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바리캉 사건' 피해자 부모가 지난 1월 25일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지난 6개월간 수사·공판 과정에서 모은 서류들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복건우
"혜빈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도 우리는 서류 수십 장을 제출하러 이곳저곳 다녀야 했어요."
'서현역 흉기난동' 희생자 김혜빈(20)씨 부모는 딸이 가해자 최원종(22)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지난해 8월 3일부터 28일까지 이른바 '뺑뺑이'를 돌았다. 혜빈씨 어머니는 지난 1월 중순 <오마이뉴스>와 만나 "딸이 입원해 있을 때 병원에서 구조금 서류를 떼기 위해 동사무소를 방문했다가, 다시 수원지검에 직접 가서 신청서를 내야 했다"며 "지원제도가 다 나뉘어져 있어서 신청하기까지 각 기관마다 계속 전화를 돌려야 했다"고 떠올렸다.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르면 범죄피해로 인해 전치 2개월 이상 부상·질병을 입거나 1주 이상 입원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중상해 구조금을 받을 수 있다. 또 검찰은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범죄 피해자와 가족의 피해 회복을 위한 생계비, 장례비, 치료비, 주거이전비 등을 지원한다. 문제는 입원한 딸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부모가 직접 지원금을 '알아서' 준비하고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 혜빈씨 부모는 한 달 내내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표 등본·초본을 떼러 동사무소를 방문하고, '중상해 구조금 신청서'와 '환수 및 대위 확인서'를 직접 내러 수원지검 범죄피해자보호실을 찾아야 했다. 딸이 세상을 떠난 뒤 내야 하는 서류는 더 늘었다. 범죄 피해자가 사망하면 '중상해 구조금'이 '유족 구조금'으로 변경되는데 '범죄 피해로 인한 사망'을 확인할 수 있는 공소장(판결문),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 범죄 피해 직전 피해자의 3개월 월급명세서 등을 내야 한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진이 빠지지만, 그마저도 다른 지원금과 중복되면 받을 수 없다.
"딸 입원했는데 서류 수십 장 들고 여기저기"
혜빈씨가 입원한 지 열흘이 넘어서야 담당 검사가 병원을 찾아왔다. 입원 엿새 만에 1300만 원의 치료비가 나온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뒤였다. 검찰은 혜빈씨 부모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서 치료비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가해자 최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검찰청 '범죄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치료비는 연간 1500만 원(최대 5000만 원)까지 지원할 수 있다.
복잡한 지원제도보다 더 힘든 건 국가로부터 받은 상처였다. 혜빈씨 부모가 건보공단과 통화에서 들은 첫 질문은 "뺑소니 사고인가요?"였다. 범죄 피해자 가족에겐 '이상동기 범죄'를 단순 '교통사고'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혜빈씨 부모는 정부 기관의 이런 태도가 범죄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더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혜빈이한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지원제도들, 그게 끔찍이 싫었어요. 딸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도 우리는 왜 서류 수십 장을 제출하러 다녀야 했을까요. 겨우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그렇게 시간을 낭비한 게 정말 후회돼요. 국가가 먼저 나서서 피해자에게 배상하고 남은 가족을 위로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받은 돈은 3개월 치 생계비 300만 원, 긴급생계비 240만 원이 전부였다. 그보다 더한 고역은 딸의 '목숨값'과도 같았던 장례비였다. 혜빈씨 부모가 지원받은 장례비는 총 400만 원로 전체 장례비(1300만 원)의 절반도 안 되는 액수였다.
관할 검찰청은 차액 지급을 위해 최씨 쪽 자동차 보험사에서 나오는 장례비(사망보험금)를 얘기했으나, 혜빈씨 부모는 "사망보험금은 민사소송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받을 수 있고, 재판이 진행 중이라 최씨 쪽에서 합의금을 받았다고 걸고 넘어질 수도 있다"며 전부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