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9 20:49최종 업데이트 24.05.0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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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총선과 22대 국회 개원을 맞이해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연재를 진행한다. 한국 산업과 재생산 구조를 다룬 경남대 양승훈 교수에 이어 전남대 송재도 교수가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 정책을 제시한다.
 

2022년 8월 22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에너지의 날'을 맞아 부산역 광장에 설치한 북극곰 조형물인 '열받곰'을 활용,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을 추구하는 에너지전환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른 삶의 터전의 치명적 파괴를 막고자 하는 노력이며, 필연적인 변화의 방향이다. 세계 경제는 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에너지전환은 도덕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전통적인 산업진흥과 물가 인상 억제 관점에 머무르고 있다. 본 글에서는 산업진흥 정책과 전기요금 이슈를 중심으로 현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의 개선을 위해 독립적인 에너지 정책기구의 설립이 필요함을 논해보고자 한다.

탄소중립 중심 국제 경제질서 재편

세계 주요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국가 경제정책의 중심에 위치 지으며, 빠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단기적이며 전통적인 산업진흥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를 다루어왔는데, 이로 인해 한국의 산업구조 전환은 지체되고 있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8%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일찍이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달성하는 탈동조화를 실현해 온 반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2019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 기업들이 원가 우위를 특징으로 하는 빠른 추격형 전략을 유지해 왔으며, 국가 또한 낮은 에너지 가격을 통해 원가 우위를 지원하는 정책을 채택해 왔기 때문이다.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11.4%(2018년 대비 2030년 목표)로 2021년 10월에 발표된 14.5% 대비 후퇴한 것이었다. 이는 여전히 정부 정책이 에너지전환의 촉진보다는 기업들의 기존 경쟁전략을 용인·옹호하는 온정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지출(3690억 달러)의 84%를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에 할당하여 탄소중립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연관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조건에 자국산 제품·부품 사용 요건, 적정 임금, 견습 요건과 같은 고용 조건을 포함함으로써 자국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일자리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EU의 그린딜 패키지에서는 탄소중립 기술과 제품에 대한 EU의 제조 능력 확대, 산업 주도권 확보를 명시적인 목표로 천명하고 있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안보와 양질의 일자리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전체 일자리의 35~40%가 녹색 전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 교육과 기술 파트너십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 일본 등도 유사한 정책들을 잇달아 입안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국제 경제질서는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부가가치를 보여주는 세계 배출권 시장의 시가총액은 2022년 8810억 유로(1302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17%에 불과하며, 배출권 가격은 탄소배출의 외부성을 반영하기에 아직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출권 시장의 규모는 이미 매우 크며, 급격히 증대될 것이다.

파리협약을 비롯한 국제 협약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ESG(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투자원칙,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서 보듯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적 압력은 강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변해가고 있으며, 탄소배출 절감은 가치를 창출하는 수준을 넘어 탄소배출을 수반하는 생산과정, 제품은 아예 시장에서 존재가치를 잃고 말 것이다.

한국 반도체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 대상인 대만 TSMC의 경우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40%에서 60%로 올렸으며, RE100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겼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삼성전자를 앞지르겠다는 명확한 의지의 표현이다. 현재 글로벌 RE100 가입 기업 415개 중 65%에 해당하는 270개 기업이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기차 주요 부품·소재를 제조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 점수를 매기는 전기차 보조금 최종안을 발표한 바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변화에 뒤처져 있다.

한국의 현 상황을 흔히 샌드위치 위기 또는 넛크래커 위기라고 표현한다. 선도자의 위치로 도약하기 어렵고, 추격자들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또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들은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사이의 샌드위치 위치에 있다. 그 자체가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 상태에서 ①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품질 개선과 원가 우위를 강화하는 방식, ②혁신·선도자로의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에 소극적인 한국의 현 산업정책은 낮은 에너지 가격, 원가우위를 강조하고 있으며, 혁신이 어렵기에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자연스러운 반응에 기대어 있다. 그러나 혁신·선도자로의 변화만이 근본적인 위기의 극복 방식이다.

제도경제학자로서 노벨상을 받은 더글라스 노스는 기업을 물적 자원의 집합체이기보다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조합체로 인식하였으며, 기업의 지식과 기술 발전은 제도가 주는 유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 정책은 기업들이 현재에 안주하도록 장려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현 관행을 파괴하고 혁신을 추구할 수 있도록 압력과 유인, 지원을 제공해야만 한다. 산업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전기요금 정책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고심 중인 4월 14일 서울 용산구 한 건물에 전력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정부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상황, 국제연료 가격, 경기 등을 고려해 인상 여부와 시기를 판단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한국의 전기요금 결정 방식 또한 반드시 짚어야 할 중요한 이슈이다. 전기요금은 전기위원회에 의해 심의·의결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기획재정부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전기요금은 물가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 어떠한 장기적인 방향성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탄소배출 외부성의 반영, 한국전력의 막대한 누적적자 해소 및 에너지전환을 위한 재원의 확보, 취약계층 보호, 전기요금 예측 가능성 확보와 같은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반영해야만 한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탄소배출 외부성을 반영한 전기요금의 인상은 가격신호, 시장기능을 통해 소비자들의 전기 사용 절감 노력, 전기 사용 설비들의 효율화, 온실가스 배출 설비들의 퇴출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탄소중립 추진 방식이다.

현재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37% 수준이 전력 생산에서 발생함을 감안하면 전기요금의 인상은 필수적이다. 더욱이 외부성을 반영한 전기요금 상승은 사업자들의 이윤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기후대응기금으로 귀속되어 탄소중립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며, 한국 산업의 경쟁력 유지와 일자리 창출에 활용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만약 전기요금을 통해 재원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결국 다른 세원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물가안정 관점의 전기요금 결정 방식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막대한 상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한 발전원가는 미래에 이월 반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국전력의 적자 상황을 기회로 한전KDN, 한국원자력연료 등 자회사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 자회사들은 흑자기업으로 한국전력의 적자 회수에 기여할 뿐 아니라 독점 기업들이기 때문에 민간에 매각될 경우 한국전력의 향후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압력을 가중할 개연성이 크다. 더욱이 다급한 자산매각 추진은 자산을 제값을 받고 팔기 어렵게 하며, 공기업의 자원을 감소시킨다.

한국전력의 적자 규모를 감안할 때 자산매각이 한국전력의 재정건전성 개선에 기여하는 정도가 미미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향후 탄소중립 실행 과정에서 송전망 투자를 비롯해 공기업으로서 한국전력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기요금 정책은 이 문제에 해법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상에서 제기된 전기요금 관련 이슈는 전기요금의 인상이 필요함을 의미하며, 그에 따른 취약계층의 부담 또한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한다. 물가안정 관점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탄소중립이라는 중대한 목표하에서 유지 불가능한 접근이지만 심화되는 소득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것 또한 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을 절충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올리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낮은 전기요금은 취약계층 생활 안정을 빌미로 여유 있는 계층에게조차 부담을 회피시키는 불합리한 방식이다.

추가로 전기요금의 안정성, 예측 가능성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에너지 효율 사업, 재생에너지 투자, 전기 다소비 산업 등의 사업성은 전기요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기요금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상황이다. 다음 분기의 전기요금 수준이 얼마가 될지를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되어 왔다.

전기요금에 대한 예측이 어려울 경우 연관 산업들의 사업계획 수립은 물론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런 부작용들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는 전기요금에 대한 장기적인 로드맵을 설정·제시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민간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흡수하여 제거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과거에는 에너지 가격의 불확실성이 높지 않아 이런 문제가 간과되었으나 향후 불확실성은 과거와는 비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기요금은 이처럼 매우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전략적 접근과 방향에서 전기요금 정책의 해법을 제시해만 한다.

전문적이고 강력한 독립 에너지 정책기구 설립

이상에서 제기된 전기요금 관련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장기적인 전기요금 정책이 마련되어야만 하며, 전통적인 산업진흥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의 에너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이 실행의 과정은 상당한 국가 재원의 마련과 재정지출 재배치, 산업구조 및 경제·사회 관행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며, 광범위한 국민 소통과 설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컨트롤타워를 담당할 기구는 다양한 부처에 분산된 에너지 관련 정책들을 총괄하여 지휘할 수 있는 전문성과 권한을 보유해야 하며, 단기적이고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새롭고 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행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정책기구의 목적을 효과적인 에너지전환의 추진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정책기구의 신설은 에너지전환을 경제·사회 정책의 중요한 방향성으로 설정함을 표방하는 상징적 의미 또한 가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전환 수준은 향상된 경제 규모와 국격에 비추어 지나치게 뒤처져 있다. 22대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입법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기를 희망한다.

필자 소개: 전남대학교 경영학부에서 가격이론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연구·강의하고 있다. KAIST 경영공학과에서 학·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미시경제학(산업조직론)을 위주로 연구하였다.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산업, 배출권 거래, 지속가능마케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다수의 대중서들 출간하였으며, <마케팅 지배사회> <실업과 양극화의 미래> <ESG, 지속가능마케팅> 등은 '세종학술우수도서' 및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대전환포럼의 상임운영위원, 넥스트브릿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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