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의 모습.
이희훈
물론, 검찰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한다고 해서 보이스피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에서 드러나는 대중들의 인식은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검찰이 '신뢰를 회복한다'는 말은 수정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검찰은 탄생 이래 시민들의 신뢰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불신에는 검찰이 저질러 온 잔인하고 비겁한 행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검찰의 수사방식은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객관적 증거 수집보다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은 쉽게 강압수사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혐의를 받던 이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한국 검찰이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들의 수사 방식은 1912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검사들에게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피의자를 일단 체포해 자백을 받아낼 수 있게 된 검찰은 이승만 시대를 거쳐 두 번의 군사독재와 노태우 정부를 거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됩니다.
특이하게도 한국 검찰은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까지도 지닌 조직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죄판결을 받아 내기 위해 인권을 무시한 강압 수사는 물론, 증거를 조작하는 기막힌 짓까지 저지를 수 있던 것이지요. 기억해야 할 점은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재심이 결정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대해 들어본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2009년 한 순천시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신 뒤 두 명이 숨지고, 다른 두 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진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실마리를 잡지 못하다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큰 충격을 몰고 옵니다. 부정한 관계에 있던 부녀가 어머니를 살해할 목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것이었지요.
재판 결과 남편에게는 무기징역, 딸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되었고, 2012년 형이 확정된 후 두 사람은 올 1월까지 수감 돼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2023년 언론과 박준영 변호사의 노력 덕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의 자백 외에는 어떤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으며, 수사 당시 검사와 조사관이 지어낸 답변을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방식으로 자백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요.
지금이나마 사실이 드러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검찰이 음험한 상상력으로 조작해 낸 시나리오로 인해, 부녀는 15년 동안을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20대에 기소된 딸은 40이 다 돼 세상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기막힌 사태의 장본인인 검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검찰의 행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하지만, 이미 오래 전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법이란 게 권력자에게는 참 편리합니다. 힘있는 자들의 불법행위에 책임을 묻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소시효가 고작 7년이니까요. 검찰이 시위 참여자를 처벌할 목적으로 흔히 적용하는 교통방해죄의 공소시효가 10년인 데 말이지요.
'92학번'이라 민주화 운동과 상관 없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