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뿌리에는 극단적인 이윤 추구의 경제체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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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임금소득 격차도 지난 5년간 부동산 폭등에 따른 자산 불평등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물론 전체 자산 불평등도 금융자산 불평등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금융자산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66으로, 자산 불평등(0.61)과 소득 불평등(0.43)보다 더 높게 나온다. 지니계수는 클수록 불평등도가 높다. 여기에 갈수록 벌어지는 지방과 수도권 격차, 교육 격차, 건강 격차, 문화 격차까지 더하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쏠림'과 '대물림', '진입 장벽화'라는 세 가지 고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초저출산은 이런 격차에 따른 결과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대책이랍시고 아무리 세계에서 제일 긴 남성 육아휴직 기간을 내놓아도 실제 사용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가진 나라에서 54주에 달하는 육아휴직을 누가 마음대로 사용하겠는가? 한번 비정규직은 전 생애 동안 비정규직이 되고, 한번 나락으로 떨어지면 영원히 루저로 낙인찍히는 그런 사회 시스템 속에서 누군들 공포스럽지 않겠는가? 합계출산율 0.72는 바로 청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공포지수인 셈이다. 이러니 청년들이 지금의 삶을 자기 대에서 끝내겠다고 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삶에 대한 이런 불안과 공포는 어디서 왔을까? 그 뿌리에는 미국 사회사상가 낸시 프레이저가 소위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라고 비판한 극단적인 이윤 추구의 경제체제가 있다. 인간이 다음 세대를 낳으며 같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돌봄, 교육, 주거, 먹거리, 환경 등이 그것이다. 이윤 주도의 경제체제가 상품화하는 데 제약을 둬야 할 것들까지 다 포식하려고 사회질서를 재편하고 있다고 프레이저는 비판했다.
경제가 잘 작동되게 하려면 경제를 떠받치는 사회적 재생산을 이뤄야 하고, 생태자연도 지속가능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마치 자기 꼬리를 물어 먹어 치우는 우로보로스 뱀처럼 자기를 먹어버린다. 자신이 자신을 재생산하고, 환경과 같은 자신의 기반도 더럽힌다. 자기계발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착취거나 자기약탈인 것이다. 오죽하면 청년들이 영혼을 끌어모으거나 영혼까지 갈아 넣어가며 돈벌기에 뛰어들겠는가.
청년층의 자살 증가와 초저출산은 언뜻 다른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가 자기 삶을 끊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다음 삶을 끊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의 뿌리는 같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경제대국은 결국 자기 꼬리인 미래세대와 자연환경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다. 청년들이 일찍이 헬조선, N포 세대, 엄친아, 흙수저라고 외칠 때 그들의 분노를 눈치챘어야 했다. 정권만 바뀌었지 식인 자본주의는 여전한 사회에서 이들의 분노는 두려움이 되고, 절망은 자포자기가 되어버렸다. 연애, 결혼, 출산이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특권이 되어버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이처럼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사회를 줄이지 못한다면 조만간 청년들은 자신들의 결심이 얼마나 합리적인 생존방편인지 합계출산율 0.6, 0.5, 0.4로 답해줄 것이다. 이것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