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에서 찰칵찰칵, 어찌된 일인지 낙화할 때 열기가 더 뜨거웠다. 떨어지는 꽃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연민 때문일까. 이제 서서히 시들기 시작하는 연꽃 앞에서, 해뜨기 전부터 연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밭 위에 펼쳐지는 춤사위들
나도 연밭으로 다가가 촬영할 준비를 했다. 사진기는 처음엔 다루기 어렵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빛으로 색을 조절하는 재미가 있다. 사진의 빛을 어둡게 해서 연잎을 신비롭고 우아하게 찍을 수도 있고 밝기를 밝게 해서 연꽃을 환하고 빛나게 찍을 수도 있다. 마치 눈앞의 연밭을 열대 우림 속에 두었다가 몽골의 벌판으로 옮겨 놓아 보는 느낌이다.
어떤 꽃을 찍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연꽃들이 조금씩 다른 포즈를 취한다. 숨결을 찬찬히 고르며 초록 연잎 위에 툭툭 자신을 떨구어냈다. 마치 고깔을 쓰고 긴 장삼자락을 공중에 뿌려대는 승무의 춤사위가 연밭 위에 펼쳐지고 있는 듯했다. 왼쪽을 한번 쳐올리며 낙하하는 꽃잎, 오른쪽을 한 바퀴 돌리며 흘러내리는 꽃잎도 있었다. 가만히 두 손을 모았던 연꽃이 아래로 풀썩 떨어져 연잎 위에 놓이고 한 장 남아 펄럭이던 연꽃의 춤에 노란 꽃술이 와르르 떨어졌다.
태양을 등지고 서 있던 연자에서 태평소 소리가 들려오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분홍색 연꽃이 넌지시 말을 걸며 꽃잎 한 자락 내밀어 카메라 앵글을 당긴다. 연꽃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담느라 셔터를 바쁘게 눌렀다.
발길을 옮겨 연밭 안으로 더 들어가자 싱그러운 듯하지만 끝이 조금씩 말라가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주름살을 가려야 하는 내 얼굴 같아 이슬 맺힌 연잎으로 살짝 가려서 찍어 보았다. 끝이 살포시 드러나자, 수줍은 새색시의 눈썹처럼 어여뻤다.
생기를 잃은 연잎들
한바탕 연꽃의 춤사위에 헤벌쭉 웃고 있던 내 앞에 생기를 잃은 연잎들이 보였다. 태양의 열기처럼 팽창하던 연잎은 이제 역할을 다하고 마지막인양 카메라 앞에 섰다. 푸르름과 시듦이 무작위로 펼쳐져 삶과 죽음의 구분조차 지운 듯이 마주하고 있었다. 나를 지나쳐간 모든 일들이 한 곳에 서 있는 듯했다.
쓸쓸한 마음이 들어 '이게 자연의 이치겠지'하며 돌아서는데, 언뜻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시든 연잎 사이에서 이제 막 봉오리를 맺은 연꽃 한 송이가 보였다. 꽃의 표정을 잡고 싶어 조금 더 가까이 확대를 해서 촬영하자 늦게 피더라도 마지막까지 완주하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꽃봉오리에 맺혀있었다. 여린 꽃이 끝까지 피어있기를 바라는 마음, 꼭 다시 찾아와 달라는 마음이 내게도 생겨 한걸음 더 다가가 보았다.
스러져가는 잎사귀 속에서도 생의 즐거운 열망이 피어올라 하늘에 구름으로 펼쳐졌다. 마지막까지 즐겁게 완주하자고 말을 건네는 연꽃들의 다짐을 새기듯이 붉은 아침 해는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 다시 찾아올 거라는 아름다운 약속은 연밭 사이를 오가며 씨앗을 영글게 하고 연자에서 울리는 태평소 소리에 이제 잠자리가 파르르 춤을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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