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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12월 31일에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기념으로 태양 경배 자세 108번을 하러 요가원에 간다고 했다.

"너도 할래?"

무슨 자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힘들 것이고 그래도 108번을 다 하고 나면 약간의 성취감과 새로운 마음가짐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그 느낌이 문제다. 친구는 내 흔들리는 눈빛을 읽었다.

"이게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그리고 혼자 한다고 생각해 봐. 할 수 있겠어? 108번을 세다가 까먹고 세다가 까먹어서 할 수가 없지. 누가 세어주는 것만 해도 엄청 고마운 거야."

아, 혹한다. 반복되는 동작을 계속하는 건 명상과도, 기도와도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반성하고 감사기도를 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마감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불과 며칠 전인데 강좌는 마감되지 않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계좌이체를 해 등록했다.

그 전날에서야 급하게 유튜브에서 태양 경배 자세를 찾아 연습했다. 태양 경배 자세는 태양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인사라고 한다. 호흡에 맞춰 몸의 수축과 이완을 하는 동작으로 구성되어 전신 스트레칭에 좋다. 각각의 자세를 물 흐르듯 연결해서 이어가는 방식이다.

머리를 앞으로 굽혀 이마와 정강이를 맞대는 전굴자세나 상체를 기역 자(ㄱ)로 만드는 반 상체 숙이기 자세는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해야 하는데 유연하지 않아 손을 정강이에 대고 한다. 다섯 번 했는데 땀이 나고 어깨가 아프다.

게다가 태양 경배 자세는 A와 B 자세가 있는데 B 자세는 따라하지도 못하겠다. 두 번 하고는 멀미가 나서 유튜브를 꺼버렸다. 아, 좀 알아보고 신청할 걸. 요가원을 절뚝거리며 나오는 내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108번을 잘 할 수 있을까

다음 날, 종로 3가에서 친구를 만나 북촌에 있는 요가원으로 가는 길. 태양 경배 자세 108번을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염려 섞인 대화를 했다.

"난 가장 뒤, 가장 구석 자리를 선점하겠어. 앞자리에서 버벅거리면 얼마나 민폐니."

친구는 여름 요가 피크닉을 갈 때도 내가 비슷한 말을 했다며 웃었다. 요가원에 들어가자마자 기분 좋은 향이 난다. 요가원의 큰 창으로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한옥 지붕들이 보인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진다.

친구는 아주 좋은 자리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맨 앞자리의 가장 오른쪽 자리. 맨 앞이지만 공간이 직사각형이 아니라 살짝 굴곡이 있어 뒷사람들에게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딱 좋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살짝 몸을 풀었다.
 
요가원 풍경   수련 전, 구석 자리에 앉아 요가원을 찍음. 왼쪽은 요가원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
요가원 풍경 수련 전, 구석 자리에 앉아 요가원을 찍음. 왼쪽은 요가원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 ⓒ 형소진
   
약속한 시간이 됐다. 선생님은 총 열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진 태양 경배 자세 A를 하나씩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러고는 곧바로 시작. 선생님의 가이드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한 동작에 한 호흡씩. 숨을 내쉬고 숨을 마신다. 잘되지 않는 부분은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내 호흡과 동작에 집중하며 쉼 없이 몸을 움직인다.

"자, 열 번 했습니다."

어느새 열 번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횟수를 십 단 위로 알려주셨는데 매번 '벌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 경배 자세를 하며 기도를 하겠다고 했던가. 동작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50번이 넘어가자 동작이 익숙해졌다고 느꼈는지 다운독 자세(몸을 시옷 모양으로 만드는 자세)를 할 때 뒷사람을 보게 됐다. 그 사람은 다운독 자세 후 그다음 동작을 연결할 때 두 발을 모아 점프를 했다. '우아. 엄청 잘하네. 아후, 나는…….'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다 다음 동작을 놓쳤다. 선생님은 바로 말씀하셨다.

"자신에 집중하세요.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난 뜨끔해서 다시 내 동작에 집중했다.
  
늘 불만족스럽던 나를 긍정하는 시간
 
다운독 자세 친구가 한 다운독 자세. 친구가 말하길, 다운독 자세할 때는 뒷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배꼽을 봐야한다고 했다.
다운독 자세친구가 한 다운독 자세. 친구가 말하길, 다운독 자세할 때는 뒷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배꼽을 봐야한다고 했다. ⓒ 형소진
 
내 왼쪽에는 같이 간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의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가 속도를 맞추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이 구령 붙여 주시는 동작이 뭔지 모를 때 옆으로 보이는 친구의 움직임에 맞추었다. 선생님의 안정적인 구령 목소리, 중간중간 힘을 주는 멘트도 좋았다.

"108번이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았다. 물론 정확한 동작을 하지 못해 덜 지치기도 했겠지만 일 년간 꾸준히 운동했기 때문에 체력이 키워진 것 같았다. 운동 실력이 늘지 않아 운동했던 시간이 다 헛된 줄 알았는데 그중 일부는 내 몸에 남았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줄 때 물이 그냥 빠져나간 것 같아도 콩나물이 자라듯이.

덧붙여 친구와 선생님이 있기에 끝까지 할 수 있었다. 내가 혼자 한 게 아니다. 옆에서 함께 해주는 친구와 구령을 붙여 주는 선생님이 있어 가능했다.

선생님은 언제 끝나나, 하며 시작했는데 벌써 끝나지 않았냐며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셨다. 한 해 동안 포기하지 않으신 여러분들 자신에게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이 날 것 같아 마구 눈을 깜박였다. 항상 자신에게 불만족하던 나였다. 누워서 명상하는 시간에 나에게 말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 두려워 말자.'

수련이 끝난 후, 친구에게 같이 오자고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할만한 것만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무모한 것 같지만 한 걸음 내디딜 때 내가 볼 수 있는 시야도 더 넓어진다.

2023년 한 해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해,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꾸준히 정진하는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수련이 끝났을 당시에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했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햄스트링이 엄청 뻐근해 엉거주춤 걷고 있다. 그럼 그렇지. 그러나 걸을 때마다 그 당시를 기억하게 되니 오히려 좋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태양경배자세#요가#북촌요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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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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