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문득, 또는 어느 한적한 곳에서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 한 순간, 또는 생각지 않았던 바람이 볼을 살짝 스칠 때, 불현듯 떠오르는 삶의 무상함, 허무감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가진 천형 같은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지며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그 허망함, 허무감은 본능 저 밑에 처연하게 버티고 있다가 문득문득 우리를 찾아온다. '무상한 삶'의 자각이다. 이러한 '인생무상', '존재의 허망함'이라는 감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진작품을 만났다. 이성훈의 최근 사진 작업이다.
작가는 촬영시간을 밤을 택했고, 그 밤 조명들의 옆 켠 풍경을 찍었다. 그리고 그 희미한 조명이 비추는 부분이나 그 가장 자리에 인체를 합성했다. 길바닥에, 계단에, 건물 벽에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게 인체가 자리 잡았다. 유심히 보아야 보인다. 이 인체들은 그 풍경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슬쩍 스치고 지나간,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라질 존재처럼 쓸쓸하게 풍경 속에 박제돼 있다.
작가가 지난 전시까지만 해도 욕망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작업을 하였다. 이번엔 그 욕망들이 사라지고 '존재'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40대 나이지만 몇 년 전 자신의 묘비명과 유서를 쓴 경험이 지금의 작품으로 나오게 되었다 본다. 죽음,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가지는 그 존재의 허무함이 작품에 잘 담겨 있다. 이 쓸쓸한 분위기는 우리의 허무한 본능을 자극하고 동시에 우리를 위무한다.
이 이미지가 뿜어내는 감정들은 사진이기에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진이라는 매체이므로 현실감 있는 실재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무심한 밤거리의 약한 조명 속에 은근히 인체가 스며있는 회화적 느낌의 이 사진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미학적 성취가 상당하다. 이러한 원초적 고독을 표현하는 화가가 있다면 이러한 분위기의 작업을 하지 않았으랴?
사진작품 개인전을 한번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이성훈 작가는 몇 년간 번 돈을 전시회 비용에 모두 쏟아부어 개인전을 하고, 또 몇 년간 벌어 전시하여 왔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을 고려해 작품 외적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상전을 하기로 했다. 일종의 책으로 하는 개인전인 것이다.
도서명은 <참사랑은 머물지도 떠나지도 않는다>(도서출판 천우)이다. 이 책에서 쓸쓸한 영혼이 스산하게 걸어 다니는 풍경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허무한 감정의 교감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