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방송3법의 부활 처리를 하길 바라는 유권자의 DM.
박종현
저는 기자 출신입니다. 아니, 출신이 아니라 아직도 기자입니다. 회사 소속이든 아니든, 회사에 다니든 퇴직했든 기사를 쓰는 한 기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6년부터 2017년까지 신문사 두 군데에서 30년 정도 일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면서 시민의 격려를 받고 우쭐하기도 했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같은 한 건의 기사가 세상을 바꾸는 일도 경험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기자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참담한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빛과 그림자를 두루 겪었습니다.
신문사를 떠나고 보니 회사 소속 기자, 신문사, 방송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낍니다. 회사 안에 있을 때도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밖에 나가 보니 안에 있을 때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시민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기자를 '기레기' '기더기'라고 야유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비난과 조소의 말 속에 얼마간은 잘하라는 자극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더욱 잘 보이는 미디어계의 문제들
신문사를 떠난 뒤 자유기고가로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미디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6년가량 밖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미디어는 제가 일할 때보다 훨씬 추락했습니다. 열화했습니다. 진보네 보수니 하는 매체의 성향을 떠나 더욱 정파적으로, 더욱 상업적으로, 더욱 선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의 '언론'과 '언론사'를, 언론과 언론사로 부르는 게 아주 못마땅합니다. 언론이란 단어에는 공적인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는데, 우리나라 기성 '언론'과 '언론사'에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들을 그저 미디어, 미디어 회사로 부릅니다. 일본에서 보니, 일본은 일찍부터 신문과 방송, 신문사와 방송사를 언론이라고 부르지 않더군요. 신문과 방송은 매스컴 또는 미디어로 부르고, 더더구나 기자를 '언론인'이라고 부르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의회를 '언론의 부(府)'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상업성을 내장한 미디어가 국민의 대표 기관이 되기엔 턱없는 존재라고 본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우리나라 미디어 상황은 더욱 추락하고 있습니다. 나빠지고 있습니다. 더는 떨어질 곳이 없는 줄 알았는데, 땅 밑에 깊은 지하가 있는 걸 몰랐습니다. 그중에서도 방송의 추락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땅바닥 뚫고 지하까지 추락한 공영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