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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후 4시 10분 시외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내려왔습니다. 인천에서 경북 구미까지 완행버스를 4시간 넘게 탔습니다. 지난번에 자장면 한 그릇만 대접하고, 쏜살같이 도망갔던 미안함 때문에 다시 내려오게 됐습니다.
 
문화제를 하고 있다.
▲ 구미 옵티컬 공장 문화제를 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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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에게 미안한 말씀을 드립니다. 늦은 밤 9시에 도착했었습니다. 도착하기 전, 먼저 구미 옵티칼 공장에 내려가 있던 동료들이 구미종합터미널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 도착하니 택시 타고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나이 오십에 소심하기 짝이 없었는지, 회의 끝나고 피로가 밀려온 배고픔 때문인지 도착 소요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 말을 들으니 못내 섭섭했습니다. 이 기분 상태로 공장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참 못났지요. 그래도 두 분의 얼굴은 보고 가야지라는 마음에 택시를 타고 불타버린 구미 옵티칼 공장에 도착했습니다. 농성 중인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과 먼저 도착한 동료들의 얼굴을 보니 참 소심한 제가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조합원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SNS에 올렸다는 글을 보고 마음이 찡했습니다.
 
불 타버린 공장 외벽에 길 건너편 아파트가 보인다.
▲ 구미 옵티컬 공장 불 타버린 공장 외벽에 길 건너편 아파트가 보인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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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12일째, 밤이 되면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는 아파트가 보인다. 너도나도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있겠지. 우리 가족들도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은 먹고 있을까? 전화를 해 본다. 우리 조카는 이제 4학년이다. 매번 전화할 때마다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곧 간다고 했지만, 이제는 알아버렸다.

이모가 옥상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집에 한참 동안 못 간다는 것을. 그때부터는 언제 오느냐고 묻지 않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모가 무엇을 위해 집에 못가는지는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더 힘내서 싸워야 한다.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밑에 있는 동지들도 똑같을 거다. 가족과 같이 예전처럼 평범했던 삶을 위해 지금 더 힘차게 싸우고 있다. 비록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어 슬프고 힘들지만, 우린 곳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박정혜 수석부지부장의 글을 읽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을 해봤습니다. 낮에 연대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적막히 흐르는 야밤에 건너편 아파트를 보며, 어떤 집은 온 가족이 모여 일상의 소소함을 이야기하며 웃고 울고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그런데 나는 육지의 섬처럼 고립된 이곳에서, 불타버린 공장의 옥상에서 111일을 넘기며 이러고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저 같으면 가끔 밀려오는 우울과 무기력에 무너졌을 것입니다.

왜나고요. 제가 8년째 기러기 아빠라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식당에 가서 혼밥을 먹다가도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가족만 봐도, 고향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시골 어머니 같은 분들의 일상을 보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외로움에 눈물이 날 때가 흔하니까요.

11명 고용 승계라는 소박한 소망
 
고공농성장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 공자에서 바라본 길 건너 아파트 야경 고공농성장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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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늘에서의 생활이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늘의 두 분과 지상의 9명을 포함한 11명이지요. 딱 후보선수 없는 축구팀, 환상의 원팀이네요. 밤을 지키는 조합원들과 대화를 하다가 어쩌면 원팀을 뛰어넘는 가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일찍 자립해서 당신이 돈을 벌어서 흩어져 살던 가족들을 다시 모았다 들었습니다. 같이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조카를 그렇게 예뻐한다고 들었습니다. 살가운 가족들. 오랜 시간이 걸린 일상의 행복이 아니었을까요? 1월 8일 고공농성에 올라가기 전에 긴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뒷얘기와 오랜 꿈이 모였던 소중한 집이 압류를 당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소현숙 조직부장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투쟁하는 이유를 말하던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막막한 상황에서도 붙박이처럼 농성장을 지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공농성에 들어가기 전 이틀, 농성장을 비웠다는 소현숙. 가족들에게 고공농성에 들어간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이른 새벽 농성장으로 돌아와 옥상으로 향했을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특이하게 라면 박스마다 유통기한을 표시해 놨다.
▲ 노조 사무실에 비치된 컵라면 특이하게 라면 박스마다 유통기한을 표시해 놨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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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은 자가면역질환으로 자신의 건강을 누구보다도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가면역 질환은 세균, 바이러스, 이물질 등 외부 침입자로부터 내 몸을 지켜주어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습니다. 그들을 지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투쟁하는 이유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철저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후문입니다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소현숙 조직부장, 최현환 지회장은 회사를 위해서는 조금 양보하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던 그런 소박한 사람, 품질 좋은 생산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반장, 조장 출신이었다는 얘기에 깜짝 놀랍습니다.

1월 8일 고공농성에 들어간 후 지상에 있던 조합원들이 일주일 내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13일, 마이크를 잡고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지요. 그러면서 두 분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자랑스러워. 미안해 잘할게"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 코끝이 또 찡해졌습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소현숙 조직부장이 고용 승계를 위해 진행한 천막농성 454일, 고공농성 111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저도 일찍 일어나서 불타버린 공장을 둘러보았습니다. 한겨울 영하 12℃ 혹한에 올라갔던 고공농성장 주변에도 철쭉꽃이 활짝 핀 봄이 왔네요. 아니. 벌써 뜨거운 여름을 향해 가네요. 제가 듣기로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1년 이상을 생각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들었습니다. 소현숙 조직부장은 최고의 공간에서 투쟁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침에 공장을 둘러보다가 휴게실 근처에 고양이 먹이를 주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말해주더군요. 박정혜 동지는 예전부터 공장에 함께 살던 3마리 고양이의 캣맘이었다고요. 당신과 조합원들이 함께 생명을 대하는 일상적인 태도에 제 마음이 더 따뜻해졌습니다.

"지상에서 뵙겠습니다"
 
조합원들은 함께 살았던 고양이도 챙기고 있었다.
▲ 고양이를 위한 먹이 조합원들은 함께 살았던 고양이도 챙기고 있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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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께 당부드립니다. 하늘에 있는 두 명은 지상의 동지들에게 기대며 이겨내고 있는 싸움입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두 동지를 생각하며 이겨내고 있는 투쟁입니다. 구미에서는 4번째 고공농성이라고 들었습니다. 싸움을 예측하고 싸우려고 준비했던 투쟁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11명의 고용 승계라는 소박한 소망을 압류와 강제 철거와 부동산 강제 경매로 옥죄는 외투자본의 횡포와 이를 묵인하는 비호세력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자존감이 오늘에 이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금속법률원 장석우 변호사가 공개한 자료를 찾아보니 니토덴코는 2004년부터 2021년까지 18년 동안 총 7조 7102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같은 기간 세후 이익은 1983억 원이었습니다. 니토덴코가 가져간 배당금만 해도 1734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투자금액 대비 연평균 세후 수익률은 50%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18년 동안 니토덴토에서 매입한 원재료 금액은 5조 9279억 원, 상품매입액은 1923억 원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로열티 243억 원, 통신비 32억 원, 소모품비 26억 원, 유형자산 매입액 117억 원이 니토덴토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위 비용들에 더해 배당금 1734억 원을 합산하면 회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돈은 무려 6조 3354억 원에 달합니다. 결과적으로 총 매출의 82%에 이르는 금액이 일본 대주주에게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쌍둥이 같은 평택 한국니토옵티칼은 2000년부터 2022년까지 23년 동안 총 15조 원의 매출액을 올렸습니다. 세후 이익은 5326억 원 등 각종 배당, 비용 금액으로 총 11조 1031억 원이 일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일본자본 니토덴코는 두 회사를 통해 약 17조 4385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구미 니토덴코가 폐업한 2022 회계연도에, 한국니토옵티칼은 전년 대비 1422억 원 증가한 9715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연대온 사람들이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구미 옵티컬 공장 연대온 사람들이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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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외투자본이 마음 놓고, 수익을 자국으로 빼돌리고 노동자들을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길 때 국가는 무엇을 했습니까?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야 할 정치권을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소박한 꿈,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소현숙 조직부장과 아홉 명의 조합원으로 가족같이 단결하고 있는 옵티컬하이테크지회.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디 건강 잘 챙기십시오. 끝까지 이겨내십시오. 지상에서 뵙겠습니다.
 

태그:#니토덴토, #옵티컬, #고용승계, #고공농성,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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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대외정책부장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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