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내가 가장 많이 읊조리는 시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시 가운데 가장 내 가슴에 닿는 시구는 제2연으로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구절이다.
요즘 나는 그 시구의 화자처럼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일 한밤중 포르투갈 전 경기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을 어시스트 한 뒤 환희의 눈물을 쏟는 손흥민 선수를 보았다. 그 순간 나도 내 작품에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이룬 뒤 그 선수처럼 눈물을 쏟으면서 이 세상에서 퇴장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부님의 엄한 교육을 받으면서 문장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내가 쓴 글에 감동하여 그 글을 교직원회의에서 낭독한 바, 전 선생님들이 열띤 박수를 치셨다는 얘기를 들려주시면서 '너는 장차 대문장가가 되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낙방의 세월
1963년 고교 2학년 시절, 교내문예현상모집공고를 보고 하룻밤을 새우다시피 단편소설 <국화꽃 필 때면>이란 작품을 써서 공모한 바, 당선의 영예를 누렸다. 그때 평론가 곽종원 선생의 선후 평이다.
"박도의 <국화꽃 필 때면>은 문장이 간결하여 선명하고 장면 장면이 독자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른다. (중략) 고등학교 학생 작품으로서 이만한 수준도 드물 것이다."
그때 나는 우쭐했다. 그리하여 상대나 법대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끝내 듣지도 않은 채 국문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좌절 연속으로 낙방의 세월을 보내다가 1994년 1월, 쉰의 나이로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문단 말석에 겨우 얼굴을 내민 늦깎이였다. 이후 오늘까지 40여 편의 책을 펴냈으나 거의 태작이다.
이즈음 나는 코로나19 후유증에, 저물어 가는 연말, 게다가 신체 각 기능의 빨간 신호등으로, 그저 소리 소문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한 번 떠나면 다시 올 수 없는 길, 어린 시절 고향의 금오산을 바라보며 키웠던 그 꿈을 다짐하면서 전력투구 집필해야겠다고 흐트러진 내 몸과 마음을 추슬러 본다.
그리하여 어느 깊은 밤, 마침내 그 작품을 탈고한 다음, 자만자족의 눈물을 흘리면서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긴 잠에 빠지고 싶다.