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7일 자 <동아일보> 기사 "득표율 이승만 박사 92%, 이기붕 씨는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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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7일 자 <동아일보>에 "득표율 이승만 박사 92%, 이기붕 씨는 78%"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 득표율을 얻기 위한 자유당의 부정선거가 전국적이고 노골적으로 전개됐다. 이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4·19를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영화는 이승만이 무투표로 당선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이승만 정권의 선거 부정은 당연히 이승만에 의한, 이승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자유당 정·부통령선거 중앙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그해 1월 21일이다. 민주당 후보 조병옥이 급사한 날은 2월 15일이다. 이승만을 당선시키기 위한 자유당의 운동이 시작된 뒤에 민주당 후보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선거 직전에 야당 대통령 후보가 죽고 야당 부통령 후보만 남았다는 이유로 이승만이 아닌 이기붕에게 '독박'을 씌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이런 식으로 4·19 책임을 이승만과 분리시키고 이기붕에게 전가시킨 뒤에 이 작품은 더욱 황당한 논리를 전개한다. 이승만과 4·19의 관계를 친화적으로 만드는 발언이 나온다. 등장인물은 4·19의 정신적 원동력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언제 그렇게 빨리 정신적 자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비밀은 1950년대 초중고에서 상시적으로 시행되었던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왜 선거가 중요한지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이승만 집권기에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진 뒤에 4·19가 일어났다는 언급이다. 이 말이 나온 뒤에 "자, 그렇게 본다면, 이승만 정권은 실패만 한 정권이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라며 "오히려 너무나 성공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 정권이라는 발언이 나온다. 4·19의 공로를 이승만에게 돌리는 해괴한 발상이다.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은 동학혁명 직후의 독립협회 활동에서도 나오고 1919년 3·1운동 때도 거국적으로 표출됐다. 학교 교육과 관계없이 민중이 태생적으로 가진 정치적 역량이 이런 사건들을 움직였다. 이를 무시한 채, 한국인들이 1950년대에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웠고 이것이 4·19로 연결됐으므로 이승만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한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무시하는 것이다.
영화는 심지어 3·1운동의 공로까지도 이승만에게 돌린다. 이승만의 미국 활동을 소개한 뒤 "그게 3·1운동으로 무르익었다"라는 발언을 들려준다. 또 "3·1운동의 배경을 보면 이런 국제정세를 파악한 이승만의 앞을 내다보고 미국의 정치인들의 심중을 알고 국제정세를 파악했던 이승만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조명"해야 한다는 발언이 뒤이어 나온다.
3·1운동 나흘 전인 1919년 2월 25일, 이승만은 문서 한 통을 작성했다. 한국이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받도록 해달라는 청원서였다. 일본이 핵심 구성원인 국제연맹의 통치를 받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4일 뒤부터 우리 국민들은 '위임통치 만세'가 아닌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승만은 이런 민족적 염원을 거역했다. 그런 이승만을 이 영화는 '3·1운동의 배후 인물'로 만들었다. 4·19 책임은 이승만과 떼어놓고, 4·19 공로와 더불어 3·1운동 공로까지 이승만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김구의 통일정부 수립 노력은 폄하
<건국전쟁>이 이승만을 미화하는 또 다른 방식은 그의 라이벌인 백범 김구를 폄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구를 북한과 연계시키는 접근법이 구사된다.
영화는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여순항쟁)을 북한과 소련의 지령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반공 콤플렉스에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런 다음, 김구도 북한에 이용당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한다.
영화 속의 극우 인사는 "북한의 김일성이 당신을 통일정부의 대통령으로 모시겠다고 그러자 '한번 우리가 만나보자' 그렇게 해서 김구는 거기에 넘어가게 되죠"라며 "그래서 아무 대책 없이 소위 남북협상이라는 이름하에 북한으로 갑니다"라고 말한다. 분단을 막기 위한 김구의 통일정부 수립 노력을 이렇게 폄하한 것이다.
그런 뒤 "남한도 북한과 같이 소비에트화시키겠다, 공산화시키겠다"고 하는 데에 김구가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건 명백한 반역이죠"라는 발언을 들려준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에 대한 한국인들의 보편적 거부감을 해소시킬 목적으로 제작됐다. '이승만은 알고 보면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승만을 몰아낸 4·19가 잘못됐음을 보여줘야 하는데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도리어 엉뚱하게도 '이승만 시대의 학교 교육에서 민주주의가 강조됐고 그 결과로 4·19가 일어났으므로 이승만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논리가 제기됐다. 4·19가 옳았다는 말을 그렇게 해버린 것이다.
4·19가 옳았다면, 이승만은 나쁜 인물이 된다. 이 영화가 본의 아니게 이승만의 죄상을 더욱 드러낸 셈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란 표현을 통해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을 '불의'와 등치시켰다. 이 영화는 의도치 않게 이런 결론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