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인민군 대연합부대들의 포사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조선중앙TV
그러나 '조건부' 혹은 '선제공격 배제'가 바로 "북한의 전쟁 결심은 엄포다"라는 주장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은 선제공격 여부가 큰 의미가 없다. 북한이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NLL영역의 충돌이나 접경지대 전단 살포를 둘러싼 충돌이 발생하면 선제공격 배제가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다. 또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령토를 평정하려는… 준비를 예견성 있게 강구"해나가겠다는 말은 국지전이 발생하면 즉각 '계획된' 전면전으로 넘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북한은 '조건부'이긴 하지만 '전쟁할 결심'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렇듯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전쟁 위협을 제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이것은 2022년부터 대미관계에서 작동시킨 강 대 강 대결원칙을 대남관계에도 본격적으로 적용한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강 대 강 국면을 "최대의 주적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힘을 부단히 키우는 기간"이라 규정하고 있다(<조선신보> 2022. 6. 22). 따라서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미 대적 투쟁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겠다는 것은 1차적으로 국방력과 핵능력 강화를 통해 대미‧대남 억지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초강경 정책은 북한식 억지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전쟁이나 중동전쟁에서 보듯이 핵이 재래식 전쟁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전쟁의 양상이다. 북한도 한반도에서 국지적 충돌의 전면전 전환 위험을 심각히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조건부 '전쟁할 결심'은 한반도에 재래식 국지전은 없다는 신호, 즉 우발적 충돌에 의한 국지전이 발생하면 무조건 '준비된 핵전쟁'으로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될 위험을 우려해 윤석열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에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것이고, 동시에 한미가 우리를 건드리겠다면 '최소한 핵전쟁을 각오하라'는 주장이다. 이는 일반 핵 정치이론으로는 전형적인 비대칭확전(asymmetric escalation) 전략에 해당한다. 북한은 결국 '핵전쟁 결심'을 내걸고 '초강경' 억지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두 국가 관계론'
북한의 '두 국가 관계론'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 몇 가지 노선 전환을 시도하는데, 그중 하나가 남북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를 사실상 인정하는 조치들이었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나,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남북관계를 정립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이 대표적이다. 또 6.15 남북공동선언은 두 주권국가의 '국가연합'을 통일의 유력한 방식으로 인정한 것이었고, 2021년 8차 당대회에서는 논란의 '민족해방혁명 추진'을 규약에서 삭제하고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건설'을 명시하는 등 남북 두 국가의 장기공존과 북한의 일국(一國) 혁명 강화를 분명히 했다.
두 국가 현실론을 계속 확대해 온 북한이 "80년간의 북남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하는 방향전환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일단 '두 국가론'을 통해 남북관계 단절을 더 강조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우선 남북 간 국력이 심각하게 비대칭한 상황에서 통일 공세를 지속하는 게 현실적이지도 않고, 통일 공세가 오히려 북한 체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 헌법에서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을 삭제하겠다거나,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북한 역사에서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국제정세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약화와 다극화 확대, 미중 갈등의 장기화 등으로 인해 북한은 한미에 대해 강 대 강 정면돌파를 택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러 접근으로 돌아선 방향 전환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물론 현재의 북‧중‧러 관계는 중국이 신냉전을 경계하는 등 과거 냉전시기와 달리 매우 불안정하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과거의 고립무원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대한 한미의 유엔 추가제재 시도는 중‧러의 반대로 사실상 어려워졌고, 과거 6자회담 시기와 달리 한미가 북한문제와 관련해 중‧러의 협력을 얻기는 쉽지 않아졌다.
두 국가론의 끝은 '무력통일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