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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자,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대리기사의 사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한 움큼의 희망을 얻어 가시길.[기자말]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자료사진).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자료사진). ⓒ Pixabay
 
나는 나를 '일회용 노동자'로 정의한다. 매번 고용주가 바뀌고, 매번 노동의 형태도 바뀌고, 매번 급여도 바뀌는 탓이다. 오직 단 한 번만을 위해 고용되고, 단 한 번에 해고(?)되니 일회용 노동자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겠다. 

그래서인지 이 일은 단 며칠만 쉬어도 현실감각에 뜨거운 멀미를 가져다준다. 과연 내가 하는 이 일에 실체가 있기는 한 건가, 정말 이렇게 전화 한 통을 받고 나가서 다른 사람의 차를 덥석 운전해 주고 돈을 받는다는 것이 매번 실감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경험 자체는 쌓였다고 할까. 초기처럼 대리를 부르는 '콜'이 뜬 곳까지 지나치게 빠르게 뛰어가지는 않는다. 안녕하세요, 대리 부르셨죠? 하며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제법 공기반 소리반이 유지된다. 

운전석 의자도 은근슬쩍 내 체형에 맞춰서 세팅한다. '엉따'가 지나치다 싶으면 끄고, 온풍이 격하다 싶으면 잠잠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에는 그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탔다. 내 것이 아니니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추우시죠?'라며 내게 호의를 마음껏 발휘해 엉따와 온풍을 풀출력으로 올려놓고 기다려 주신 고마운 고객 분들이 있었다. 다만 겨울밤의 차가움을 이겨내기 위해 단단히 싸맨 내가 문제였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했다. 당신의 따뜻한 호의가 나에겐 뜨거운 고통이 되는 기괴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꾹 참고 갔다. 

백미러나 사이드 미러도 심각한 수준으로 뒤틀려 있지 않는 이상 나는 건드리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집중하고, 많이 조심하면 될 뿐이라 생각했다. 당시에 '일회용 노동자'라는 말로 나 자신을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런 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저절로 그렇게 돼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리기사를 도구처럼 여기는 사람들  

몇 번은 이상한 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마치 내가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오직 운전이라는 걸 하기 위한 도구나 기계처럼 여기며,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몇몇 고객들이 있었다. 

일례를 들자면 이렇다. 한 고객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내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몇 시절이 지난 노래여서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노래였다. 대리운전을 하는 나도 같이 흥얼거리고 싶은 유혹을 삼켜야 했다. 

또 하루는 간호사인지 의사인지 병원 근무자인 듯한 세 분이 함께 탔는데, 스스름없이 병원에서의 날 것 그대로인 이야기를 마구 쏟아냈다. 특정 의사의 행동과 이상한 행보에 대한 해석, 병동 안의 은밀한 해프닝들, 그리고 역시나 빠질 수 없는 험담. 종종 전문용어들과 섞여 대화가 흘러가니 한 편의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한 회사 꽤 높은 자리인 분들도 있었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둘이 타서는 돈을 빌려달라는데, 액수가 어마어마했다. 한 쪽이 다른 쪽에 '5억만 빌려달라, 내가 별장을 하나 샀는데 잔금을 치러야 해서'라며 말을 트자, 상대는 공증을 요구했다. 거기에 '에이 뭐 우리 사이에 그런 걸 하냐'라 답하자, 상대는 또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러냐, 돈 문제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닌 거 알잖느냐' 되받아친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되는 건가 그저 신기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내 존재가 흐릿해진 채로 돌아오고는 했다(자료사진).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내 존재가 흐릿해진 채로 돌아오고는 했다(자료사진). ⓒ pixabay
 
그 고객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낀 것은 아니다. 존중하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그들에겐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보다 운전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처럼 느껴지는 듯 나를 사람으로 딱히 의식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신기했을 뿐이다. 아마도 나도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 누군가에게 그런 적이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이런 고객들을 만나면 힘이 빠졌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내 존재가 제법 무색무취해지고 흐릿해진 채로 돌아오고는 했다. 어쩐지 이런 고객의 대리운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나는 과연 이 세계에서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혹시 이 모든 게 꿈은 아닌지 볼을 꼬집어 보기도 한다.

대리기사 일을 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언어들이 넘치도록 충전되고 꿈틀거린다. 당장이라도 몇 편의 글을 쏟아놓을 수 있을 것 같은 후끈거림을 느낀다. 

나는 내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나도 사람이라고 외치고 싶은 걸까. 오늘 당신을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준 나도 사람이었다고, 당신의 차 운전석에 사람이 있었다고, 여기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앉아 있다고. 

나는 일회용 노동자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사람이다. 내 존재만큼은 일회용이 아니라고 스스로 주문하듯 믿어본다.

#대리운전#대리기사#대리#노동자#일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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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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