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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월 된 셋째 아기가 밤새 열이 39도가 넘었다. 늘어지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기고, 시원하게 해 주며 새벽을 맞았다. 당장 아침이 밝으면 출근을 해야 할테니 아픈 아기를 어떻게 돌볼지 남편과 의논했다. 내가 취소할 수 없는 일정이 있는 화요일에 남편이 휴가를 내겠다고 했고, 월요일은 내 일을 조정해보기로 했다.

사실 말이 조정이지, 통보에 가까운 양해를 구해야 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오늘 출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메시지를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남겼다. 고맙게도 나 대신 출근을 할 수 있다고 한 친구가 손을 들어 주었다.
 
링거를 맞으며, 빨리 나아지길 내가 아프면 아기를 돌볼 수 없으니, 빨리 나으려고 링거를 맞는다.
링거를 맞으며, 빨리 나아지길내가 아프면 아기를 돌볼 수 없으니, 빨리 나으려고 링거를 맞는다. ⓒ 김성희
아기가 아프기 바로 닷새 전엔 내가 아팠다. 평소에 막내를 9시 30분에 등원시키고 4시 20분에 하원시키는 시간에 맞춰 내 일정이 짜여 있다. 내가 아픈 동안엔, 아이 등하원을 남편이 대신 맡았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8시 20분에 아기를 등원시키며 출근을 했고, 6시가 다 되어서 아기와 같이 집에 왔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이 지나자 남편도 기침을 하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나와 남편은 휴가를 내고 쉴 수 없었다.

셋째 아기가 먼저 아팠다면 모를까, 아픈 엄마아빠 사이에 있는 아기가 안 아프고 지나갈 리 없으니, 그때 휴가를 내고 아기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학생인 첫째와 초등학생인 둘째는 아프더라도 집에 혼자 두어도 긴 시간이 아니라면 괜찮다. 자다가 일어나면 먹을 것과 약을 챙겨 먹도록 일러두고 내가 일을 좀 일찍 마무리하고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아직 37개월인 막내는 그렇지 않다. 고열이 나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고, 이렇게 갑자기 아픈 아기를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러니 아기가 아프면 평소에 꽉 짜여진 채 돌아가던 일상의 틀은,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져 버리듯, 툭 터지고 만다. 예측불가한 상태로 내게 닥쳐오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엔 없다는 점에서 자연재해와도 같다.

회사에는 휴가를 자주 내는 일이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일도 많이 밀리니까 내 몸 아플 때 일하면서, 아기가 아플 때를 대비해야 했다.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같이 약을 먹고, 빨리 나아지려고 링거를 맞고, 조금 괜찮아진 사람이 밥을 하면, 또 잠깐 더 쉰 사람이 아이들 밥을 챙기고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열이 많이 나는 아기 어린 아기가 아프면 비상상황이 된다.
열이 많이 나는 아기어린 아기가 아프면 비상상황이 된다. ⓒ 김성희
 
아프면서 충분히 쉬지 못해서인지, 잠깐만 움직여도 쉬 지쳤다. 막내와 병원에서 4시간 넘게 있다 집에 왔더니 더 움직일 힘이 없어 그대로 드러누웠다. 잠은 오지 않아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신생아 특공"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아기를 낳으면 "특공대"가 나타나 우리를 도와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혼자 상상하면서 기사를 클릭했다.

"내년 3월부터 신생아 출산 가구를 위한 주택 특별공급(특공)과 우선공급이 도입된다"는 첫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 짧게 탄식이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마침 학원에 가야 하는 둘째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픈 막내도 밥을 먹여야 약을 먹일 테고, 곧 돌아올 큰아이도 저녁을 먹여야 하니 몸을 일으켰다. 밥을 하면서 눈에 들어온 세탁기와 건조기 속에 빨래는 한가득이고, 여기저기에는 고양이 털이 날리고 있었다.

이런 비상상황에 나를 좀 도와주고,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수리 오형제'처럼 '특공대'가 '짠~' 하고 나타나 나와 남편의 몸이 회복될 동안 밥을 해 주고, 빨래와 청소를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가 아프더라도 급한 일을 취소하지 않고, 회사에 눈치 보지 않고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도록 가까이에 아기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사람 손이 절실한데 집이라니. 이러니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소설보다 가을>(2023)에 수록된 이주혜 작가의 단편소설 <이소 중입니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임신 소식을 들은 남자 친구는 '가오'를 잃지 않으려고 끝까지 '오빠가 책임질게'를 연발했지만, 결국 어린 연인과 그들의 아기를 책임진 것은 비바람도 불사하고 새벽마다 난바다로 출항을 감행했던 선주의 배들이었다. 선주의 배가 잡아들인 조기와 서대와 주꾸미가 대학생 부부의 학비와 어린 아기의 분윳값, 기저귓값이 되어 주었다. 고향에서 꼬박꼬박 돈은 도착했지만, 사람은 오지 않아 어린 아기는 소설가가 휴학하고 혼자 키웠다(71쪽)."

아이만 낳으면 집도 우선 공급한다고 하고, 세 자녀가 되면 차를 살 때 세금도 깎아 준다고 하고, 육아 수당도 준다고 하는 정책들이 '오빠가 책임질게'를 연발하던 어린 남자 친구의 '가오'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기를 키울 때 안정적인 집과 돈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기는 '가오'가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손이 키우니까 말이다.

#신생아 주택특별공급#돌봄#사람#이소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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