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방공기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AP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돌을 넘겼다. 2022년 2월 24일을 전쟁의 시작으로 보면 그렇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전쟁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종전 소식을 기다린다. 물론 종전은 빠를수록 좋다. 다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종전 조건이 문제일 뿐이다.
전쟁의 피로감은 누구의 피로감인가. 주식의 등락, 휘발유나 밀가루 가격의 등락을 걱정하는 누군가의 피로감인가. 미디어를 뒤덮는 전쟁 이미지에 지친 누군가의 피로감인가.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 반등을 고민하는 누군가의 피로감인가.
전쟁이 가진 보편적 악(惡)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대부분이 피부로 느끼는 전쟁의 피로감은 전쟁 자체가 아닌 파생적이고 부수적인 효과에서 온다. 그리고 전쟁의 시작과 끝도 비극을 온몸으로 부딪치는 이들이 아니라 파생적 영향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이들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전쟁의 시작이 과연 2022년 2월 24일인가? 전통적인 군사학적 규정은 선전포고 또는 점령이나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대규모 무기가 국경선을 통과하는 시점을 전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적으로 넓은 의미의 전쟁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력이 사회 전체를 엄습하고, 경찰 대응 수준을 넘어서는 국가 안위의 위협, 심지어 영토를 빼앗기기까지 하는 비상사태가 선전포고 없이도 일어나는 것이 현대의 하이브리드 전쟁이다.
러시아는 이런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뒤흔들어 왔으며 그 시작은 2022년 2월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정확히 2014년 2월 20일에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로마이단으로 불리는 민주주의 혁명의 환희 직후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현될 수 없는 '민족국가' 개념
우크라이나는 현대사회의 '국가'라는 정치집단이 가진 근본적 모순을 정면으로 안고 있는 나라다. 정치권력의 최대 지상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고안된 '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은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현될 수 없는 허구의 이념이었다.
하나의 영토 안에 정치적 주권과 민족-문화적 공동체의 경계가 일치하는 국가를 민족국가라고 부를 때 이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국가는 아시아의 한국, 유럽의 아이슬란드 등 극히 소수다.
그나마 정치적 영토 기준으로 말할 때나 가능할 뿐 민족-문화적 공동체의 경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불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민족-문화적 경계선은 만주까지 이어지며, 아이슬란드의 경우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확장된다.
그런 신화적 이념이 유럽 국가들에 의해 합법적 지상권의 단위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극단적 배타주의를 경계하고 경제적 편의성과 복지의 보편화라는 실용적 이익을 민족적 소수자들에까지 보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나치 독일의 민족주의였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헌법에서마저 민족-문화적 집단 간 차별 조항을 삭제하고 정치적 영토 내에서 모든 시민의 동등한 주권을 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민족-문화적 정체성의 경계를 정치적 지상권의 경계와 일치시키려는 민족주의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소수민족의 분리 움직임과 결정적으로 관계되는 것이 앞서 언급한 경제적, 복지적 보장 문제다. 이들의 독립(스코틀랜드, 카탈루냐) 또는 재통일(북아일랜드) 성사 여부는 유럽연합(더 정확히는 유로존) 편입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