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서 바라본 서울시내가 안개와 비로 뿌옇다.
연합뉴스
1966년에 태어나 1985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그렇게 열렬한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기본적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대학 시절 이후 실천 현장에서 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우리는 지나친 이념 주의와 섣부른 이원적 사고로 크고 작은 문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1980년 광주를 공유하는 시대의 자식으로서 오늘과 같이 민주주의와 기본인권이 일상화되는 시대를 만드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주역을 자부하던 우리 세대 역시 한국 사회의 통합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깊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 2019년)라는 책을 통해 86세대를 재평가하는 논의에 불을 붙였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첫 번째 황금기를 관통한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말미에 태어나,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1970~80년대)에 청소년, 청년기를 보내며 마이카시대라고 불리던 중산층 신화의 혜택을 받았다.
고등교육이 일반화되고 1980년대 대학입학정원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 수혜로 대학가 시대를 열었고, 취업이 아닌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에 나간(1989년) 첫 세대가 되었다. 더 좋고 나쁜 직장의 차이는 있었지만, 취업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1990년대 세계화와 경제개방 속에서 맞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도 윗세대와 아랫세대에 집중되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았다.
무엇보다 1980년대부터 민주화 세대라는 연대감 속에 정치, 경제, 사회 등 각계에 구축된 협력 기반이 다른 세대에게는 기득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세대를 압도하는 고위직 장악률과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 수준의 임금과 소득점유율, 꺾일 줄 모르는 최고의 소득상승률, 세대 간 최고의 소득격차,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성장이 둔화되어 가는 경제에서 가능했을까?"(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130쪽)
지금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민주화 세대의 특권화, 기득권화를 깊이 의심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다른 세대도 다 그렇듯이 우리 역시 하나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우리를 흔히 86세대로 부르지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 일반화하기에는 당시 늘어난 수치를 감안해도 대학 진학률은 30%를 겨우 넘을 정도였다.
단순화하면, 86세대의 다수인 70%가량은 오늘날 각계의 주류, 기득권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당시 그들은 대학 대신 공장, 농촌, 광산 등에서 살아왔다. 더구나 같은 세대라도 여성의 위치와 자리는 철저히 '중하층 노동시장-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같은 책, 246쪽)에 머물렀다.
80~90대를 부모로, 지금 시대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20~30대를 자녀로 두고, 은퇴를 앞둔 우리 역시 지난 30여 년 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왔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한국 현대사상 가장 뜨거운 세 세대를 관통하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가 부모 세대와 어떻게 화해하고, 불화하는 자녀 세대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는 단지 한 가정을 넘어,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사활적 과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그저 우리 시대의 기억과 경험에서 머물러 '라떼'만을 반복하면 대한민국은 불통하며, 다음 세대는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80년 광주를 경험하며 대의와 가치에 따라 나름 뜨겁게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역시 당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시대의 자식이며, 30~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 전부이거나 모두 옳은 것이 아님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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