에 초점을 둔 따뜻한 뮤지컬처럼 보이나, 곳곳에 숨은 이야기는 분명 심상치 않은 사회 문제다. 사용한 기법도 현대적이지만, 뮤지컬에 나타난 사회 문제 역시 현대적이다. 현대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외'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에반은 집 밖에서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집 안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간호사 일과 로스쿨 학업을 병행하는 어머니와 마주보는 시간은 아주 짧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긴 탓에 점점 고립되어간다. 자살한 코너 역시 소외와 고립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디어 에반 핸슨>은 소외와 단절, 고립을 공감과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극복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현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도 꼬집는다. 에반이 코너를 추모연설하는 영상이 유명세를 탄 덕분에 '코너 프로젝트'가 화제가 된 것은 흐름(또는 알고리즘)을 타는 게 콘텐츠의 본질이나 내용보다 중요해진 현 세태를 반영한다.

코너의 유서(라고 여겨지는 에반의 편지)를 SNS에 공개할 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장면도 눈에 띈다. 에반은 사적인 것이라며 공개에 반대하지만, 프로젝트의 공동 회장인 '알라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원한다"며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듯해보이는 명분을 앞세워 사적인 영역을 들춰내고 자극적인 소재를 양산하는 미디어가 떠오른다. 이런 소재를 재미 삼아 소비할 뿐 그 어떤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대중의 모습도 상기시킨다.

이처럼 작품 곳곳에 놓인 문제들을 추적하며 작품이 전하는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읽어낸다면, 무대와의 만남이 더 의미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공연 뮤지컬 디어에반핸슨 에스앤코 충무아트센터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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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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