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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고 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격을 매개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공간으로, 경쟁과 선택의 자유를 특징으로 한다. 경쟁을 통해 시장 참여자에게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경제 양극화 등 폐해가 나타난다.

금융업은 개발원가의 큰 부담 없이 장기간 판매가 가능해 한계 생산비가 다른 산업에 비해 현저히 낮다. 리스크는 타인에게 전가가 용이하고 예금보험제도 등 안전장치가 있어 도산할 위험이 낮다.

금융업은 저위험-고수익 구조로 다른 산업에 비해 특혜가 많고, 고객과의 신뢰가 중요해 국가가 면허를 통해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허용하기에 규제와 감독이 필수인 업종이다. 또한 금융은 파생상품, 자산유동화라는 변화가 생겨나면서 모든 경제주체가 긴밀히 연결되는 현상이 일반화됐다.

금융의 역사는 금융위기, 사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숱한 금융시장 실패의 사례가 있다. 우리는 과거 금융시장 실패의 역사에서 그 원인, 대응과정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어 현재와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모든 재난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피해를 입히듯이 금융시장의 실패도 그렇다. 공정성 측면에서도 금융시장 실패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수많은 금융위기, 사고를 겪으며 주류 경제학자들도 금융시장은 정보의 불완전성, 독과점 성격 등으로 자율이 기능하는 '완전시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불완정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발달 초기에는 17세기 네델란드 튤립 투기광풍1), 18세기 영국 남해주식 투기열풍2) 등 대중의 '비이성적 과열'이 작은 충격에도 한순간에 붕괴되는 사례가 많았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남해회사 주식을 처분한 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하지 못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 세계를 커다란 위기로 몰고 온 대형 금융위기는 1920년대 말 경제대공황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들 수 있고, 그 사이에도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등 수많은 금융사고가 이어졌다.
 
 2008년 9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한 딜러가 머리를 감싸고 쉬고 있다.
2008년 9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한 딜러가 머리를 감싸고 쉬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경제대공황은 투자은행 업무를 겸업하던 상업은행의 재무구조가 증시 침체로 급속히 악화된 것이 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금융이 조연 역할을 했다. 대공황을 극복하면서 금융규제가 강화되어 50여 년 동안은 커다란 금융위기가 없었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면서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한 후 금융시장의 문제점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때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진정한 금융위기라 할 수 있다. 이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과 투자기법이 거래되는 중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을 위기에 빠뜨린 사건이다. 금융이 주연이 되어 세계 경제에 커다란 피해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에는 우선 금융회사의 잘못된 성과보수체계에 기반한 무모한 대출과 투자활동 등 시장의 과도한 이익추구 행위가 있었다. "지구의 자원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소수의 탐욕을 위해서는 부족하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외침과 같이 금융업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또한 시장참여자 모두가 효율적 시장가설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위험에 부주의했고, 시장에 긴밀히 대응해야 할 금융감독당국의 역량부족에도 기인했다. 이는 금융위기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설립하고,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글래스-스티걸법을 시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도드-프랭크법(월가개혁과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실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설립 등 제도적 보완으로 위기대응능력이 일부 발전하기는 했으나 시장실패를 막을 근본적 제도개선은 미흡했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유동성 확대에 따른 과도한 금융화, IT 발전 등으로 전 세계가 초연결돼 어느 부분에서든 충격이 발생하면 커다란 금융위기가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미국의 실리콘 밸리(SVB) 은행 사태와 같이 세계 어디서 사고가 터져도 금융위기가 순식간에 번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예전 문물의 교류인 실크로드는 실체가 있었으나, 현대 금융자본의 교류는 눈에 보이지 않고 몇 번의 클릭만으로 거대 자본이 이동한다. 

전 세계 자본주의와 밀접히 관련된 우리나라도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계적 금융위기 외에도 우리나라만의 금융사고도 여러 번 있었다. 2003년 카드대란은 탈세를 방지하고 소비를 통한 경기부양을 한다는 명목으로 규제가 완화된 후 소득 확인 없이 카드가 발급되는 등의 문제로 수백만 명이 채무불이행자가 되고 여러 카드회사가 부실해진 금융사고였다.
 
 2011년 9월 18일 오후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제일저축은행에서 예금자들이 예금보험공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11년 9월 18일 오후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제일저축은행에서 예금자들이 예금보험공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2011년 저축은행사태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사 대출사업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부실화돼 수많은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2019년 발생한 부실사모펀드 사태는 2015년 자본시장 육성 목적으로 사모펀드 규제가 대폭 완화된 후 여러 사모펀드가 부실 판매되고 환매가 중단돼 수많은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친 사건이다.

여러 금융시장 실패의 역사에서 공통된 사항은

첫째, 단기수익을 추구하려는 금융업의 '과도한 욕심'과 '위험에 대한 부주의'를 들 수 있다. 금융회사는 수익을 위해 금융소비자에게 '과도한 부채'를 부추기고 금리 등 리스크는 고객에게 떠넘겼으며, 파생상품 등 새로운 거래로 전체 위험 규모를 키웠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우리나라의 카드사태 당시 과도한 부채, 저축은행사태의 부동산PF 대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금융회사는 평소에는 과도한 부채를 통해 수익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다가 위기에는 '시스템 리스크'운운하면서 국가의 피신처로 도망가려 한다.

이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한다'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행동과 책임이 불균형 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금융위기나 사고 전에는 예외 없이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있었다. 규제완화→금융사고→규제보완의 사이클이 붐-버스트(Boom-Bust) 경기순환처럼 반복됐다.

셋째, 규제 사각지대와 더불어 금융감독당국의 위기관리 대응이 미흡했고, 금융회사들은 내부통제, 소비자보호 노력은 부족했으나, 이익 유지를 위한 정치화, 이해관계자들간 연대는 진행해 왔다.

수많은 경제 행위자의 상호작용으로 작동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인 금융시장에서 금융사고를 완벽하게 탐지하고 예방하기는 어렵다. 금융사고는 반복되지만 항상 새롭게 찾아온다.

모든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 금융시장의 공정경쟁, 거래질서 확립 등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과도한 욕심을 발생시키는 '경제적 왜곡현상'이나 '도덕적 해이'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또한 금융감독당국은 국제 파생상품 거래 증가 등 새로운 시장 환경에 맞는 리스크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고, 그에 따른 규제합리화를 추진해야 한다.

덧붙여 정부는 시장에 과잉 유동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유동성 잔치 뒤 문제가 없었던 적은 없다. 금융업을 성장동력으로 생각해 본래의 금융중개 기능과 공정거래 질서를 경시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는 금융시장 실패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망각해선 안 된다. 반복적으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다음 기사에선 금융시장의 실패를 야기한 여러 원인 중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규제의 합리적 조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각주]
1) 튀르키에 원산의 튤립이 큰 인기를 끌자 튤립 구근이 높은 가격으로 팔리다가 급락한 것으로 최초의 투기로 인한 거품경제 사건으로 볼 수 있음.
2) 1720년 영국 South Sea Company의 주가가 폭등했다가 주가를 끌어올린 재료들이 루머로 판명되면서 급락한 사건.

#금융시장의 실패#금융의 단기수익 추구#위험에 대한 부주의#규제완화의 위험#과잉 유동성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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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서 30 여년을 근무하고 부원장보를 마지막으로 퇴직했습니다. 건전하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과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조직의 존재이유와 내 본성, 가치추구와의 어울림이 커 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올바른 금융시장을 위한 고민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이 금융업의 공정성제고를 위한 생산적 논의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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