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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쟁의행위를 하면 수십,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노란봉투법' 제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이미 해를 넘겼다. 정부·여당·재계는 반대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편집자말]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19년째 일하고 있는 최상묵(49)씨. 그는 지난 2013년 7월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라며 63분간 라인을 세웠다가 수천만원의 손배를 당했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19년째 일하고 있는 최상묵(49)씨. 그는 지난 2013년 7월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라며 63분간 라인을 세웠다가 수천만원의 손배를 당했다. ⓒ 김성욱

"돈이라고 같은 돈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한테 10억과 현대자동차한테 10억은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우리에겐 인생 조지는 거액이지만, 현대자동차한테는 '껌 값'일 뿐이거든요. 자본에게 손배(손해배상소송)가 무기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19년째 일해온 최상묵(49)씨는 지난 2013년 7월 12일, 수백 명의 동료들과 함께 63분간 라인을 세웠다. 원청인 현대자동차에 불법 파견을 멈추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앞선 2004년 노동부가 이미 현대차에게 비정규직 노동자 1만명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2010년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최종 인정한 판례까지 나온 상태였지만, 회사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파업을 벌인 하청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 최씨를 비롯한 5명은 노동조합 간부가 아닌 일반 조합원이었음에도 4500만원의 손배 대상이 됐다. 1심에선 현대자동차가 패소했지만, 2018년 2심 때 원심이 뒤집혀 노동자들이 2300만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이 떨어졌다. 현재 지연이자까지 합쳐 손배 액수는 3900만원으로 늘어나 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10여년만이었다. 전원합의체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이 모두 심리에 참여하는 것으로, 판결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예상되거나 기존 판례를 수정하는 경우에 주로 구성된다.

노동계에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침해해온 기업들의 손배 문제, 특히 파업으로 발생한 고정비 손해의 인정 여부, 일반 조합원에 대한 배상책임 제한 등과 관련해 중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공개로 이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불법 바로잡으라고 파업했더니... 돈 밖에 모르는 현대차"
  
 지난 10일 울산 북구 모처에서 만난 최상묵씨가 손배 관련 자료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울산 북구 모처에서 만난 최상묵씨가 손배 관련 자료를 보이고 있다. ⓒ 김성욱
  
지난 10일, 울산 북구 모처에서 최씨를 만났다. 최씨는 10년여의 싸움 끝에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최종 인정받아 2022년 12월부로 현대자동차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손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문제 제기(근로자지위확인 소송)를 취소하고, 근속연수는 물론 정규직이었다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 차액까지 모두 포기하면 정규직으로 받아주겠다는 사측의 '경력직 신규 특별채용' 제안을 거부한 채 끝까지 남아 투쟁한 대가였다.

최씨는 "회사 말 들으면 없애주고, 안 들으면 안 없애주는 손배는 (노동자) 탄압의 수단"이라고 했다.

- 2013년 7월 12일, 63분간 라인을 세운 이유는 뭐였나.

"불법을 바로잡으라는 것뿐이었다. 정부와 사법부가 불법파견이라 판정했는데도 현대자동차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있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현대자동차의 힘이 얼마나 센 거냐. 뻔뻔하게도 회사는 우리에게 모두 개별적으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해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와야만 온전히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식이었다. 그렇게 대법원까지 10년 걸렸다. 이게 말이 되나.

그저 법을 지키라는 상식적인 요구를 하려고 파업까지 해야 하는 현실도 기막힌데, 회사는 용역들을 불러 노동자들 얼굴을 일일이 사진으로 채증한 뒤 손배를 마구 남발했다. 노조에 때리는 것도 아니고 개별 노동자들에 대고 때렸다. 겁을 주는 거다."

- 2013년 7월 12일 63분 파업과 관련해선 본인을 포함해 5명만 남았다.

"그날 파업으로 수백 명이 손배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모두 회사의 '특별채용'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손배가 취하됐다. 다들 원청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랜 투쟁에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법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가 왜 경력도 인정 못 받고, 그동안 체불된 임금도 못 받아야 하나. '그래, 한번 끝까지 가보자' 싶었다.

그나마 우리는 손배 액수가 적은 편이다. 동료 중에는 지연이자까지 합쳐 200억 원이 넘는 손배가 남은 이도 있다. 그 동료도 나처럼 끝까지 회사에 굽히지 않고 버틴 터였다. 노동자들한테 그런 돈이 어디 있나. 그 동료, 200억원은커녕 2000만원도 없을 거다."

- 2심에서 패소했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노동계에선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현대자동차도 걱정이 좀 되는 모양이더라. 최근 우리를 만나서 손배 문제를 정리하자고 하더라. 회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받고 싶지 않은 거다.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별로 기대는 안 한다. 세상이 바뀌더라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는 언제나 손톱만치만 움직이더라."

"강자에게 칼까지 쥐어준 꼴... 노동자 옥죄는 손배, 언제까지 이대로 둘 건가"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19년째 일하고 있는 최상묵(49)씨.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19년째 일하고 있는 최상묵(49)씨. ⓒ 김성욱

- 지난해 10월 27일, 대법원으로부터 불법 파견을 인정받고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허무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나와 완전히 똑같은 일을 하는 2차 하청 업체 노동자들은 패소했기 때문이다. 법이 도대체 뭔가 싶다. 나는 2004년 9월 6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 있는 사내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정규직들이 기피하는 서열(자동차 부품을 올리는 팔레트에 정해진 순서대로 부품을 배열하는 작업), 불출(서열 작업 이후 팔레트를 정해진 장소로 나르는 작업) 업무를 하며 150~180킬로그램 되는 쇳덩이를 끌었다.

2013년 밤샘 작업이 없어지기 전까지 주간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간조는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2개조가 주야 맞교대로 일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데 비정규직은 쉬는 시간에도 앉아있질 못하게 했다. 신문도 못 보게 했다. 한가해 보인다고. 수건이나 비누, 장갑, 안전화 같은 소모품도 정규직만 주고 우린 안 줬다. 그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임금 차이는 엄청났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가 지금껏 물어낸 돈이 있었나? 하나도 없었다. 하청들이 해온 일이 사실 정규직을 채용해 맡겨야 하는 업무라는 법의 판단이 나왔는데도. 정부에서 불법파견 판정한 것만 20년 돼가는데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얻은 이익이 얼마겠나. 나 한 명으로만 따져도 정규직이었다면 몇 억은 더 받았어야 한다. 그럼 나 같은 사람이 최소 1만 명만 있다고 잡아보자. 단순 계산으로도 조 단위가 넘어간다. 불법이 철저히 이익이었던 거다.

현대자동차는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회사다. 돈이면 다 되니까 손배도 그대로 남겨둔다. 노동자들에게 '앞에 나서지 말라'는 느낌을 주는 거다. 그게 또 참 허무하다. 정규직은 됐지만, 나는 여전히 탄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간접공정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법원은 이날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활용하지 않는 간접공정에서 2년 넘게 일한 현대·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도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대·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간접공정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법원은 이날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활용하지 않는 간접공정에서 2년 넘게 일한 현대·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도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연합뉴스

- 현재 국회에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노조법 2·3조 개정)논의가 막혀있다. 15일 법안소위가 예정돼있다.

"제발 상식에 맞게 됐으면 좋겠다. 상식을 지키는 게 세상에 왜 이렇게 어렵나. 손배는 회사의 칼이다. 왜일까? 현대자동차에게 몇천만원, 몇억은 그야말로 '껌 값'이지만,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겐 인생 자체가 흔들리는 돈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무차별적으로 손배를 걸면 우리에겐 손쓸 방법이 없다. 실제 인지대(재판 수수료)가 없어 항소도 못하고 그냥 손배를 떠안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럼 불법파견이 나와도, 우린 그냥 찍소리도 않고 살으란 말인가.

게다가 현대자동차는 노조가 아닌 일반 개인들을 상대로 손배를 쏟아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노조도 대응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개별 노동자들은 완전히 기댈 데가 없는 거다. 강자에게 칼까지 쥐어준 꼴이다. 구조 자체가 문제다. 언제까지 이대로 둘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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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현대자동차#노조법개정#불법파견#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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