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대형화면에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두 개의 국가관계 선언과 함께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와 과업을 언급하고 있다. 1월 초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이자 "주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한 자위적 국방력과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지시했다. 일단 말만으로는 '전쟁할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일각에서는 북이 전쟁할 결심을 했다고 단정한다.
올 연말 대선을 앞둔 미국으로부터 한반도 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현 한반도 상황을 한국전쟁 때와 비교하며 북한이 전쟁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시 북핵특사였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서 올해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도 북한이 몇 달 안에 한국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작 중요한 '헤어질 결심'은 사라지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전문가나 언론에 의해 '전쟁할 결심'만이 과장되고 부풀려지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이 전쟁할 결심을 했다는 주장은 북한을 악마화하려는 적대적인 당국자나 언론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은 무의미하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려다 보니 현 상황의 위험성을 과장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해커 박사나 가루치 전 북핵특사가 전쟁 가능성의 경고를 통해 말하고자 한 해법은 역설적으로 '대화'이다.
북한이 헤어질 결심 속에 핵무력 등 무력에 의한 남한영토 평정 준비를 공언한 이상 핵무기를 활용한 대남·대외 위협은 더욱 잦아지고 그 수위도 높아질 것이다. 2023년 북이 훈련 발사한 미사일 중 절반이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었다는 점을 보면 북한은 우려스럽게도 한반도 내에서 사용 가능한 핵무력의 실전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핵무기를 앞세운 무력통일론 회귀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얼마 전 군사력 조사업체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발표한 한국의 군사력 순위는 세계 5위이고 북한은 36위이다. 혹자는 핵무기를 반영하지 않아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핵을 가진 36위의 북한과 핵을 가지지 않은 5위의 대한민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미 서로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을 만큼 막대한 군사력이다. 한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은 어느 한쪽의 승리나 통일이 아니라 공멸이다.
북한이 미치거나 바보가 아니라면 먼저 싸움을 걸어오는 모험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새로운 핵법령을 법제화하여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을 제기하고 남한 평정을 언급했다고 해서 무조건 핵을 사용하고 전쟁을 개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한은 2022년 채택한 핵무력정책법 6조에 핵 사용 5대 조건을 적시했다. 북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5대 조건이 아니라면 핵을 사용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도 "전쟁을 일방적으로 결행할 의도는 없지만 전쟁이 현실화되면 피하지 않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대한민국을 괴멸시키고 끝장낼 것"이라고 조건을 달았다.
북한이 이야기한 것은 분명 먼저 전쟁할 일은 없지만 피할 생각도 없다는 전쟁 불사론이다. 우리의 작전계획과 한미연합훈련 내용에도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이 있고 거기에 더해 참수작전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전쟁을 회피하지 않고 남한 평정까지 언급하는 것에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인지 궁금하다.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만 고려하더라도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역시 전쟁과 군사적 충돌은 득보다 실이 크다. 싸움을 걸면 피하지는 않겠지만 먼저 싸움을 걸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문제에 관심이 높지 않은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 기간에 북한은 내부적으로 경제에 매진하기 위해 안정적인 안보환경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서 이를 저해하는 과도한 위기나 불안 조성까지는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내부 결속에 필요한 수준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위협 수위를 조절하면서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5개년 계획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내치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북한의 군사행동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내부 성과에 집중하기 위해 실제 군사적 행동을 나서길 주저할 것이라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전쟁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말뿐인 위협으로 생각하고 힘으로 누르려는 자기과신의 오류와 함정에 빠진다면 궁한 쥐가 삵을 물 듯 한반도가 궁서설리(窮鼠齧狸)의 혼란과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힘에 의한 평화' 결과는 군사 충돌과 평화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