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성희 의원이나 신민기 대변인은 해당 행사 구성원이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통령이 참석한 중요 행사를 망치는 걸 사전에 계획하고 실행했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아래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연구개발(R&D) 예산 복원을 외치던 졸업생이 경호원들에게 들려 나간 사건에 대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보험금을 뜯어내는 보험 사기범 행태가 떠오른다고 비난했다.
졸업생은 정당 대변인이기 전에 카이스트에서 공부한 공학도였다. 행사를 망치는 걸 사전에 계획했다는 건 밝혀지지 않는 추론일 뿐이다.
윤재옥 원내대표 주장대로 논란이 된 행위가 보험 사기라면 가해자는 R&D 예산 복원을 외친 졸업생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교육부만 해도 2024년 R&D 사업예산을 전년 대비 60% 삭감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대학의 석·박사 과정 연구자들이다.
야당과 과학계 등에서 온갖 우려가 나왔음에도 과학기술계 카르텔 때문에 부정하게 사용되었다며 R&D 예산을 난도질한 게 윤석열 정부다. 졸업생들의 분노가 뻔히 보이는데도 단상에 올라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던 대통령, 항의를 유발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염치없는 축사다.
지나간 과거인 줄 알았는데
졸업식은 졸업생들의 잔칫날이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박수쳐주고 격려해야 할 손님이다. 대통령 축사를 듣기 위해 졸업생과 가족들이 모여든 것도 아니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주인공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어낸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위다. 국민은 항상 대통령을 중심으로 서야 하고 엄숙하게 박수를 쳐야 한다는 건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발상이다.
대통령 행보에 기업 총수들을 병풍 세우고, 명품백을 '조그만 백'이라고 부르는 부끄러운 저자세에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응답하고, 듣기 싫은 소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는 광경. 지나간 과거인 줄 알았는데 너무 자주 등장한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취임 3년 차 대통령에게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야당의 이야기도, 언론의 비판도, 국민들의 외침조차 듣지 않는다.
대통령 주장에 반하면 야당도 척결해야 할 이권 카르텔이 되고 방송국도 국익을 해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를 성토했던 대통령은 취임 3년 만에 권력의 힘으로 국민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 절대 권력자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