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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 기사를 보던 중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우울증 환자 100만명 시대… 20대 여성 가장 많아'(10월 3일자, 연합뉴스 보도). 기사를 보니 문득 간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들 피곤한 목소리, 지친 모양새였다. 

'아... 사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아.'
'맞아, 우리 직장에서도 요즘 정신과 다닌다는 사람이 많더라.'


주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묻고 들어 모은 3인의 소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인들 사례를 익명화해서 싣는 것이며, 모두 기사화하는 데 동의했음을 밝힌다. 

계속되는 낙방, 불면증이 생겼다(25세, H)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자료사진)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자료사진) ⓒ pixabay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대형 서점 서가를 점령하던 시기, 당시 20살이던 H는 '뭐 저런 제목이 다 있담' 하고 콧방귀를 뀌었었다. 재수에 성공했고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으며 과외로 주머니까지 두둑한 때였다. '아- 중간고사 망했어'가 최대의 투정이던 그때, H는 떡볶이는 먹고 싶었으나 죽고 싶지는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H는 2년 반을 쏟아부은 자격시험에 떨어졌고 결국 대학에 복학했다. 23학번과 함께 강의를 들으며 H는 생각한다. 내가 꿈꿔왔던 미래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저 친구들이 꿈꾸는 미래도 나와 같은 모습은 아닐 거라고.

시험을 근 3년간 오래 준비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었다. 주변에서도 아직 젊으니 천천히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서 괜찮았다, 취업이라는 망망대해를 부유하기 전까지는.

어학 자격증 갱신, 공모전 참여, 아르바이트 구직, 하반기 공채 지원, 인턴 검색, 자기소개서 작성, 학교 강의 수강... 남들은 이미 다 해본 취업 준비를 이제서야 하려니 없는 시간에 마음만 조급해졌다. 잘 하는 게 뭐였는지,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 이제는 중요치 않았다. H는 그냥 열심히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돌아오는 답은 차가웠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선발되지 못하셨음을…'

속세를 잠시 떠난 사이 코딩과 AI는 언제 몸집을 이렇게 키운 건지, 일자리 많은 취업시장은 죄다 개발자들이 집어삼킨 것만 같았단다. 비상경 문과 전공생 H의 자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최근 H는 완성된 또 다른 자기소개서의 맞춤법을 검사하며 '내딛을 것'이라는 문장을 잘못 썼음을 발견했다. '내디딜 것입니다'로 수정하며 H는 생각했다. '이젠 이런 단순 맞춤법도 틀리는구나...'

H는 요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머리만 대면 바로 곯아떨어지곤 했던 지난날의 모습은 이젠 없다. 밤이 깊어갈수록 쉽게 잠들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H는 저녁을 먹고 씻은 뒤 곧장 침대로 간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책, 캐모마일 티, 스트레칭, 따뜻한 우유로 심신을 달래보지만 여전히 생각만 많다. 시계를 보니 역시나 밤 12시 17분, 또다시 깊은 적막 속에서 불안함이 고개를 든다.

'나를 부양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더 나이 먹기 전에 취업을 해야 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 내가 잘하는 게 있나? 독립은 할 수 있을까. 하고 싶다. 할 수 있을까. 하고 싶다…'

H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라면을 끓이던 날이었다. 가족과 함께 먹기 위해 라면 2봉지와 물 1L를 넣고 끓이던 중 물이 넘쳤다. 그냥 닦으면 되는 거였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지. 정량대로 넣었는데… 뒤늦게 한강이 된 부엌을 본 엄마가 '아이고, 저기로 가 있어' 하며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던 H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하라는 대로 했어, 엄마. 적힌 대로 했는데…"

이젠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이는 바보가 됐다는 생각에 눈에서 펑펑 눈물이 났다. 무언가 아주 약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라면 두 개잖아! 넌 라면 하나는 잘 끓여!' 하는 엄마의 말에 제정신이 돌아온 H는, 라면을 먹고난 뒤 검색했다. 경증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을 친구처럼 달래기로 했다(26세, U)

U가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17세의 일이었다. 진단은 20살에 받았다. 미성년자가 정신과를 가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얘길 들은 중학교 동창 친구가 '그렇게 옛날부터?! 그냥 어머니랑 같이 가지 그랬어'라며 안타까워했지만 U는 덤덤히 말했다. "자기 자식이 정신과에 다닌다는데, 그걸 좋아하겠어?"
 
 병원. (자료사진)
병원. (자료사진) ⓒ pixabay
 
정신과 진단 결과 U의 우울증은 복합적인 원인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가정 불화와 불우한 유년 시절이 큰 이유였다. 우울증 말고도 불안장애, 공황장애, ADHD라는 정신과적 질환을 진단받았다. 우울증이라는 게 무슨 친구가 이렇게 많은지. 그동안 계속 무거웠던 몸이 이 친구들을 전부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싶었다.

U는 비교적 쉽게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편이었다. 잠에 들 때마다 '제발 내일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결국 깨어났구나' 하는 처참한 감각이 온 몸을 찔렀다. 어린 마음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길을 걸을 때 칼을 든 괴한이 나만 찌르고 도망가는 상상, 건물 안에 있을 때 내가 서 있는 곳이 무너지는 상상, 버스를 타고 있을 때 버스가 전복되는 상상… 그렇게 간절히 타의적 자살을 바란 때도 있었다고. 그는 잠자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렇게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 방이 더러워지든 말든, 그때의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20대 초반 법적 성인이 된 U는 병원에 가겠다는 결단을 했고,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상담치료는 매우 비쌌다. 때문에 시 또는 구에서 제공하는 무료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상담사분들의 실력과 별개로 너무 많은 인원이 집중되다 보니 보안이 염려되었다. 결국 상담치료는 중간에 그만뒀지만, 그래도 약물 치료는 꾸준히 받은 덕에 증상이 많이 호전됐다.

26세의 U는 취업도 하고, 취향도 알아가고,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여름이면 카메라와 함께 출사를 나가기도 하고, 겨울이면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밤조림도 만든다. 지금 U는 외국의 어느 한 카페에 앉아 고즈넉함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도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갈 것이다, 우울증을 친구처럼 달래가면서.
 
 외국의 한 카페. 고즈넉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흐른다.
외국의 한 카페. 고즈넉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흐른다. ⓒ SOL
 
번아웃의 고통... 하루 20걸음도 걷지 않았다(29세, G)

G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발랄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 그래서 '사실은 제가 가끔 우울한 날이 있는데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사람. 내 고민을 들은 G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어, 저도예요.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간 적 있어요."

당신이? 어쩌다가? 묻는 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G는 우울증을 본 적도, 스쳐본 적도 없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G는 우울증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G는 공부를 잘 했다. 미국으로 박사 학위를 따러 유학길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전염병으로 하늘길이 막히고 예정됐던 일이 모두 틀어지자 극심한 번아웃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면서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허하다'는 생각이 전신을 지배했다고. 

그때를 회상하며 G가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는 당시 걸음 수를 측정한 건강 어플이 떠 있었다. 한 달에 한 두번 정도만 그래프가 위로 치솟아 있고 나머지 날에는 그래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루  20걸음,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G는 상황에 이렇게 된 이상 학업을 더 지속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래가 촉망되는 K장녀였던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어머니도 만류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려보자. 넌 잘하잖아.'

주변의 긍정적인 기대와 시선이 오히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낙인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어' 한 마디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아예 넘어진 적이 없었던 사람을 대하듯 끝없는 긍정 확언이 이어졌다. 그게, 숨이 막혔다. 

진로 고민을 나누기 위해 만난 친구는 G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그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단다. '그런데 너... 정말 청춘이다.' 청춘(靑春), 뜻만 보면 푸른 봄. 그런데 그 말을 곱씹을수록 G는 자신의 청춘이, 희망찬 푸르름이 아닌 시퍼런 멍자욱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어떻게 그 감정을 해결했냐는 내 질문에 G는 이렇게 말했다.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냥 같이 사는 거죠. 아, 병원은 계속 다니고 있어요. 요즘엔 지역을 옮겨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요. 그냥, 의식하지 않고 같이 사는 방법을 배워 가는 것 같아요."

가끔 G는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그땐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왜인지 시퍼런 20대가 전처럼 아주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각기 다른 우울을 겪는 우리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 첫 구절처럼, 각기 다른 우울의 모양을 겪는 수많은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가는 이들을 영웅이라 부르듯,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감정을 묵묵히 견뎌내는 중인 우리도 그러하다고.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말이다.

한편 알아보니, 정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취업 등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청년 마음건강이라는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내 주변의 지인들과 전국의 청년들이 우울증으로 너무 혼자 괴로워만 하지는 말기를, 고개만 들면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정부의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 소개 및 신청방법 관련해서는 다음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https://www.jobaba.net/thema/4261/03


#20대우울증#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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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랑이 이긴다고 믿는 낭만파 현실주의자입니다. 반건조 복숭아처럼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구석이 있는 반전있는 삶을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모순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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