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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민우회 등 9개 시민단체가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9개 시민단체가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화빈
 
"한국의 '집게손' 사태를 지켜본 일본의 스튜디오 감독님이 '앞으로 어느 회사가 한국게임 지식재산권(IP)의 애니메이션을 수주하고 싶겠냐'고 고개를 내젓더라."

일본 기업에서 근무 중인 7년차 한국인 애니메이터 A씨는 넥슨의 '집게손' 사태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 게임업계에서 일하던 A씨는 3년 전 소셜 미디어 활동을 이유로 악성 유저들로부터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 등을 겪은 뒤 미련없이 일본행을 택했다. 

그는 "작화 공정 중 (회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주의사항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며 "또한 (이용자의) 항의를 이유로 작품이 불시에 내려지는 부조리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일본) 업계의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아직도 (사상검증 대상으로) 특정될까 두렵다"며 한국에서 일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한국에서의) 너무나 엉뚱한, 억지스러운 (악성 유저들의) 항의 내용과 이쪽(일본) 원청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넥슨의) 대응방식을 지켜보며 씁쓸했다"며 "일본에도 억지 항의가 존재하지만, 창작자와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서가 주류"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형 게임사 넥슨은 지난달 23일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영상 중 집게손이 등장한다는 항의를 받자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전수조사 및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악성 이용자들은 하청업체 소속 여성 애니메이터 B씨를 지목, 그의 신상을 유출했지만 해당 장면 작업자는 40대 남성 애니메이터로 확인됐다. 
아래는 애니메이터 A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넥슨, 모든 공격 하청사 향하게 해... 믿기지 않았다"
 
 '집게 손 모양' 논란이 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집게 손 모양' 논란이 인 게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 넥슨
 
- 이번 넥슨의 '집게손' 사상검증 사태를 일본 업계에서도 알고 있나.

"소셜 미디어와 번역기술의 발달로 일본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을 막론하고 (한국의) 악성 유저들의 활동을 속속히 알고 있다. 함께 일했던 작품의 감독이나 작화 스태프들도 이쪽(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원청(넥슨)의 대응방식을 지켜보며 피해자(B씨)와 스튜디오 뿌리(하청회사)를 걱정했다."

- 일본에서도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나.

"지금껏 '페미니즘으로 인해 고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넥슨의 사상검증 사태를 지켜보며) '이래서야 앞으로 일본의 어느 작화팀이 한국게임 지식재산권(IP)의 애니메이션을 수주하고 싶어 하겠냐'며 손사래 치던 반응이 몹시 당연해 씁쓸했다."

- 일본도 악성 유저들의 항의가 있을 것 같은데.

"일본에도 가끔 억지 항의를 하는 악성 소비자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업계에선) 작품 완성도에 기여하는 크리에이터의 업무환경과 인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존중하는 정서가 주류다. (넥슨의 집게손 사태처럼) 만약 특정인의 노동권이 공격 받는다면, 기업이 보호 차원에서 소셜미디어 활동을 지양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을지 몰라도 업무에서 제외시키는 부조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번 넥슨의 전수조사 방침은 어떻게 보고 있나.

"작화의 경우, 일본에선 한 작품에 하청회사뿐 아니라 5~6개의 동급 규모의 제작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작업한다. 갑을관계가 존재하더라도 협력이 기본이라 합리적으로 약속된 제작방침을 공유한다. 동화 작업(원화와 원화를 연결해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는 일) 또한, '누가 어느 컷의 무슨 셀을 몇장 그렸는지' 다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탁과 분업의 연속이다. 애초에 (누가 그렸는지) 알아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노동환경 보호를 위해 (악성 유저들의 항의를) 대외적으로 무시해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국) 게임업계, 그리고 넥슨이 애니메이션 제작업계를 경시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협력노동의 집약이다. 백 번 양보해서 집게손이 들어간 게 문제라면 원화가, 작화감독, 전체 업무를 조율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에게도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애초에 논란의 발생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뜻이다."

- 넥슨의 전수조사 및 법적대응 방침도 논란이다. 

"논란의 사실 여부를 살피기도 전에 발주사(넥슨)는 모든 공격이 하청업체(스튜디오 뿌리)를 향하도록 행동했다. 이를 보고 믿기지 않았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적 인플루언서들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저도 같은 심정이다."

- 이번 사건이 남일 같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 사상검증을 겪고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 대부분은 (이번 사태를) 지긋지긋하다고 여기거나 바보 같은 일로 치부한다. 다만 남성 이용자가 주류인 게임에서 앞으로도 원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된다면 일본이라고 안전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사상검증#페미니즘#게임업계#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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