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크게 부각하는 인물은 이승만이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정부·여당이 그를 열심히 띄우고 있다. 게다가 이승만은 최근 다큐영화 <건국전쟁>의 주인공으로 부활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4·19혁명 초래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는 중도층 유권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줄 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 일례로 '4.19혁명을 촉발시킨 3·15부정선거는 이승만이 아닌 이기붕의 책임이다', '4.19혁명의 원동력인 민주주의의 성숙은 이승만의 작품이다', '이승만은 4.19 부상자들을 방문해 눈물을 흘렸다', '이승만은 하와이 교민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등등의 이야기가 영화에 나온다. 이승만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위한 접근법이 영화에서 시도되고 있다.
특히 <건국전쟁>은 이승만이 특권층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었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다. 농지개혁에 대한 설명이 그중 하나다.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 정작 농민의 삶은 바꾸지 못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저는 1950년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 장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면서 "만약 이게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한다.
이 발언은 법무부장관 때인 지난해 7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46회 제주포럼에서 나왔던 말이다. 또 그날 그는 대한민국이 한국전쟁 때 북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농지개혁의 수혜자인) 농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나라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학농민전쟁처럼 한국전쟁(6·25전쟁)을 사실상 농민전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영화를 관람한 지난 12일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으신 것, 농지개혁을 해낸 것,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이승만을 띄웠다. 하지만, <건국전쟁>과 한 위원장의 이 같은 노력은 헛수고로 귀결되기 쉽다. 농지개혁이 한국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할 만한 결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닷새 뒤인 1949년 5월 1일의 제1회 총인구 조사에 따르면, 당시 인구는 2016만 6758명이었다. 그달 6일자 <조선일보> 1면 중간에 따르면, 농업 인구는 1375만 명이었다. 전체 인구의 68% 정도였던 것이다.
이처럼 농민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국민의 삶을 뒤바꿀 만한 농지개혁이 일어났다면, 그 혜택을 입은 농민들이 죽기 전까지 고마움을 간직하는 게 자연스럽다. 농업시대에 소작농이 자작농이 되는 것은 공업시대에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이 기업체 하나씩을 갖게 해준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은 웬만해서는 잊히지지 않을 것이다.
농지개혁이 정말로 한국 민중에게 그런 축복이 됐다면,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지연된 농지개혁이 완료된 지 얼마 뒤인 1960년 3월과 4월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며 이승만 하야를 외쳤다. 고마움의 정서가 광범위하게 남아 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겠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친일청산이 무산된 이유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해방 직후의 보수세력이 친일청산을 극력 반대한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농업시대의 기득권은 농지 소유에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기득권을 지키자면 친일청산뿐 아니라 토지개혁도 극력 저지했어야 한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친일청산만 악착같이 저지하고 농지개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농지개혁으로 잃을 게 별로 없었음을 뜻한다. 일반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개혁은 아니었던 것이다.
민중들의 강력한 요구, 농지개혁 서두른 미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