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비하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세대 갈등 양상이 과거와 다르며, 반목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셔터스톡
청년들이 586에 가지는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같은 조사에서 청년 세대(20~34세)는 "586세대가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질문에 50대의 74.7%보다 더 높은 78.2%가 동의했다.
반면 "586세대는 젊은 세대와 비교해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질문에는 56.8%가 그렇다고 대답하여, 50대의 31.7%와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586에 부정적인 청년들의 인식은 이처럼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인 이들이 노력에 비해 많은 것을 가졌고, 그것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구체적인 양상은 더욱 심각하다. 2030세대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최근 1년 동안 '586'을 키워드로 게시된 글 370개를 살펴봤더니, 94%가 586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글이었다. 주된 연관어로는 꼰대, 무능, 권위적, 일을 안 함, 무책임, 고성장 혜택, 양심 없음 등이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이 지칭하는 586은 사실 앞서 이야기한 586과 또 의미가 다르다. 좁은 의미에서 586의 상당수는 이미 686이 되어 은퇴했을 시기다. 한국에서 주된 일자리를 떠나게 되는 평균 나이(49.3세)와 2024년 기준 69년생이 이미 만 55세임을 고려한다면, 지금 청년들이 직장에서 마주하는 50대 관리자의 상당수는 오히려 X세대인 70년대생에 해당한다.
왜 이런 간극이 나타나는 걸까? 최소한 블라인드에서 586이라는 단어는 특정 세대를 지칭하기보다는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면모를 비판하는 표현으로 의미가 변한 탓이다. 동시에 '어른'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본받을 만한 기성세대의 이야기도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무능하거나 권위적인 기성세대는 실제 세대와 무관하게 586이 되고, 본받을 만한 기성세대는 설령 60년대생이라도 586이 아닌 '어른'이 된다.
586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품게 된 건 그 세대를 상징하는 이들이 좋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런 양상은 비단 586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원래 마케팅 용어였던 'MZ세대'는 이제 젊은이들의 부정적인 행동 양상을 지적하는 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거나, 의무에 앞서 권리만 요구하거나, 과소비와 허세가 심하다는 식이다. 'MZ 알바'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마케팅 용어로 출발한 '영포티'는 본래 의미(젊게 살고자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40대)가 퇴색된 채, 비하적인 의미를 잔뜩 머금게 되었다.
결국 핵심은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비하로 변해가고 있다는 데 있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아니라도 꼰대면 586이다. 90년대생은 정시에 딱 맞춰 출근하는 자신이 MZ냐고 묻는다. 범죄 뉴스에는 피의자의 연령에 맞춰 이대남(녀), MZ, 영포티, 586이라는 댓글이 따라붙는다.
실제 의미가 어떻든,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비하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세대 갈등 양상이 과거와 다르며, 반목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훈계하고, 청년 세대가 어른들에게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들은 60년대생의 상당수가 여전히 은퇴하지 못한 채 노동 빈곤층에 속해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들이 "꿀 빤" 기득권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지금 청년 세대가 이례적으로 자산 형성이 늦은 세대이자, 기성세대와 격차가 오히려 더 확대되는 세대란 점을 안다면 그들이 가지는 불안과 불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도 불분명해진 586을 비난하고 있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더 늦기 전에 고민하고, 공부하고, 모이고, 대안을 만들어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비하가 아니라, 공통의 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청년의 문제와 기성세대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서로가 이해하는 데 있다. 586의 누구는 청년들을 괴롭힌 꼰대일지 몰라도, 60년대생의 누구는 결국 청년들의 부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