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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글쓰기 모임 1주년을 기념하여 회원 중 한 분인 바람님의 집에 초대받았다. 월요일 저녁의 고달픔마저 이겨내는, 가장 유쾌한 시간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역 이름만 확인하고 있는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기분이나 옷매무새나 기타 모든 것이 많이 들떠 있는 상태였다. 성인이 되어 만난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 꽤 자랑스러웠나. 아니면 그의 집에 초대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그랬나. 어느 쪽이든 파워 E(외향형)인 내 심장을 강타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바람님의 집은 바람님을 닮아 있었다. 원목 가구와 식물이 어우러진 온화하고 싱그러운 공간. 우직한 나무 줄기와 활짝 피어나는 잎사귀 속 갈색과 초록색의 조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테리어라 '독립해서 살게 된다면 이렇게 인테리어를 하고 살아야지!' 하며 인터넷에서 저장해 둔 사진과 같은 집이었다.
 
 바람님의 집 일러스트
바람님의 집 일러스트 ⓒ 황은비
 
집 정리를 해주는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정돈된 집을 보고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지 알 것 같았다. 공간이 위로가 되고 선물이 되기도 하는구나. 또다른 회원인 하루님은 문을 여는 순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우리집 현관을 조작하면 이곳이 나타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근황을 나눈 우리는 바람님의 작고 귀여운 따님과 함께 선물교환식을 진행했다. 모임이 있는 날마다 종종 작은 선물, 다과, 편지 등이 오간 것을 시작으로 작년 연말파티에서 선물교환식이 정식 코너로 도입된 모양.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의 수혜자에서 공여자가 된 지 오래인 20대 후반 여성은 남몰래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어른이 되어서도 선물은 선물이다!

포장지와 봉투로 선물의 눈을 가려둔 것이 무색하게 봉투에도 눈이 달렸는지 각 선물이 꼭 알맞은 사람을 찾아갔다. 나에겐 하루님이 준비한 선물인 '고래도어벨'이 왔다. 고래 모양의 원목 장식과 그 밑으로 단아한 작은 종이 달려 있는 선물이었다.

원목이라는 점에서 이미 나는 그 선물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소 ASMR을 즐겨 들으며 작은 소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님은 고래가 가족애를 상징한다고 덧붙여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단번에 선물을 걸 위치가 떠올랐다.

그간 우리집 현관에는 재작년 강릉여행에서 사온 자개 드림캐처가 걸려 있었다. 강릉 바닷바람에 자개들끼리 부딪으며 '짤랑- 짤랑-' 하고 나는 소리가 좋아 덥석 업어온 것이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도심의 바람은 강릉의 바람에 비할 것이 못 되어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없었다.

결국 현관을 드나들 때 일어나는 바람이라도 써 보고자 꾸역꾸역 매달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웬 걸? 현관을 볼 때마다 내 욕심어린 마음이 그대로 비취는 것 같아 오히려 현관을 자주 들여다 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현관 등과 드림캐처의 불편한 동거
현관 등과 드림캐처의 불편한 동거 ⓒ 황은비
 
하루님의 선물은 이 잘못된 만남을 끝낼 절호의 기회였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드림캐처를 침대 맡으로 옮겼다. 말끔해진 현관에 도어벨을 새로 달았다. 가족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면서.

달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도어벨 뒤에 자석이 붙어 있어서 불필요한 자국도 남지 않는다. 똑- 떼어서 다시 챡- 붙일 수 있어 얼마든지 위치 조정도 가능하다. 어쩜 선물도 그것을 준비한 사람의 사려깊음을 닮아 있는지! 이제는 고래도어벨 덕에 소리도 모양새도 단정한 현관을 마주한다.
 
 단정해진 현관
단정해진 현관 ⓒ 황은비
 
이른 아침, '다녀올게' 하는 인사와 함께 가족들이 하나 둘 문을 나서고 잇달아 '딸랑' 종소리가 들리면 이불 속에서 안심된 미소를 짓는다. '다녀와' 하고 배웅해주지 못하는 게으른 아침엔 그 단정한 소리가 나 대신 가족들을 배웅해주는 것 같아서.

'딸랑' 소리와 함께 현관을 열면 바람님의 집이나 인터넷에서 보던 모델하우스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조금 더 단정해진 가족의 세계가 나타난다. '다녀왔습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집으로 들어서며 고래도어벨에 한 가지 더 바라본다. 더 단정하고 더 다정한 우리 가족이 될 수 있길.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선물받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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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랑이 이긴다고 믿는 낭만파 현실주의자입니다. 반건조 복숭아처럼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구석이 있는 반전있는 삶을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모순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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