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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은 이번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에서 가장 높은 A등급으로 책정되어 210억 원의 기금을 확보했다. 함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예산을 확보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세대의 인구감소와 유출, 일자리 부족 등 함양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막막할 정도로 산적해 있다. 청년인구를 유입시키고 유출을 막는 것은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급한 문제다. 청년세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세대다. 현재 함양군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인구 유치를 위해 힘쓰는 사태를 보며 지방을 찾아온 청년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지원금만 밝힌다며 비판한다. 정말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청년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본지는 이미 함양에서 살고 있는 청년의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청년들이 함양에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기자말]
 박상언, 김아라 부부 그리고 아들 선율
박상언, 김아라 부부 그리고 아들 선율 ⓒ 주간함양
 
경남 함양군 유림면에 터를 잡고 사는 부산남자 박상언씨와 대구여자 김아라씨는 2014년 서울 도봉산에서 암벽등반을 하다 만났다. 부부는 산과 막걸리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관심사와 취미가 비슷했다.

둘은 자연스레 연애를 시작했고 지리산을 오르는 등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박상언씨의 핀란드 유학을 이유로 6개월의 연애를 마쳤다. 각자의 삶을 살던 둘은 4년 뒤인 2018년 우연하게 다시 만나게 됐다. 연애를 위해 만난 건 아니었지만, 서로가 이전에 느꼈던 매력은 그대로였고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저는 남편과 두 번째 연애를 시작하면서 더 좋게 느껴졌어요. 첫 번째 연애를 할 때는 남편에게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는데 각자의 삶을 보내고 만난 남편은 첫 번째 연애 때보다 더 깊어져 있었어요."(김아라)

이 부부가 함양과 인연을 시작한 건 '함양의 집' 덕분이다. 그 집은 상언씨의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지은 집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요양원 생활 끝에 돌아가시면서 집은 자연스럽게 가족별장이 됐다. 상언씨는 방학이나 휴가 기간 친구들과 종종 함양에 들러 그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제 친구들도 이제 도시 애들이니까 특히 휴가철에 시골에서 놀고 싶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럴 때 오기 딱 좋은 공간이라서 친구들과 자주 왔어요. 다들 그 공간을 좋아해서 와이프를 연애하면서 데리고 왔어요."(박상언)

"그때 비가 많이 오던 여름날이었는데, 상림공원을 갔다가 유림의 집에 들렀을 때였어요. 그때는 결혼을 생각할 때도 아닌데 진짜 우습지만 '나 언젠가 여기 함양에서 살고 싶어'라고 이야기 했어요. 저는 친가와 외가 전부 도시라서 늘 시골의 모습을 막연하게나마 상상하고 있었는데요. 함양은 제가 상상하던 그런 모습의 시골이라 좋았어요. 애정하는 지리산도 있고요."(김아라)

아라씨는 상언씨를 따라 처음 방문한 함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재미난 일을 떠올렸다. 부부가 함께 에어비앤비 공간을 운영하면 그곳에서 산양도 한 마리 키워 산양유로 잼을 만드는 상상. 산과 막걸리를 좋아하는 부부이기에 지리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막걸리를 만들고 술빵을 빚으면 좋겠다는 상상. 함양을 방문한 이후로 그런 낭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박상언, 김아라 부부
박상언, 김아라 부부 ⓒ 박상언, 김아라 부부 제공
 
앞산의 앞장을 들어보셨나요?

아라씨는 대구 대명동에서 수제잼 전문점 아라리오를 4년간 운영했다. 바르고 건강한 것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 아라씨는 펙틴 등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으면서 정제 설탕이 아닌 사탕수수 원당을 사용한 수제잼을 만들었다. 언제든 정성 가득한 잼을 맛볼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가게였다. 파인코코넛밀크잼, 블루베리밀크잼, 토마토바질잼 등 다양하고 특색있는 건강한 수제잼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대구에 앞산이 있고 그 앞에는 앞산카페거리가 있는데 거기서 계절마다 열리는 바르고 건강한 먹거리장터 '앞장'을 만들었어요. 회차를 거듭할수록 정말 엄청 커졌어요. 친환경이고 건강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만 입점할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이 더 좋았어요."

앞장의 핫함은 아직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4년 전의 시간이 찍힌 채 고스란히 남아있다. 많은 관심만큼 규모도 점점 커져서 1인 사장으로 운영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특히 이 시기에 아라씨의 가게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 나오면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됐다.

"동네 한 바퀴에 소개가 되기도 하고, 대구 지역에서 다양한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과한 관심이 몰렸고 결국 번아웃이 왔어요. 그 상태에서 혼자서 가게와 앞장을 운영하기가 정말 버거웠는데 남편이 그때 많은 도움을 줬어요."(김아라)

남편인 상언씨는 산림청 공무원으로 당시 경북 영덕군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영덕에서 대구까지 매주 주말마다 왕복 4시간을 들여서 왔다.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했어요. 직장인은 주말 밖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그때마다 대구에 와줘서 제 일을 본인 일처럼 도와줬거든요. 다들 남편을 그냥 앞장 스태프로 착각할 정도로 일을 도와줬어요. 그렇게 결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김아라)
  
앞장과 수제잼 전문점으로 바쁜 일상은 코로나와 함께 자연스럽게 제동이 걸렸다. 2019년 말 코로나 확산에 큰 사건이 됐던 신천지 교회가 아라씨의 가게 반경 1km 내에 있었던 것. 코로나에 민감하던 때라 위치만 보고 주문 취소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코로나는 가게뿐만 아니라 결혼도 흔들어놨다. 원래 2020년 4월 결혼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청첩장을 두 번 만드는 일이 생겼다. 같은 해 7월에 결혼식은 마쳤으나 신혼여행으로 예매했던 아이슬란드 비행기표가 취소되는 일도 생겼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보는 게 부부의 로망이었기 때문에 상실감은 더 컸다.
 
 박상언, 김아라 부부 사진제공
박상언, 김아라 부부 사진제공 ⓒ 주간함양
 
 박상언, 김아라 부부 사진제공
박상언, 김아라 부부 사진제공 ⓒ 주간함양
   
"신혼여행으로 어딜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국 우리가 원래 좋아하던 걸 하기로 했어요. 산에서 만났으니까 산에 가자고. 그래서 제주도 한라산에서 강원도 설악산까지 차박하며 이동하는 여행을 떠나게 됐어요."

많은 관심과 코로나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쳤던 아라씨는 함양행이 더 간절해졌다. 그런데 대형사고가 터진다.

"제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경북 영덕군에 소재한 관리소에서 근무하다가 2021년에 함양국유림관리소가 소속된 서부지방산림청으로 옮겼거든요. 서부청 근무지를 보면 함양을 빼고서는 전부 전라도예요.

그래서 경상도 출신 직원은 대부분 함양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게다가 함양은 경쟁이 치열한 지역도 아니고요. 그런데 갑자기 전북 정읍시로 발령이 나버렸어요."(박상언)


정읍에서 대구는 더 멀다. 부부는 그나마 정읍에서 가까웠던 함양에서 만나는 것으로 함양살이 워밍업을 시작했다.

드디어 만난 함양, 상상과 달랐다

상언씨의 딱한 사정이 알려진 덕분에 10개월 만에 정읍에서 함양으로 올 수 있게 됐다. 그 시기에 맞춰 아라씨도 함양으로 왔다. 꿈에 그리던 함양 생활이지만 아라씨에게 찾아온 건 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도로가에 정말 집만 덩그러니 있었어요. 이웃도 없고요. 거기서 하루의 대부분을 갓 태어난 아이와 단둘이 있다 보니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어요. 혼자 이 공간에 왔으면 정말 잘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육아라고 하는 게 정말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었어요. 특히 시골에서 신생아 육아는 정말 힘들었어요."(김아라)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는 아라씨였지만,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상황이 싫었다.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상언씨의 도움으로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가장 처음 결정했던 외부활동은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가 카페 오도재에서 진행했던 '지리산 이야기 대피소'였다.

"고립되지 말고 연결되자는 슬로건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지리산 이야기 대피소를 시작으로 이소 안에 있는 독서모임도 나가보고 외부활동을 해보고 있어요."(김아라)
  
 박상언, 김아라 부부 사진제공
박상언, 김아라 부부 사진제공 ⓒ 주간함양
    
하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하는 게 남았다. 함양의 불편함이다.

"지금 와이프에게 제일 불편한 건 교통수단인데 저희가 사는 곳에서 읍으로 나가려면 버스가 하루 4대 있어요. 버스 배차 시간이 길고, 읍에 나가더라도 아이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요. 아는 사람도 없고 카페에 가는 것도 한 두 번이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게 현실이 되니까 함양에 없는 것들이 많은 거예요. 도시는 아이를 안고 나가기만 해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물론 읍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똑같아요.

육아하는 점에서는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많아요. 문화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병원도 그렇고요. 이게 참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좀 답답함이 있어요. 인프라는 사람이 모여서 생기는 건데 그게 어려우니까요."(박상언)


"남편 말대로 육아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기회의 땅이기도 해요. 도시 친구들이 많이 물어보거든요. 애 낳으면서 도시로 나가는 사람은 봤어도 시골로 들어가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요.

함양에서는 승마나 체육활동, 악기연주 등 다채로운 예체능 활동을 초등학교에서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인생의 경험을 어릴 때 많이 겪어보는 게 매력 있지 않냐'라고 말해요."(김아라)


산이 좋아 지리산 함양으로 왔지만 이 애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는 박상언, 김아라 부부. 지금은 좋은 점에 집중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갈수록 힘든 게 많아진다면 아무리 이 지역이 좋아도 떠날 수밖에 없다.

"다들 도시 아파트에서 사는 게 괜히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어떻게 보면 실패 없는 검증된 방법인 거죠. 하지만 저희는 아직까지는 도전해보고 싶어요. 좋아하는 함양에서 삶을 지속하는 도전이요. 평생 있을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어요.

​​​​​​어그래도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청년들이 하고 있는 걸 보니까 더 힘이 돼요. 나라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내 옆의 사람들을 믿어가면서 살아보는 거예요."


부부는 함양이 가지는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언씨의 등산모임 멤버를 매번 함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함양의 지리산과 함양의 흑돼지, 그리고 양파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함양의 특산품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고민하고 있기도 해요. 와이프와 함께 새로운 시도를 꿈꾸고 있어요. 함양을 모르더라도 제품을 통해 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게요. 구체적으로 결정한 건 없지만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결정되면 또 말씀드릴게요."(박상언)
  

함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지역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이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매력을 이해하고 이 지역이 오래 남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박상언, 김아라 부부가 그렇다. 이 부부는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 부부가 채워가는 것들은 아들 선률이가 함양에서 보고 자랄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 부부가 무엇을 만들게 될지 기대를 안 할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함양에서이청년은#박상언#김아라#귀촌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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