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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가 퇴직 후 업무상 질병을 진단받을 경우, 산재 적용 사업장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자가 퇴직 후 업무상 질병을 진단받을 경우, 산재 적용 사업장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 pixabay

산업재해 발생시 적용되는 사업장은 어디인가

산업재해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직장에서의 사고, 출·퇴근 중의 교통사고, 회식 중의 사고 등 우연 발생에 의한 사고성 재해뿐만 아니라 재직 중, 퇴직 후 진단받은 업무상 질병도 이러한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일하다가 다쳤을 때는 당연히 업무를 수행하던 사업장이 재해 발생 적용 사업장이 된다.

그렇다면 대개 퇴직 후 진단 받은 업무상 질병은 적용 사업장이 어디일까?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자들은 단일 사업장에서 평생 일하기도 하지만, 단일 '직종'으로도 평생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며 단일 직종으로 근무하다 업무상 질병을 얻게 되었다면 산재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사업장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이 확인되어 재해보상금을 지급할 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2007년 11월 21일 '요양결정시 적용업무 관련 판단에 관한 처리지침'을 제정하여 업무상 질병 발생 시 그 적용 사업장을 판단할 경우의 기준을 정립했다.

하지만 그 판단기준은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우선순위가 ①, ②, ③으로 열거되어 있으나, 실제 근로복지공단의 업무 처리 경향을 보면 하기의 우선순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소홀히 고려하여 마지막으로 유해 요인에 폭로된 사업장을 적용 사업장으로 한다. 심지어 해당 지침은 내부적인 업무 처리 지침일 뿐, 일반 평균인을 구속하는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결과적으로 산업재해보상업무를 수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지침은 허울뿐이며 알맹이 없는 지침에 불과한 것이다.
 
※적용사업장 판단기준
① 전문기관 심의의뢰 결과 질병발생과 가장 상당관계가 높은 사업장이 확인된 경우 ② 조사결과 근무기간, 작업환경, 유해요인 노출정도 등을 고려하여 질병발생의 주된 사업장이 명확히 판단되는 경우 ③ 발병일시 또는 증악 시점 당시 근무하고 있던 유해(분진 등)사업장
※ 적용사업장의 판단 우선순위는 ①>②>③으로 함.
다만, 위 경우에 해당되지 않아 재해자가 근무했던 유해사업장 중 하나의 사업장을 질병 발생 주된 사업장으로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유해요인에 폭로된 사업장을 적용사업장으로 함
☞질의회시 법무-8523(1965.6.9), 보상6602-31(2001.1.6), 보상6602-222(2002.1.24) 등

물론 다수의 사업장에서 근무한 근로자가 얻은 상병의 인과관계를 특정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상병의 특성, 근로자의 직종, 개인적인 감수성과 기왕력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직업성 질병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근거하여 보상 받는 것은 법원의 일관된 판단 경향인 '업무와 상병 간의 상당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다.

적용사업장의 문제는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았음을 전제로 하기에, 평가 과정에서 적용사업장 판단의 근거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업무관련성 평가 결과 과정에서 적용사업장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상기의 근로복지공단 내부 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전문기관을 포함한 판단 주체가 명확히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바, 적용 사업장 판단을 책임질 판단 주체의 선정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적용 사업장 기준으로 혼란 발생만

재해자들이 단일 사업장을 오래 근속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로자들이 정년을 앞두고 오래 근속한 사업장에서 퇴직하고 임금 수준이 낮은 사업장에서 짧게 근무하는 경우 문제가 된다. 근로복지공단이 내부적으로 적용 사업장 판단기준을 세웠음에도, 구체적인 처리 방침이나 실무 적용이 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최종 유해요인 폭로 사업장을 적용 사업장으로 지정한다면 마지막으로 수령한 낮은 임금을 기준으로 보상금이 산정된다.

이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게 보상하는 방향이긴 하지만,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일례로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재해자가 현대중공업에서 33년을 근무하고 마지막에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2일 근무하여, 저임금의 마지막 건설 현장으로 적용사업장이 지정된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직접적으로 산업재해자의 재해 보상권을 침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편 산재보험가입자인 사업주들의 불만도 발생한다. 위 사례를 다시 보자면, 마지막으로 근무한 건설 현장 사업주는 근로자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2일밖에 근무하였음에도 산재발생에 귀책이 있는 사업장으로 지정되어 억울할 수 있다. 이에 해당 사업주는 근로복지공단에서의 사업장 조사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산업재해조사에 더욱 소극적으로 대처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발생한 산업재해를 은폐하거나 작업환경측정을 소홀히 하는 등 복합적인 악순환도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근로복지공단의 일관되지 않고 사문화된 적용 사업장 기준에 따라 근로자뿐만 아니라 보험가입자인 사업주도 불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야기할 뿐이다.

이제는 사회적 합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 기준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마련된다. 그 형태가 법령 및 시행규칙으로 구체화되기도 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업무 처리 지침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업무상 질병으로 판정될 시 지정되는 적용 사업장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따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에서 명시된 법령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① 신속하고 ② 공정하게 보상하는 데 있다. 신속과 공정은 'or' 조건이 아닌 'and' 조건으로, 두 가지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비로소 근로자의 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신속한 보상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공정한 보상도 동시에 집중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2007년에 제정되어 추가적인 개정 작업을 거치지 못한 퀴퀴한 내부 지침을 수정하여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 마련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정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이자 노무사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산재_적용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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