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예술공간 아름에서는 섭경 김성배 작가의 '온새미로, 티끌모아'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개관 1주년 및 3월의 첫 전시로 진행된 김성배 작가의 이번 전시는 '티끌 모아 태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티끌은 보잘 것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하찮게 여겨진다. 김성배 작가는 쌀 포대종이 그림을 그리면서 쌀 한 톨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 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천연펄프 종이인 쌀 포대, 그림 그리기 좋아
태어나고 자란 수원 특히 행궁동을 오가면서 평생 지내왔던 작가에게 수원 화성은 작업에서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성벽을 매일 지나다니면서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린 모습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쌀 포대 종이 1000장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현재 300장의 쌀포대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어떻게 쌀포대에 그림을 그리게 되셨는지 물었다.
"어느 날 쌀 포대를 보니 종이가 천연펄프라서 너무 좋은 거에요. 그림을 몇 번 그려보니 생각보다 물감이 잘 먹고 그림이 잘 그려져요. 먹칠을 해도 좋고, 아크릴도 선명하고. 그래서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쌀 포대를 구하러 다녔죠. 재활용품에서도 찾아보고, 동네 식당 다니면서 쌀포대를 얻기도 했어요. 매일 쌀포대를 찾으러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모아다 주기도 했죠."
처음부터 뭔가 대단한 작업을 기대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하지만 쌀 포대를 벽에 붙여서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을 했고 그 구상을 실현한 것이다. 공간이 더 넓었더라면 길이와 높이를 성곽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야외 전시장에서 쌀포대 1000장의 그림을 이어 붙인 성벽을 만들거라고 한다.
쌀 포대는 천연 펄프로 형광물질이나 화학제품을 쓰지 않은 친환경 종이다. 쌀을 담고 보관하는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각 지역마다 쌀 포대가 다르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김 작가는 "수원에서 재배된 수원화성쌀도 있어요. 쌀포대는 그 지역이 내세우고 싶어하는 상징성을 나타내는 디자인이에요. 경기미 수원쌀은 '효원의 도시'의 이미지로 서북 공심돈과 화서문 사진을 넣었어요"라고 말했다.
쌀 한 톨에 담긴 우주
아이가 그린 것처럼 재미있는 낙서도 있고, 고대 선사시대의 상형문자 등의 이미지도 보인다. 우주의 빅뱅 같은 이미지나 수원 화성도 추상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었다. 쌀 포대를 이용하여 순간적인 느낌이나 감성을 자연스럽게 드로잉하다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된다. 작가의 의도를 뚜렷이 이해하기보다는 관람자가 자기만의 시선으로 감상을 하면 된다. 캔버스나 종이가 아닌 쌀 포대에 그려진 그림은 자유분방한 터치와 즉흥적인 신바람이 느껴진다. 작고 다양한 하나 하나가 모여 보다 큰 하나를 이루는 합(合)의 힘을 형성하는 과정을 전시에서 보여주었다.
쌀 한 톨에는 우주가 담겨져 있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쌀 포대를 뜯어 펼치면 꼭 쌀이 몇 톨이라도 나왔다고 한다. 그것을 모으고 모았더니 작은 종지 그릇에 채워졌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그 뿐만이 아니다. 모아 놓은 쌀에서 쌀벌레가 나오면서 놀라기도 했다. 쌀 한 톨은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성배 작가는 1980년대 예술 실험실 '안드로메다 미술 연구소'를 만들었고 작업실로 사용하며 소집단 미술 운동을 한 바 있다. 실험공간 UZ(우주)를 만들어 무경계 프로젝트 및 무경계 작업을 이어왔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남을 따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예술을 해 왔다.
이번 전시는 17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예술공간아름은 오후 2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에 닫는다. 누구나 관람 가능한 공간이니 쌀포대의 재발견에 흥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한번쯤 방문하여 찬찬히 그림과 재료를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