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4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시작 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들이 R&D 예산 삭감 등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나가는 돈인 세출 부분에 대해서는 혜택만 언급되어 있다. 늘어나는 곳이 있으면 줄어드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정책 홍보 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수입은 줄이고 지출을 늘린다면 결국 부채가 늘거나 다른 부분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수입이 늘지 않는데 지출을 줄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3년도의 대규모 세수감소 발생으로 수입을 늘리지 못하다 보니 지출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지방정부에 지출하는 돈을 줄이고 R&D 예산을 줄이는 것이 지출구조조정의 대부분이었다.
R&D 예산을 줄인 후폭풍을 경험한 결과 앞으로도 지출구조조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에서 '2025년 이후 예산편성 시 과감한 지출구조조정으로 재정누수를 차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안이 있어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하기 어려운데, 대안까지 없다면 더욱 난망한 상황이다.
2024년 예산에서 25조 원의 지출구조조정을 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확인이 가능한 지방에 주는 돈 15조 원과 R&D 예산 5조 원 등을 합친 것이 그 내역일 것이라는 추정만 가능하다.
보조금 문제는 이제 현 정부 정책의 중심 기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재정의 규율이나 지출구조조정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부정수급은 꼭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 없지만 주요한 개혁 방향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액수도 미미하다. 보조금 사업 자체와 정산 등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정수급 문제를 국정과제로 삼을 경우 자칫 보조금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없애야 할 보조금도 있지만 의미 있는 보조금도 있기 때문이다.
재정의 지속가능한 국민연금 건강보험 제도 구축은 원론적인 내용이다. 우리나라 복지제도가 고도화되면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국가재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국민연금 누적적립금이 1000조 원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건강보험 1년 예산이 100조 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2000조 원을 넘어섰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영향이 엄청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올해 특위를 만들어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다층적인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마련한다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건강보험은 정신건강 지원 확대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서도 의료서비스 과다 이용자에 대한 본인 부담금 인상 등 지출구조 효율화 추진이나 자동차에 부과되는 보험료 부과 기준을 개선하는 감세조치로 볼 수 있는 사업이 주된 내용이다.
물론 필요한 일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나마 한쪽, 30줄도 안 되는 재정 관련에 들어가는 주요한 내용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빈약해 보인다.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 거버넌스 문제가 있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발표를 보면 정부 내 거버넌스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은 대통령 업무보고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나 여기에는 금투세 이야기가 없다. 사안이 중대한데도 자료에는 없고 대통령의 지시로 발표되었다. 사전 조율은 일종의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벗어난 선거용이라는 비판은 차지하고라도 정부 내에서 논의도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주식 공매도 금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글로벌 스탠다드 차원에서 유지되는 것인데 갑자기 진행되어 보수언론조차 반대하는 상황이다.
야당이나 시민사회, 언론과의 조율은 고사하고 정부 내에 협력적인 거버넌스도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나라를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결정이 아니라 과정이다. 더구나 행정에서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 갑자기 R&D 예산이 줄어든 것도 그러한 사례이다. 어느 정도 밝혀진 것처럼 담당 부서의 계획에는 전혀 없던 것이 순식간에 뒤집힌 사건이었다.
특히 예산은 법이 아니다 보니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힘들다. 일반법도 시행령이라는 변칙적 방법으로 행정부 의도대로 적용하는 현실에서 법이 아닌 예산은 더욱 심각한 우려가 든다. 조세지출이 국가재정법을 어겨도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행정에서 절차를 통해 시스템을 유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무너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한다.
지방자치단체 등 다른 기관들과의 거버넌스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난 8일 발표한 잠정 결산인 '2023 회계연도 총세입 총세출 마감결과'를 보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주는 지방교부세(금)가 나온다. 이를 두고 정부는 지난해 9월 23조 원 미지급을 통보했는데 이후 생각보다 조금 더 걷혔다고 12월에 3조 원을 더 지급했다. 찬물과 뜨거운물을 번갈아 가며 주는 형태의 예산집행이다.
지난해 정부가 쓰지 못한 예산 불용액이 46조 원에 육박해 불용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결산상 불용액이 45조7000억 원이지만 '사실상 불용' 규모는 10조8000억 원에 그친다고 해명했다. "사실상 불용"이라는 기상천외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더구나 나라살림연구소에서 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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