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택시는 일 하는 시간이 각자가 다르다. 오전 반과 오후 반이 있고 야간에만 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시간을 나누어 일하는 사람도 있다.
pixabay
또한, 서울에서의 택시운전은 정체와의 기 싸움이다. 왜 기 싸움이냐면 퇴근이 시작되는 오후 6시 역삼역에서 선릉역 사이 도곡동 방향 사거리 신호등에 손님을 태우고 줄을 선 경험이 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거기서 신호 하나 받으려 빼곡한 자동차 숲에서 맥없이 기다려야 하는 30분 이상을 손님과 함께 '기 빨리지' 않는다면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문제는 이런 비슷한 정체가 하루 종일 시내 곳곳에서 예고 없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예고 없이 닥친 차량정체는 맥락도 없고 수습할 대책도 없다. 유일한 해결책이라곤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한 없는 기다림은 손님을 빨리 많이 태워야 하는 택시의 속성과 정확하게 대치되는 상황이다. 지루함과 무기력함이 증폭되고 얌체운전과 난폭운전의 유혹 속에 가슴 속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쟁투를 벌인다.
정체는 지루하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내겐 이보다 정체에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마음이다. 어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는 사실 앞에 좌절하고 포기한다. 택시운전사는 운명적으로 그걸 수용해야 한다.
서울에서 운명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거리 정체를 대하는 택시기사들의 유형은 크게 둘로 갈린다. 가급적 정체를 피하거나 정면으로 부딪히거나다. 성격이 무던한 사람들은 정체의 시간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반면 나처럼 무기력함을 견디지 못하는 비수용적 성향의 사람들은 정체가 일상적인 시간대를 적극 회피한다.
개인택시는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의 노동 시간을 각자의 건강과 성향에 따라 스스로 정한다. 크게는 오전 반과 오후 반이 있다. 만국의 노동자와 같이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정규반이 있고 늦은 오후부터 심야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간반이 있다. 노동 시간을 여러 개로 쪼개는 사람도 있고 휴식 시간 없이 쭉 일하고 시간이 되면 칼퇴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간이 아닌 매출에 맞춰 일하는 사람도 있다.
천차만별인 노동시간은 매출과 함께 전적으로 택시가 주는 고통을 대하는 택시기사의 자세에 기인한다. 시간과 정체와 더불어 또 한 가지는 사람이다. 사람은 곧 관계다. 관계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평생 안고 가는 가장 큰 숙제이자 딜레마다. 사람을 태워야 돈을 버는 택시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택시가 관계에서 가지는 강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택시가 하루에 태우고 보내는 사람은 대략 15명에서 25명 사이다. 이 중 6할은 소리 없이 타고 내리는 사람이고 2할은 유쾌하고 밝게 타고 내리는 사람인데 문제는 남은 2할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자기 말만 하거나 상식을 벗어난 이상 행동을 한다.
그 2할의 사람들이 낮에 벌이는 문제적 말과 행동은 그래도 수습이나 타협이 가능하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사람들의 뇌는 (범죄의 영역은 별도로)합리적 이성 영역 안에 있거나 있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벌건 낮에는 매의 눈을 가진 목격자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결국 모든 허물을 드러내는 술이고 그런 허물을 감춰주는 밤 때문이다. 밤에 술 먹은 나쁜 사람은 택시기사에게 두려움과 공포다. 낮에 손님에게 겪었던 불편했던 짧은 관계는 금방 휘발되지만 밤에 겪는 만취자들의 악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이성과 시민적 교양 따위 쓰레기로 만들어 처박아버린다(보편적 이성과 시민적 교양 따위 없는 택시기사는 별도 주제로 하자).
이런 사람을 대하는 택시기사들의 유형도 크게 두 가지 인데 당연히 피하거나 감수하거나다. 감수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낮보다 야간이 훨씬 돈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일을 하면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걸 잘 알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내 노동의 주인은 나'라는 도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